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매일신문 59번째 칼럼 (22년3월29일 발행)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는 유명인이든 아니든 많은 흥밋거리가 된다. 나 역시 두 딸 모두 이름으로 겪은 일이 있다. 첫째딸 이름은 고민이 길어져서 출생 신고 기한을 넘기는 바람에 벌금까지 물고 힘차라라고 지었지만 이 이름은 얼마 가지 못했다. 5살 무렵이 되자 친구들이 놀린다고 자기 이름을 거세게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큰애는 자기가 원하는 이름을 선택했고, 그때 바꾼 이름을 아주 좋아한다. 둘째딸 역시 솔보라라는 세 글자 이름을 한 번에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서 불편하다며 개명을 요구했다. 결국 초등학교 3학년 때 두 글자로 바꿔주었는데, 아주 만족하고 있다. 적절한 이름이 중요하긴 한가 보다.
어슐러 르 귄의 단편 소설 ‘이름의 법칙’에는 이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잘 나와 있다. 어느 마을에 자기를 마법사라고 소개하는 어떤 사람이 찾아오는데, 그 이름을 아무도 몰라서 그가 터 잡은 동네 이름을 따서 ‘언덕 아래’ 씨라고 불린다. 마법은 신통치 않지만 마을에 해를 끼치지는 않아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후 찾아온 손님 때문에 그의 정체와 이름을 알게 된다. 그는 이웃 섬을 파괴한 용이었고, 손님이 그의 이름 ‘예바우드’를 부르자 언덕 아래 씨는 용으로 변하여 본색을 드러낸다.
테드 창의 중편 소설 ‘일흔두 글자’도 이름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는 ‘이름의 법칙’보다 한술 더 떠서 이름이 생명을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정자 없이 난자에 바늘로 이름을 쓰는 것만으로 수정이 되어 생명이 탄생한다. 특별히 생명을 발생시키는 이름을 적명이라고 하는데, 적명이 꼭 하나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런 상상이 터무니없기는 하지만, 아파트는 물론이고 소주에 이르기까지 이름 하나로 성패가 갈리기도 하니, 사람 이름도 가볍게 여길 일은 아닐 것이다. 10대 시절, 이름 좀 짓는다는 사람이 ‘영내’라는 이름을 권했다. 그때 이름을 영내로 바꾸었다면 내 삶은 더 생기있고 잘 풀렸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그러나 그렇게 남이 지어주는 이름보다 내 이름을 내가 지어보면 어떨까? 어떤 모임에서는 별명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좀 더 욕심을 내서 생활에서 사용하는 이름을 스스로 짓는 것도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자신의 소망이나 가치관을 확인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본명 말고 아이 때만 부르는 아명도 있었고, 관례라는 성인식을 거친 후에는 자(字)를 지어 불렀다. 자 말고도 허물없이 부를 수 있게 호를 지어 사용하기도 했다. 정약용 선생의 자에는 귀농, 미용이 있었고, 호에는 사암, 탁옹, 태수, 자하도인, 철마산인, 다산, 여유당 등 여러 개가 있었다. 시기에 따라 자신을 표현하는 적명을 지었기 때문이다.
내가 운영하는 공부 모임 ‘여산학당’의 학인들도 적명을 짓기로 했다. 적명을 짓는 과정은 나의 개성을 발견하고 자신을 지지해주는 여정이 될 것이다. 삶의 전환을 꿈꿀 때 자신의 적명을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