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을 든 악당이 십자가를 지기까지

'와서 보라'는 한마디의 무게: 요한복음 1장:35~51


어제 영화 <신의 악당>을 보며 묵직한 전율이 일었다. 주인공은 그리스도인을 처형하는 책임자였다. 자신의 일기장 때문에 어머니가 살해당하고, 삼촌마저 제 손으로 죽여야 했던 그는 하나님을 향한 증오로 가득 찬 '악당' 그 자체였다. 북한 보위보가 2억 달러를 위해 할 수 없이 한국과 같은 예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인공은 성경을 읽고 찬양을 '연기'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거짓으로 뱉던 그 찬양과 말씀이 그의 심장을 파고든 것이었다.




이는 오늘 묵상하는 요한복음 1:35-51의 나다나엘과 묘하게 겹치게 된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며 냉소하던 나다나엘에게 빌립이 던진 말은 복잡한 논증이 아닌 "와서 보라"였다. 결국 주님을 대면한 순간 그의 편견은 무너졌고,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항복의 고백이 터져 나왔다.


영화 속 주인공도 마찬가지였다. 이론이 아닌 '성령의 임재'를 직접 경험하자, 그는 '공연 후 처형하라'는 명령 대신 성도들을 구하고 스스로 십자가의 길을 택했다. 모진 고문을 당하며 눈밭에 끌려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던 예수님의 그림자를 보았다. 목숨을 건 북한 성도들의 믿음 앞에, 안락함에 길들여진 내 신앙이 얼마나 초라한지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깨달은 점

첫째. 믿음은 '정보'가 아니라 '대면'이다. 주인공이 성경 '읽는 행위'를 반복할 때 성령이 임했듯, 믿음은 머리로 납득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머무는 '시간'을 통해 완성됨을 깨닫는다. 이제 지식을 쌓는 공부가 아니라, 주님을 만나는 대면의 시간을 꼭 지키기 위해 오늘도 묵상시간으로 먼저 하루를 시작한다.


둘째, 편견이라는 커튼을 걷어내야 한다. "나사렛에서 뭐가 나오겠어?"라는 편견이 주님을 가렸듯, 나 역시 환경과 상식이라는 틀 안에 하나님을 가두었다. 고난 속에서도 찬양을 잃지 않는 북한 성도들의 모습은 나의 편안한 신앙에 던지는 엄중한 경고였다.


셋째, 삶의 향기로 "와서 보라"고 말하겠다. 복잡한 교리 설명보다 내가 만난 주님을 삶으로 증명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다짐해 본다. 나다니엘의 '무화과나무 아래'처럼, 매일 30분은 온전히 주님과만 대면하며 영적근육을 키워나가야겠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은 살아계신다'라고 당당히 고백하는 단단한 믿음을 소망한다.


#묵상 #요한복음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