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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챠 Jul 16. 2022

원래 정치인 체질은 아니었단 말이야!

처칠은 기병이 되었다.


그리고 소위가 되었을 , 그는 이미 다섯 곳에서 전투에 참전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평화로웠다는  감안하면 처칠이 어지간히 전투를 찾아다녔다는    있다.


실제로 그는 전투를 찾아다니는 성미를 가지고 있었다. 쿠바로, 인도로( ), 수단으로, 남아프리카로 갔다. 그는 전쟁터를 찾아 다니며 군에서 자신의 열정을 불태웠다.


 시절은 처칠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시절이었다. 아버지 랜돌프 처칠은 사망했고 그는 적성에 맞는 직업군인 발견했다.


아버지의 죽음은 슬픈 일이었지만, 어쩌면 어린 처칠을 위압적인 아버지로부터, 자신을 실패자로만 보던 아버지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동시에 그는 적성에 딱 맞는 직업에 발을 담궜다.








후대 사람들은 처칠을 정치인으로 기억하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었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 ‘타고난 정치인 기질’에 맞는 인물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예컨대 애스퀴스(Herbert Asquith), 윌슨(Woodrow Wilson),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와 같은 ‘전쟁의 와중에서도 자신을 보존한 정치가’ 타입의 인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위대한 군인일까? 그렇지도 않다. 처칠은 루덴도르프(Erich Ludendorff), 마셜(George Marshall), 몽고메리(Bernard Montgomery), 주코프(Georgii Zhukov)와 같은 ‘위대한 직업군인’ 부류에도 속하지 않는다.





처칠과 같은 부류의 인간 군상을 찾고 싶다면 시대를 좀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눈을  위로, 역사의 시간을 앞당겨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처칠이 속할 부류를 다음의 이름에서 찾을  있다: 아돌프(Gustav Adolf), 크롬웰(Oliver Cromwell), 프리드리히 대왕, 나폴레옹과 같은 인간 군상들.


이들은 모두 전략가이자 정치가이며 외교관이었던 부류다. ‘전쟁을 통해서만’ 그리고 ‘오직 전쟁에서만’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사람들 말이다. 나폴레옹은 그 자신에 대해 ‘전쟁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 말했다. 처칠은 바로 이와 같은 부류에 속한다.



이들은 전쟁의 모든 양상을 본능적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전쟁의 모든 측면전략적이든, 정치적이든, 외교적이든, 심리적이든, 사기에 대한 것이든 모두 사랑한다.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전쟁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극단적인 전쟁의 현실을, 치명적인 육탄전을, 포연과 생명의 위협까지, 모든 것을.


처칠 역시 이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젊은 기병 소위였던 처칠이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나, 아마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던 즈음에는 자신이 그러한 사람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는 타고나기를 ‘전쟁 친화적인 인간’이었고, 전쟁을 이해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간이었다.   



학교의 규율을 싫어했고 동급생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처칠은 이제 군대의 가혹한 훈련을 사랑하는 사람, 동료들 사이에서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 되어 생활한다. 공부하라는 강요가 사라지자 학문에 대한 열정이 타오르는 것을 느낀다.


이 시절, 그는 온갖 책을 읽었다. 그리고 직접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보고, 국지전이 벌어지는 곳을 찾아냈다. 나아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간계를 꾀어내고 동원할 수 있는 세력을 동원해서 전방에서 자리를 얻어내 출전했다.



여기서 그의 또다른 천직을 발견하게 되는 다른 계기가 있다.  시절의 그는 동료였던 기병 장교들에 비해 가난했다. 아버지는 빚을 남기고 죽었다. 물론 그의 어머니가 상당한 금액을 생활비로 보내주었고 절대적인 수치로 보아 그가 가난했다고  수야 없겠지만, 자신의 동료들에 비하면 그는 가난했다. 그는  자신의 생활비를 셈해야 했고, 직접 돈을 마련해야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종군 기자 노릇을 하며 글을 썼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처칠의 ‘기자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의 글은 팔렸다. 점차 보수가 올라가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책도 냈다. 『말라칸드 야전부대 이야기(The Story of the Malakand Field Force)』가 출간됐다. 세번째로 출간했던 『리버 워(The Liver War)』는 그가 최초로 낸 걸작이었다.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자 사람들이 처칠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펜을 휘두르며 얻은 권력은 런던의 진짜 권력자들이 처칠에게 관심을 보이게 했다.


장관들과 차관들이 자신의 파티에 처칠을 초대했다. 13년동안 재임하고 있던 총리 솔즈베리도 처칠을   만나보고자 했다.


이 사람들이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바로 그가 정계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당연히 보수당의 의원으로 말이다.


정계를 향한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정치는 경력과 권력, 명성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확실한 길이었다. 물론 그 길에는 모험도, 전쟁도, 위험도 함께 했다.  




군인과 작가에 이은 세번째 직업이 그를 찾아온 것이다. 그것은 정치인이었다. 처칠은 이 길을 피할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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