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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부인과 추쌤 Aug 29. 2019

100원짜리 만병통치약

딸이 나에게 알려주다.

딸에겐 만병통치약이 있다. 심지어 가격은 100원밖에 하지 않는다. 어느 부위에 상관없이 다치거나 아픈 상황이 되면, 그리고 내가 배가 아픈 척 누워 있으면 딸은 쪼르르 달려가서 치료제를 찾는다. 아이의 만병통치약. 게임이나 소설에서나 볼만한 명칭이지만 딸에겐 존재한다.


  딸의 만병통치약

그 치료제를 딸은 "파스"라 부르는데 소위 '대일밴드'라 불리는 반창고이다. 그것을 딸은 키티 파스라고 부르고 만병 통치약으로 이용한다.

배가 아프다니 배에 붙여놓고 간 '파스', 얼마 안 있어 다른 곳에 쓸 곳이 있다고 떼어 가버렸다.

딸이 이 약에 대해서 보여주는 신뢰도는 어마어마하다. 머리를 '꽝~' 부딪혀도 키티 파스, 모기에게 '앙~' 물려도 키티 파스, 많이 걸어서 다리가 '노무노무~' 아파도 키티 파스 1장이면 오케이다. 찡그려졌던 표정이 밝아지고 안 오던 잠도 오고 만사형통 치료제이다.


반창고에 도대체 어떤 성분이 들어서 그런 효과가 딸아이에게 나타나는 것일까? 제약회사에서 밴드를 만들면서 이상한 화학 첨가물을 섞은 게 아닐까?... 라는 의심은 전혀 해보지 않았다. 의학적으로 증명되어 있는 플라시보 효과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라틴어로 '마음에 들다, 내가 기쁘게 해 주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플라시보(Placebo, 거짓 약, 위약)에 의해서 발생하는 효과이다. 즉 실제로 아무 효과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맹신하는 것에 의해 효과를 본다는 것이다. 마치 딸이 밴드만 붙이면 괜찮아진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당장에 눈앞에 보이는 상처를 가려준다는 것 때문에 효과가 있다고 맹신하고 그 효과를 누리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플라시보 효과와 상반되는 개념인 노시보(Nocebo)와 노시보 효과라는 것도 있다. 환자에게 실제로는 무해하지만 해롭다는 믿음 때문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물질을 노시보라고 말하고 그 상황을 노시보 효과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치료 과정에서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가는 통증, 치료의 효과, 몸의 변화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평가가 다소 어렵기 때문에 치료법을 개발할 때에도 이러한 효과들을 배제하기 위해서 신경을 쓴다. 임상 실험군에 되었다고 모든 대상에게 연구되고 있는 약제가 투여되는 것이 아니라 위약을 투여하기도 하며, 위약 여부를 알게 되면 의사의 치료 행태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의사조차도 위약/진약 여부를 확인할 수 없게 연구를 설계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위약투여의 가능성 또한 사전에 고지 받게 된다.


즉, 환자와 의사 모두 투약되는 약이 진짜 효과가 있는 약인지, 모양만 같은 거짓 약인지 알 수 없어서 감정과 신약에 대한 무한 신뢰로 발생하는 잘못된 해석을 배제하는 것이다.


(모든 실험이 위와 같이 설계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에 효능이 입증된 치료제가 있는 경우에는 기존 치료제를 사용하는 군과 새로운 치료제를 비교하는 방법 등을 이용해서 약의 효능에 의한 것이 아닌 외적 요인을 줄이기 위해서 정교하게 설계한다.)


  일체유심조

불교 《화엄경》의 핵심 사상을 이루는 말 중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는 뜻인데, '모든 사실은 그 해석에 따라서 개인의 진실이 되고, 개인 자신의 마음, 믿음에 따라 외부 세계는 형성된다'라고 말한다.

    신라의 원효 스님과 의상 스님도 함께 유학길에 나섰다. 어느 날 해가 저문 뒤 인가가 끊긴 산중에서 노숙을 하게 되었다. 두 스님은 바람을 피해 무덤 사이에서 잠을 청했다. 한밤중 원효 스님은 심한 갈증을 느껴 눈을 뜨게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둠 속에서 바가지 같은 것에 물이 고여 있기에 그 물을 마셨는데 맛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난 스님은 간밤에 자신의 갈증을 풀어준 그릇을 찾으려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릇이라고 여겼던 것은 인간의 해골이었고, 그 물은 빗물이 고여 썩은 것이었다. 스님은 불현듯 배를 잡고 오물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깨달음이 왔다. 간밤에 마셨던 물이 썩은 빗물인 줄 모르고 마실 때는 달콤하고 감미로웠지만, 아침에 일어나 해골 물인 줄 알고 나서는 온갖 추한 생각이 나면서 구역질이 나지 않았는가.  출처 : 백련사 사이트


마음만 먹으면 있던 암이 없어지고, 고질적인 질환이 사라지면 너무나도 좋겠으나 아쉽게도 의학적 치료는 해골물과 분명히 다르다. 정확한 조기 진단 이후 확실한 치료가 진행될 때에만 완치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에는 의학적인 요인 말고도 다른 요인이 작용한다. 몸의 전반적인 영양과 건강상태, 병과 치료에 대한 마음 상태, 의료진과 치료에 대한 신뢰와 같은 요인 말이다.

나는 딸이 붙여준 키티 파스로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안 좋아지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하지만 키티 파스를 사랑하고 믿어주는 키티 파스는 딸에겐 분명 명약임에 틀림없다. 딸이 키티 모양이 그려진 반창고를 '키티 파스'라고 부르며 아기 엄마, 나 그리고 본인을 치료하려는 모습을 보고 결심한 바는 다음과 같다.


내가 하는 치료에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신뢰를 주는 의사가 되어야겠다.


ps. 아이를 키우면서 참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낍니다. 우리 아이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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