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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챠 Jan 30. 2023

고흐의 '불확실성' 시기.

그가 귀를 잘라내고 병원을 오가던 시절에 관하여

35세.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잘라냈던 나이. 이때부터 고흐의 ‘불확실성(uncertainty)’ 시기가 열린다고들 한다. 


상황은 널리 알려진 바대로, 고갱과 고흐의 언쟁이 있었고, 불화 후 고흐는 자신의 왼쪽 귀를 잘라냈다. 귀를 절단한 이유도 아마도 그림에 대한 논쟁으로 인해서, 그로 인한 감정의 동요로 인해서였다. 


12월 23일이었다. 귀를 종이로 싸매고 창녀를 찾아간 고흐. 그를 본 여자는 기절. 혼란에 빠진 사창가. 그들이 경찰을 불렀고 경찰이 고흐를 입원시켰다. 


이 사건에 대해 신문에 난 기사 사진. 





병원에 실려간 지 하루도 되지 않아 동생 테오가 급히 기차를 타고 형을 찾아왔다. 그 외에도 그의 친구로서 와준 이들이 있었던 덕분에 몇달간 고흐는 조금 덜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고흐는 분명 잘 치료받았지만 상태는 좋아지기는 커녕 악화되기만 했다. 고독 속에서 홀로 보내는 날들도 있었다. 당시 병원장은 시장에게 고흐가 정신 이상이라는 증명서 및 편지를 보내며 그를 정신병원에서 치료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은 고흐를 제정신으로 돌려놓을 수 없으니까. 


다행스럽게도 고흐는 느린 속도였지만 결국 회복했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가 동생에게 쓴 편지를 보면 그 회복이란 아주 심각한 상태에서 벗어난 것 정도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자신의 팔이나 다리를 자르고 괜찮아지는 사람을 본 적은 있다, 그런데 사람이 자신의 머리(brain)를 잘라낼 수 있는지, 그리고나서 괜찮아질 수도 있는지 모르겠다는 문장이 담긴 편지를 보면 말이다. 



붕대 감은 자화상을 두 점 그린 뒤 양파가 올라온 정물화를 그린 것은 이때다. 





귀를 자른 뒤. 그가 입원했던 병원에서 본 풍경을 그린 그림과 자신을 치료했던 의사를 그린 그림.





고흐의 상태는 다시 나빠졌다. 입원과 퇴원이 반복됐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친구와 가족들에게는 걱정을, 바로 그의 곁에 사는 이웃들에게는 두려움을 만들었다. 그를 정말 두려워했던건 옆집 사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웃들은 고흐를 정신병원에 가두어야 한다는 청원도 제출한다. 


개인에게는 슬픔. 공동체에는 불안. 누구에게 죄가 있을까. 



이런 상황들은 고흐를 속상하게 했다. 나는 누구도 해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또다시 회복되었으나 감히 아를에 계속 머물 수 없었다. 물론 그러고 싶어했으나 동생이 보기에도, 그가 인정하기로도, 혼자 힘으로는 도무지 생활할 수 없는 상태였다. 


1889년 5월, 그는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그림을 그렸다. 





그가 들어갔던 정신병원에서 그린 그림들이 있다. 그는 이 생활을 망명 생활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유배 시절이라고 생각했을까. 이곳에서 그가 온전히 나았다고 보기도 어렵고, 이 생활과 치료가 그에게 완전히 쓸모 없었다고 할 수도 없다. 


내 생각에는, 어떤 병의 환자들이든지 간에 만성적인 질환이 있는 환자라면, 상태가 좋아지다가 나빠지다가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그에따라 좋아질 것을 기대하고 낙관적이 되다가 영영 이렇게 주저앉아 버리고 말 것이라는 절망에 사로잡히는 것 같다. 고흐 역시 그랬다. 


그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다른 환자들에게서 어떤 거리감을 느꼈고 또 그러다가 언젠가는 그들을 통해 자신을 보게 되었는지, 결국 그곳이 자신을 말려 죽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초기에는 분명히 좋아지기도 하지는 않았는지. 그는 어디서 그림을 그렸는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그런 말들은 여기서 묻어두기로 하자. 



다만 그에게 이 시절, 가장 강력한 치료제 중 하나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고. 그래서 그림을 그릴 수조차 없던 날이 그에게 가장 힘든 날이었다고. 그가 다시는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 같았던 날이 가장 깊은 어둠 속이었다고. 그리고 또 그럼에도 여기서 아주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작품들을 그렸다고. 나는 그것을 기록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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