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봤던 여러 끔찍한 기사 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아프게 했던 사건은 성폭행을 당한 여학생이 자살을 했다는 기사였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갔다가 봉변을 당했고 성폭행으로 인해 헤르페스라는 성병까지 앓게 된 이후 처지를 비관해서 자살한 사건.
가해자 중 한 명은 구속되었고 그 가해자를 도와 일종의 ‘망보기’ 역할을했던 두 명은 불구속송치되었다고 했다. 구속과 불구속을 가르는 법적인 기준을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실상 망을 본 그 두 명도 똑같은 악질이 아닌가, 그들도 당연히 구속수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분노감이 일었다.
이 사건은 마음 속에 잔상을 남겨 계속 생각이 났다. 특히 폭행 당한 아이가 성폭행을 당한 직후라기 보다는 성병을 의심하고, 인터넷으로 증상을 찾아보고, 병원에 가서 성병 확진을 받은 그 날 자살을 했다는 것이.
아마 성병을 앓는 것이 수치스럽고 끔찍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병은 나을 수 있고 치료할 수 있는 병이 아닌가. 무엇이 더 낫다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그 아이에게 성폭행을 당한 일보다 성병을 앓는 일이 더 끔찍했을까 짐작해보게 한다. 그리고 말이지, 혹여 병원에서 담당 진료를 본 사람이든 간호사든 누구든, 이건 금방 나을 수 있는 것이고 걱정할 일이 없다고, 괜찮을 것이라 말해주었으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그 아이는 살아있을까, 살아서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까지도 상상해보게 되는 것이다.
다른 면으로 죽어버린 그 아이를 진료했고 만났던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한 마디의 말이라도 해줄걸 하는 후회를 남겼을까도.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 내가 내뱉는 한 마디의 말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것이 아닌지. 늘상 유형수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살던 노인이 감옥에 들어가기 전 죄수들에게 따뜻한 음식과 눈빛을 건넸다던 소설 속 구절이 생각 난다. 고단한 유형 생활 중에 그 노인의 눈빛이 주었던 따스함을 기억하는 죄수가 있다고. 친절의 영향력과 효과는 모두에게 다르게 다가오겠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그 노인의 친절로 인해 삶이 바뀔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 아니더냐 하고 묻던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