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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에세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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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챠 Jan 30. 2024

나부터 잘하세요?

식사를 마친 뒤 설거지 거리를 잔뜩 쌓아 두고 너무 피곤하다며 방에 들어간 배우자를 두고 혼자 아이 기저귀를 갈고 뒷바라지를 했다. 그리고 설거지를 하기 위해 싱크대 앞에 섰다. 오늘은 설거지거리가 많다.


그러나 그 일이 별로 피로하지 않았던 것은 그가 해야 마땅한 일을 대신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였다. 그의 피로를 배려해 설거지 해주고 싶었고, 피로를 털어낸 그가 나와 주방 일을 하려고 팔을 걷어부칠 때 깨끗한 주방을 보고 기뻐했으면 했다.


사람 마음에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보상을 바라거나 알아주기를 바라거나 하는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그보다는 저 이의 피로를 덜어주고, 저 이의 기쁨을 바라는 것.

이를 두고 상대방을 섬기는 일이라 할 수 있다면 ‘섬기는 태도’야 말로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기초가 되는 듯 하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태도는 상대를 섬기는 태도인 것 같다.


그러나 섬기는 태도가 가장 기본이 되니 우리 모두 상대를 섬기며 살자고 말하기에는, 글쎄.

하필이면 오늘 반평생 넘게 함께 산 아내를 망치로 내리쳐 살해한 노인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일평생 아내가 집안일 하고, 돈 벌어 오고, 자녀도 키우고. 그럼 업어서라도 아내를 봉양해야 할 판에 아내에게 폭언을 하고, 때리고. 종국에는 망치로 내리쳐 아내 인생을 끝내 버린 노인.

아내가 열심히 돈 벌어 산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해달라고 했다가 아내가 거절하자 술 마시고 홧김에 그런 짓을 저질렀댄다.


아무리 마음을 갖다 바치고 열심히 살아도 아무 소용 없다, 아무리 고생해도 부질 없는 짓이다.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다. 참 비참한 일이지.

그러나 저것이 내 생각의 끝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건 여태껏 수고와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왔던 덕분이다.


비극적인 기삿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이 고운 사람들이 내게 그러했듯이 다른 이들이 나를 통해 세상의 좋은 면을 보기를. 세상의 좋은 면을 믿기를.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세상과 사람을 회의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민하기를. 그런 것들을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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