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지난날을 돌이켜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책을 읽다가도, 스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다가도 문득 멈춰 서게 된다. 그럴 때마다 지금 내 곁에 ‘독서모임’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지난 토요일, 우리 모임의 주인공은 책 <렛뎀>이었다. ‘내버려 두라’는 그 단순하고 쉬운 말이 왜 그리도 가슴을 치던지. 책장을 넘기는 내내 그동안 짓눌렀던 사회생활의 스트레스와 ‘내가 다 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들이 떠올랐다.
마음속으로 가만히 읊조려 보았다. “내버려 두자.” 그 한마디에 팽팽했던 마음의 줄이 느슨해지며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 지혜가 회원들에게도 닿았는지, 그날따라 함께한 선배님들의 얼굴이 유난히 편안해 보였다. 서로가 서로를 돕는 따스한 공기 속에서 행복하게 모임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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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이 끝나자마자 남편과 서둘러 부산역으로 향했다. 마침내 생일이었던 그날, 남편은 어디든 함께 가고 싶어 하며 서울행 기차표를 건넸다. 목적지는 잠실 교보문고, 김미예 작가님의 사인회장이다. “사람들은 내게 웃는 모습이 예쁘다고 한다”는 책 제목처럼, 환하게 웃는 작가님의 모습은 참 고왔다. 거리가 멀다는 핑계로 한동안 찾지 못했던 사인회였지만, 그간의 인연 덕분인지 오랜만의 만남이 무척 반가웠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현장에서 만난 많은 분이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주신 것이었다. 알고 보니 남편이 그동안 부지런히 내 이름을 홍보하고 다녔던 것이다. 쑥스러우면서도 남편의 속 깊은 외조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남편의 응원 덕분에 낯선 자리에서도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금세 온기를 나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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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일의 하이라이트는 가족들과의 만남이었다. 큰아들 가족은 멀리서 보내온 영상 속에서 손주들과 함께 손을 흔들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와 해맑은 미소만으로도 이미 내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작은아들과의 만남. 맞벌이하느라 살뜰히 챙겨주지 못했던 미안함이 늘 마음 한구석에 빚처럼 남아있던 아들이다. 아들은 어느새 훌쩍 커서 분위기 좋은 식당을 예약하고, 작은 가방 선물 하나를 건넸다. 그것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었다.
두꺼운 나무판 위에 우리 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고, 그 뒷면에는 아들의 진심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 안녕하세요... 어느덧 저도 벌써 서른 살이 되었네요.... 한결같이 사랑해 주시고, 좋은 사람들도 멀리 가서 만나게 해 주시고,...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초를 잘 다져주신 만큼 저도 그렇게 살아가면서 꼭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보답하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
나무 냄새 가득한 그 편지를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며,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들이 쓰는 돈이 아까워 마음이 편치만은 않은 '엄마의 마음'보다, 부모의 삶을 이토록 깊이 이해하고 감사해하는 '아들의 진심'이 훨씬 더 크고 묵직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은 어느덧 사라지고, 그저 바르게, 그리고 따뜻하게 잘 커 준 아들의 모습에 ‘아, 내 인생도 참 잘 흘러왔구나, 이만하면 성공한 삶이구나’ 하는 안도감과 형용할 수 없는 감사가 차올랐다.
옥죄던 일들을 ‘내버려 두니’ 비로소 소중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항상 내 편이 되어주는 남편, 멀리서도 사랑을 전하는 큰아들 가족과 귀여운 손주들, 그리고 나무에 진심을 새겨 건넬 줄 아는 대견한 작은아들... 이 모든 것이 제게는 기적 같은 선물이다,
이번 생일이 내게 가르쳐 주었다. 억지로 붙잡으려 애쓰지 않아도, 진심을 다해 살아온 시간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가장 환한 빛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오늘도 마음속으로 가만히 되뇌어본다.
"렛뎀, 내버려 두자. 그러면 비로소 내 생애 눈부신 행복이 걸어 들어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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