제주로 내려와 ‘우리’ 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었다. 동네는 낯설고, 이제는 남편이 된 사랑하는 이와 함께 지내는 것 또한 낯설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잦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서서히 우리만의 균형을 찾아갔다. 아니, 찾아가고 있다. 동네를 걷고 또 걸으며 온갖 간판을 두리번거리며 탐색하고 다녔다. 집 주변을 중심으로 시작해 제주의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타지살이로 인해 작아진 우리의 세계를 아주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이전에는 타자를 칠 수 있는 키보드만 있으면 짧지 않은 글을 단번에 써 내려갔다. 심지어는 퇴근길 지하철에서도 작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글 하나를 완성하곤 했다. 자연스럽게 쏟아져 나오는 생각과 문장들로 적당히 글을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게을러진 탓일까? 한 줄을 두드리는데도 꽤나 더디어졌다. 머릿속은 복잡한데 밖으로 손쉽게 배출되지 않는 기분이다. 많은 감정, 새로운 경험들을 하고 있지만 어쩐지 정돈된 언어로 담아내기가 어렵다. 이때만 겪을 수 있는 귀하고 희소한 것들임을 알면서도 모두 다 기록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큰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았고 혼자서 무언가에 계속 쫓겼다. 남겨두어야 할 것 같은데 쉽게 써지지가 않으니 일기조차 복잡하고 무겁게 느껴졌다.
그 사이 새해가 밝았다. 나는 정말로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아직 나에게 뿌리를 내릴 일상의 루틴이 자리잡지 않아서, 방학 같은 시간들만 이어져서 그럴 테다. 사실은 이렇게 정해져 있지 않은 시간들을 위해, 내게 익숙하고 편안한 것들을 두고서 멀리 떠나온 것 아닌가. 하지만 두 달이나 되었으나 아직 두 달 밖에 되지 않았기에 여전히 나는 익숙한 껍데기를 찾아 붙잡으려 한다. 요리하려고 장을 볼 때에도 익숙한 재료들을 먼저 손에 집게 된다. 새로운 것들을 에너지 있게 궁리하는 시간보다 괜한 복잡한 생각으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 여전히 그렇다. 변화를 기대하고 왔지만 아직도 나는 새로움을 향해 가벼이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출발선에 와있다. 아직 성큼 첫 발을 떼지는 않았더라도 다음으로 가는 출발선에 서있다. 어느 쪽 발을, 얼마의 간격만큼, 어떤 방향으로 뗄지 고민하며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일뿐이다. 요즘 나의 하루는 모든 시간을 오롯이 남편과 함께 보내며 밥을 먹고 집을 가꾸고 서로를 돌보며 다음을 그리는 것으로 채워진다. 일기조차 쉽게 쓰이지 않을 만큼 내 머릿속은 복잡한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단순한 일상을 보내고 있음을 기억한다.
결국 나는 보다 단순한 삶으로 갈 것이다. 가볍고 자유로운 삶의 모양을 향해 가게 될 것이다. 비록 아직은 내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 소개하고자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없고 그나마도 과거에서 끌어와야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일지라도. 지금 이렇게 추상적이고도 손에 잡히지 않은 이야기만 적고 있을지라도. 머지않아 신나게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것이다. 선택지가 많아져 헤매는 이 때는 낯설고 서툴지만 분명 가장 자유로운 때이니까. 나는 오늘도 더 자유로운 삶으로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