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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부인과 추쌤 Aug 15. 2019

암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암은 아니라는 걸 난 안다.

허리가 아파서 찍었던 MRI에서 우연히 발견된 난소 물혹으로 찾아오시는 분이 종종 있다. 그런 경우에는 생리주기마다 생겼다가 없어지는 정상적인 난소낭종일 가능성이 꽤 높다. 몸에 혹이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으면, 세상 모든 근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환자에게 설명한다.


초음파로 다시 보고 말씀드리긴 하겠지만, MRI상에서는 괜찮아 보이긴 하네요.

하지만 암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완경(폐경) 전 여성에서는 3-4cm 난소 물혹(난소낭종)은 자주 생기고, 드물긴 해도 생리주기에 따라 7-8cm 까지도 커질 수 있기에, 영상소견에서 크게 이상하지만 않으면 암이라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리 MRI 만 봐서 골반 안쪽까지 확인할 수 없어서 '괜찮다'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한다.

아프지 말자. 건강하자 자궁아 그리고 난소야

우연히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MRI에서 모습이 아무리 괜찮아 보일지라도 난소에 혹이 있으면 탐정이 되어 난소암의 위험 요인이 있는지 이것저것 물어보게 된다. 가족 중에 난소암이나 유방암은 없는지, 피임약을 먹었는지, 생리통은 심한지...


MRI를 찍은 날이어서, 초음파를 찍기 싫어서, 생리 중이어서 초음파를 못 본 경우에도, 초음파로 확인하고 괜찮아 보인다고 생각을 해도, 설명 끝에는 암에 대해서 언급하게 된다.

 

"사라지는 물혹일 텐데 안 사라지면 추가 검사해봐야 돼요~"

"암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괜찮아 보이는데 다음에 한번 더 확인해볼게요~"


'암'이라는 단어 한마디에 걱정 가득, 불신 가득한 두 눈동자를 보면서도... "암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는  모습이 싫을 때도 종종 있다. "괜찮습니다. 절대 암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내 입에서 "암이 아니다"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설명의무를 위반한 경우 강하게 조여 오는 민사/형사 소송의 압박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절대 틀리지 않는 100% 정확도의 눈을 가졌다면...
'암을 보곤 무조건 암이라고, 암이 아닌 것을 보곤 저것은 절대 암이 아니다'라고 말할 능력이 있었으면...


한 번 진료볼 때 0.01% 의 오진율을 자랑한다 하더라도 10000번의 진료를 하는 동안 한 번도 틀리지 않을 확률은 매우 낮다. (각각은 독립 사건이니깐 계산으로 해보면 0.9999를 10000번 제곱하면 되고 37% 정도 된다.) 평생에 10000번 만 진료를 볼까? 당연히 아니다. 하루에 10명, 1년에 200일만 근무한다 가정해도 10년에 20000명이다. 30-40년 진료 보는 것을 생각해보면 훨씬 더 많은 환자를 보게 되는 것이고 오진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영상 검사의 많은 발전으로 질병을 더 일찍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발견하지 못 하는 것은 죄악이 되고 있다.

게다가 암이라도 그 크기가 작을 때는 알아보기가 어렵다. 그리고 비싼 돈 내고 찍은 CT나 PET, MRI와 같은 영상에서도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수백 년 수십 년 전에 비해 많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존재하는 현대의학의 한계인 것이다.


그렇다고 오진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설명 끝에 늘 '암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설명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적은 가능성에도 설명을 많이 하고 다양한 추가 검사를 하게 된다. 이게 흔히 말하는 '방어진료'이며, 환자를 위하고 의사를 위한 모두에게 유리한 진료방식인 것이다. 명분은 좋다.


허준 선생님이 "줄을 서시오~"라고 진료할 때만큼은 아니어도 의료진과 환자 간의 깨어진 신뢰가 회복되어서 방어진료를 위한 말과 추가 검사가 줄어드는 그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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