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에서 익숙함을 찾는다는 것
. 토스카나를 여행할 때, 며칠간 밀라노에 있는 레오의 할머니 댁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산지미냐노편 참고) 할머니는 내가 도착하자마자 성심성의껏 챙겨주셨다. 아침에는 갓 데운 판토네와 과일들을 꺼내주셨고, 점심엔 수제 라비올리를 건네주셨고, 저녁에는 양고기를 요리하시며 끊임없이 나를 사육해 주셨다. 덕분에 나는 여행자가 아니라, 잠시 이탈리아 집에 얹혀사는 손주가 된 기분이었다.
. 이 집에서 지내는 동안, 이탈리아인들의 커피 사랑이 얼마나 생활 깊숙이 스며 있는지 다시 한번 실감했다. 아침 먹고 한 잔, 점심 먹고 한 잔, 오후에 나른해질 때쯤 또 한 잔. 평소 카페인을 달고 사는 편이라 생각보다 어지럽거나 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이들의 속도에 내 몸이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 레오는 며칠 동안 밀라노 곳곳을 안내해 주며, 관광지보다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려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은 치과 예약이 있다며 반나절 정도 개인 일정이 생겼다.
그러면서 레오는 내게 자연스레 물었다:
“너는 오늘 뭐 할 거야?”
나는 별생각 없이 말했다:
“성당 들렀다가, 최후의 만찬 보고, 점심 먹고… 스타벅스 가지 않을까?”
레오는 잠시 나를 보더니, 특유의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너는 왜 밀라노까지 와서 스타벅스를 가?”
. 농담처럼 들렸지만, 묘하게 오래 남는 질문이었다.
. 그렇다고 내가 현지 카페를 찾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중에서도, 카페 나폴리(Caffè Napoli)에서 마셨던 에스프레소는 지금도 생생하다. 작은 잔 안에는 아몬드의 고소함, 에스프레소의 짙은 쌉싸래함, 카카오 파우더의 은근한 달콤함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 내부 인테리어는 남부 특유의 화려함과 소박함이 공존했다. 화이트·블루·레드의 배색만으로도 “이탈리아 남부는 이런 분위기일까?”라는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크게 세 가지 이유로 스타벅스를 들렸다.
. 첫 번째는, 이탈리아의 ‘커피 문화’ 그 자체 때문이다.
. 이곳에서 커피는 휴식이 아닌 활력이다. 도시 어디를 가도 바(Bar) 스타일 카페가 대부분이고, 사람들은 웬만하면 착석하지 않는다. 에스프레소 한 잔을 주문하고, 그 자리에서 2-3분 안에 마신 뒤 쿨하게 퇴장한다. 게다가 영업시간도 짧다. 이런 환경에서는 자연스럽게 밤늦게까지 편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찾게 된다. 스타벅스는 이 ‘빈자리’를 정확히 채워준다.
. 두 번째는, 어머니께 드릴 선물 때문이다.
. 스타벅스는 이미 10년 넘게 ‘You Are Here’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다. 해당 도시에만 판매하는 머그컵은 여행의 흔적이자, 기억이 형체로 남는다. 나는 2016년 토론토에서 처음으로 부모님께 사드린 뒤, 매 도시마다 꼭 하나씩 챙겨왔다. 그래서 스타벅스를 보면 무의식적으로 “오늘도 하나 챙겨가야지.”라는 마음이 든다. 어쩌면 나에게는 카페라기보다, 작은 의식 같은 곳이다.
. 세 번째는, 솔직한 이유로, 아이스 아메리카노 때문이다.
. 경영학 전공으로서 조금 지루한 얘기를 하자면, 이는 ‘Mcdonaldization’이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동일한 품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스타벅스는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이탈리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팔고, 여행객들에게는 익숙한 맛을, 현지인에게는 새로운 선택지를 준다. 여기에 국가별 시그니처 메뉴와 한정 콜라보 제품까지 더해지면, 방문 이유는 더욱 다양해진다.
. 결국 스타벅스는,
. “왜 여행 와서까지 가?”라는 질문에, “그래서 가야 해.”라는 이유를 만들어낸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 스타벅스가 이탈리아에 첫발을 들인 것은 2018년 밀라노 오픈이다.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브랜드지만, 이탈리아만큼은 유독 진입이 늦었다. 그들의 커피에 대한 자부심과 1유로로 끝나는 일상의 리듬을 생각하면,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 그래서 스타벅스는 정면 승부 대신, 전 세계 2곳 밖에 없었던 리저브 로스터리라는 가장 프리미엄 한 카드를 내밀었다. 밀라노 대성당 근처의 중심지에 거대한 커피 극장을 만드는 경험형 공간을 택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커피가 음료가 아니라 하나의 여정처럼 설계되어 있었다.
. 외관은 유럽 특유의 멋이 있었지만, 내부는 솔직히 도쿄 리저브 로스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밀라노 한복판에서도 ‘정답 같은 미감’을 보여주며, 스타벅스는 여전히 스타벅스였다.
. 또한, 막상 가보면 관광객이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스며들어, 천천히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는 현지인들도 꽤 보였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짧고 강한 커피를 사랑하지만, 오래 머물 공간은 쉽게 찾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느린 공간을 긴 시간 붙잡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익숙함은 때때로 여행의 가장 큰 사치다.
이탈리아의 카페는 순간을 준다.
빠르게 마시고 바람처럼 사라지는, 도시의 박동 같은 시간.
반면, 스타벅스는 시간을 붙잡을 공간을 준다.
잠시 호흡을 고를 수 있는 느슨함. 낯선 도시에서 내 리듬을 되찾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들 중 하나다.
그래서 나는 결국 스타벅스의 문을 열었다.
그곳을 간다고 해서 여행이 덜 특별해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낯선 세계 속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안전하고 익숙한 확신’,
스타벅스는 그 감정을 브랜드의 언어로 만든 곳이었다.
그래서 문득 묻게 된다.
당신도 해외여행 중에 스타벅스에 들어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