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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챠 Sep 11. 2023

성폭행 당한 여학생이 자살에 이른 사건에 대하여

최근에 봤던 여러 끔찍한 기사 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아프게 했던 사건은 성폭행을 당한 여학생이 자살을 했다는 기사였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갔다가 봉변을 당했고 성폭행으로 인해 헤르페스라는 성병까지 앓게 된 이후 처지를 비관해서 자살한 사건. 


가해자 중 한 명은 구속되었고 그 가해자를 도와 일종의 ‘망보기’ 역할을했던 두 명은 불구속송치되었다고 했다. 구속과 불구속을 가르는 법적인 기준을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실상 망을 본 그 두 명도 똑같은 악질이 아닌가, 그들도 당연히 구속수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분노감이 일었다. 


이 사건은 마음 속에 잔상을 남겨 계속 생각이 났다. 특히 폭행 당한 아이가 성폭행을 당한 직후라기 보다는 성병을 의심하고, 인터넷으로 증상을 찾아보고, 병원에 가서 성병 확진을 받은 그 날 자살을 했다는 것이. 


아마 성병을 앓는 것이 수치스럽고 끔찍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병은 나을 수 있고 치료할 수 있는 병이 아닌가. 무엇이 더 낫다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그 아이에게 성폭행을 당한 일보다 성병을 앓는 일이 더 끔찍했을까 짐작해보게 한다. 그리고 말이지, 혹여 병원에서 담당 진료를 본 사람이든 간호사든 누구든, 이건 금방 나을 수 있는 것이고 걱정할 일이 없다고, 괜찮을 것이라 말해주었으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그 아이는 살아있을까, 살아서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까지도 상상해보게 되는 것이다. 

다른 면으로 죽어버린 그 아이를 진료했고 만났던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한 마디의 말이라도 해줄걸 하는 후회를 남겼을까도.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 내가 내뱉는 한 마디의 말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것이 아닌지. 늘상 유형수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살던 노인이 감옥에 들어가기 전 죄수들에게 따뜻한 음식과 눈빛을 건넸다던 소설 속 구절이 생각 난다. 고단한 유형 생활 중에 그 노인의 눈빛이 주었던 따스함을 기억하는 죄수가 있다고. 친절의 영향력과 효과는 모두에게 다르게 다가오겠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그 노인의 친절로 인해 삶이 바뀔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 아니더냐 하고 묻던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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