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감정조차 방향을 잃는 곳

완벽함의 쓸쓸함

by 포르마


. 한국 사람들에게 살면서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에 대해 질문하면 스위스는 거의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실제로 다녀온 사람들 대부분은 너무 좋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언젠가 다시 방문하기를 소망한다.


. 그렇게 모두가 감탄하던 풍경 앞에서, 이상하게도 나는 크게 감흥이 없었다. 호수는 너무 맑았고, 공기는 깨끗함을 넘어선 무균에 가까웠다. 기차 창밖으로 펼쳐진 설산의 곡선은 누가 보더라도 아름다웠지만, 내 안에서는 어떠한 파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모든 것이 ‘완벽’이라는 이름 아래 정리되어 있어서, 감정이 스며들 틈이 없었던 것 같다.


. 그건 실망이라기보다, 매우 낯선 종류의 평온함이었다. 아무런 소음 없이 정지된 시간 속에 있는 느낌, 그 고요함 덕분에 오히려 내가 얼마나 소란스러운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 완벽은 때때로 감정을 무디게 만든다.


. 스위스의 경치는 그저 한없이 아름답기만 했다. 산과 호수, 그리고 하늘의 경계까지 어딘가 정확했다. 자연이라기보다 완벽히 설계된 그래픽 이미지 같았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감탄을 이끌어내기보다, 감정을 정리해버리는 힘에 가까웠다.


. 어쩌면 아름다움이란, 조금의 어긋남과 유연함이 있어야 비로소 숨을 쉬는지도 모른다. 이곳의 완벽함은 그래서 더 낯설었다. 흠잡을 데 없었지만, 그 흠 없음이 나를 멀리 밀어냈고, 나 자신의 불완전함이 또렷이 나타났다. 주변의 고요함이 내 안의 공백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 기분이었다.


. 그제야 알았다. 나는 언제나 ‘의미’를 찾아 헤매며, 그 안에서만 안심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 융프라우 정상에 올랐을 때, 묘한 현기증이 몰려왔다. 공기가 희박해질수록 머리가 멍해졌고, 완벽한 환경이 마치 나를 거부하는 것만 같았다. 아마도 그건 고산병 때문이었을 테지만, 그 감각이 이 나라가 가진 묘한 거리감처럼 느껴졌다. 너무 높고, 너무 순수해서, 오래 머물 수 없는 곳. 그때 처음으로 ‘아름다움이 꼭 편안함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 취리히나 베른 같은 도시로 내려왔을 때조차, 정교함은 그대로 이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의 속도를 방해하지 않았고, 모든 것이 잘 작동하고, 규칙적으로 흐르고, 불필요한 마찰이 없었다. 도시의 질서 속에서 살아있는 ‘우연’이 보이지 않았다. 불빛은 아름답게 정돈되어 있었지만, 따뜻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짜인 도시는 시간조차도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정밀한 시계 같았다. 그 안에서 나는 점점 ‘살아있다’기보다는 내 리듬이 아닌 박자에 억지로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 우리는 언제나 완벽을 동경하지만, 그 완벽 속에서는 숨 쉴 수 없다. 결함이 없는 세상은 감정이 머물 자리를 남기지 않는다. 스위스는 그래서 더 찬란했고, 동시에 조금은 쓸쓸했다.



. 스위스 사람들은 조용한 균형 속에서 어울려 사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었고, 그곳의 완벽하게 정돈된 풍경을 완성 시켰다. 그들은 근심도, 조급함도 없는 얼굴로 거리를 걸었다. 화가 난 표정을 본 기억이 없다. 만약 천국이 있다면, 그곳의 시민들은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반려견과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 · 목장의 소와 알파카 · 산 정상에 세워진 나무 십자가까지, 평화로운 장면이 쭉 이어졌다.


. 옷차림 역시 그들의 삶과 닮아 있었다. 도시 외곽으로 나갈수록 등산·스키복이나 적당한 두께의 후드집업, 편한 트레이닝팬츠가 눈에 띄었다. 그 옷들은 기능적이지만 과시적이지 않았고, 색감은 알록달록했지만 풍경과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 초록 들판 위의 오렌지, 흰 설원 아래의 레드 캡.


. 그들은 대자연의 일부처럼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스위스에서 나는 이렇게 입었다


· Arc’teryx / Beta LT Jacket (Black Sapphire)

고어텍스 3L 원단으로 만들어진 하드 셸 재킷. 바람을 완벽히 차단하면서도 답답하지 않아, 도시와 산을 오가는 여정에 적당했다. 아크테릭스 특유의 절제된 실루엣 덕분에, 기능복이지만 미니멀한 아우터로 느껴졌다. 블랙 사파이어 컬러는 자연 풍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이곳 사람들의 생활 속 아웃도어 감각과도 맞닿아 있었다.


· Printstar / 무지 긴팔티 (화이트)

100% 코튼, 5.6oz, 17수. 무지 티 중 가장 자주 입는 제품. 적당한 두께와 깔끔한 목선 덕분에 단품으로도 충분하다. 스위스의 초봄 날씨에는 다소 얇았기 때문에 상·하의 안에 내복을 착용했다. 아크테릭스 재킷의 밑단 스트링을 주여 레이어드가 드러나도록 연출해, 전체적인 착장의 단조로움을 덜었다.


· Salt Avenue / 올브러쉬 데님 1176 (진청)

면 100%. 짙은 인디고 톤에 은은한 브러싱 워싱이 더해져, 흰 티와의 조합에서도 밋밋하지 않았다. 햇빛에 닿으면 살짝 푸른 광이 맴도는 색감이 인상적이었다. 아크테릭스의 재킷의 컬러와 톤온톤으로 맞아떨어져, 도시적인 정제미와 아웃도어의 실용성이 동시에 느껴졌다.



. 스위스에서의 며칠은 완벽함이 인간에게 어떤 감정을 남기는지 곱씹게 만든 시간이었다. 모든 것이 정교하게 맞물린 세상 속에서 감정은 흐를 자리를 잃었다.


.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 리듬에 완전히 녹아드는 대신,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주변의 완벽한 질서에 맞추기보다는, 그 틈에서 내가 어떤 호흡으로 살아 있는지를 느끼려 했다. 그건 어쩌면 불완전한 존재로 남겠다는 조용한 저항이자, 스스로에게 남긴 작은 온기였다.


. 스위스의 완벽함은 차가웠지만, 그 안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묘하게 따뜻했다. 완전함이 주는 안정 대신, 거기서 밀려난 자리에서 비로소 나의 온도를 찾았다. 완벽한 자연 풍경 속에서도 미세한 인간의 체온이 남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공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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