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뭐 삶이 쉬운줄 알았니?

60중반 오빠의 눈물

"독수리가 높은 바위에서 내리덮쳐 새끼 양 한마리를 채어갔다. 이것을 본 갈까마귀가 경쟁심이 생겨 독수리를 흉내 내려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숫양을 덮쳤다. 갈까마귀는 곱슬곱슬한 양털 속에 발톱이 박히는 바람에 아무리 날개를 퍼덕여도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결국 목자가 어찌 된 일인지 알고는 다가가서 갈까마귀를 잡았다. 목자는 날개 끝을 자른 다음 저녁때가 되자 자기 아이들에게 갖다주었다. 이것이 무슨 새냐고 아이들이 묻자 목자가 대답했다. “내가 알기로, 이 새는갈까마귀가 분명해, 그런데 제 딴에는 자기가 독수리인 줄 아나 봐.”<이솝우화 중 독수리와 갈까마귀와 목자>


밤 11시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 '오빠'였다. 일반 전화도 아닌 영상통화였다. 4번이나 왔지만 받지 않았다. 일반 전화인지 영상 통화인지도 모르고 한 것 보니 술에 취한 것임이 틀림없었고, 무엇보다 술 마시고 전화하면 몇 시간이고 끊지 않는다.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 오빠에게 전화했다. 오빠는 부재중 전화를 보고 12시쯤 다시 전화가 왔다. 예상대로 오빠는 술이 많이 되어 있었다. 오빠가 하는 이야기만 듣고 중간중간 추임새만 넣었다. 오빠는 말했다. "이렇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너무 좋다. 말남아"(말 남이는 개명 전 내 이름이다) 이 말에 '오빠 내일을 위해 전화 끊자'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새벽 3시가 넘었다. 옆에서 남편의 짜증 섞인 몸부림이 있었지만 오빠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싶었다. 오빠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틀어놓았다. "말남아. 내가 S대학교 다닌다고 편하고 잘 지냈겠냐?" 오빠는 설움이 올라오는 듯 한 번씩 조용해졌다. 오빠는 상고를 졸업하고 S대학교를 갔다. 학창 시절, 친구들 사이에 왕따를 당했다고 했다. 시골 초가집에서 방 한 칸 부엌 한 칸인 슬레이트집으로 이사하고 바로 서울로 대학교를 갔기에 오빠는 내세울 것이 없었다. 오빠는 독수리를 넘볼 수 없는 갈까마귀였다. 그럼에도 오빠는 자꾸 독수리처럼 날려고 했다. 혼자 점심 먹어야 하는데 오빠는 철면피처럼 친구들 사이에 억지로 끼어들었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은 말했다. "임마는 왜 여기 끼어?" 오빠는 뭐라고 하던지 들이댔다고 했다. "네가 생각한 만큼 오빠는 즐겁게 살지 못했다. 너는 내가 잘 사는 줄만 알았지? 친구들에게 왕따 안 당하려고 책도 많이 보고 남들보다 몇 배 노력했다. 무시당하는 것이 힘들었어. 덕분에 원하는 자리에 갔고 지금은 가만있어도 자기들이 오지만…."


오빠는 무방비 상태였다.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는 듯 오빠는 계속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날만큼은 들어주고 싶었다. 어떤 말도 가로막지 않고 끝까지 들었다. 새언니와 요즘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 "말남아! 예전에 나를 좋아했던 여자애가 2명 있었어. 결혼하자고 했는데 가난해서 못 했어. 나도 가난했기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지. 다운이 사는 모습을 보니 내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많이 깨닫는다. 말 남아!"다운 이는 내 큰아들이다. 맞벌이도 아니고 월급쟁이지만 아이 둘 낳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 집안에 소문났고 오빠는 다운을 보니 결혼 전 생각이 난 것 같다. 오빠와 친한 줄 알았는데 오빠의 인생 이야기를 3시간 동안 들으면서 오빠에 대해 너무 몰랐던 나를 반성했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곳만 다니는 오빠가 부럽기만 했던 내가 미안했다. 오빠는 갈까마귀였다. 독수리로 살려고 하다 보니 사람들의 비웃음도 많았을 오빠의 삶이 안타까웠다. 오빠의 눈물 섞인 목소리에 길어지는 전화를 끊을 수 없었다.


내 삶도 그랬다. 갈까마귀이면서 독수리인 척 살아가려고 했던 시간이 길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 없는데 나만 남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썼다. 독수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내 만족을 위해서다. 남들은 나보고 그렇게 살라고 하지 않는다. 내 선택이다. 남들에게 이해관계가 없으면 아무도 갈까마귀라고 무시하지 않고 독수리라고 우러러보지 않는다.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것은 내 마음이다. 갈까마귀이면 어때? 갈까마귀로 살면 된다. 내가 나로 살아갈 때 행복하다. 내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따라가려고 하면 더 힘들 뿐이다.


오빠는 독수리인 척 살아간 것이 아니라 갈까마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큰 노력을 해왔고 독수리자리까지 갈 수 있었다. 노력은 하지 않고 무작정 독수리가 되려고 하면 남에게 웃음거리가 되지만 내일은 오늘과 다른 사람을 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면 조금씩 스며들 것이고 언젠가는 독수리가 되어 있을 것이다. 독수리가 무조건 행복한 것이 아니고 내가 원하는 독수리 삶을 살아갈 때 행복한 것이다. 독수리를 부러워하며 살았던 오빠가 독수리가 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더 높이 날고 싶은 독수리를 꿈꾸는 것보다 오빠의 현재의 삶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keyword
이전 24화KBS아침 마당에 출연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