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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장장 Sep 27. 2019

#001 인간의 생각법과 AI의 분석법

디지털 시대의 생각법, 디크리에이션

연재를 시작하며, 필자는 2년여 전까지 삼성전자에서 20여 년간 수석 디자이너로 일했습니다. 약 15년은 디자이너로 일했고, 이후 5년은 삼성의 디자인경영철학을 연구하고 확산하는 일을 했습니다. 지금은 다소 생소한 인문디자인과 이에 기반한 디자인경영을 만들고 있습니다. 본 연재는 새로움을 만드는데 익숙한 디자이너 관점에서 본 창의적 생각의 세계를 풀어보려 합니다.

 

“ AI에게는 절박함이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있다. 내 삶의 절박함은 무엇인가? ”


2016년 3월, 서울의 한 복판 광화문에서 인간계 최강 이세돌과 AI계(인공지능) 최강 알파고가 바둑 게임을 통해 지능의 승부를 겨뤘다. 이미 체스 게임에서 인간을 이긴 AI가 바둑 게임을 통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섰음을 알리기 위한 상징적인 대결을 벌인 것이다. 전 세계의 눈이 이 역사적인 승부에 집중됐다. 총 5번의 게임을 했고, 알파고가 4대 1로 승리했다. 인간의 생각법이 AI의 분석법에 패하는 믿기지 않지만, 믿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이후 인간은 AI를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당시 이세돌이 승리한 네 번째 게임이 인간의 마지막 승리로 기록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세돌은 어떻게 AI를 이길 수 있었을까? 이세돌이 둔 78번째 수가 승부를 갈랐다. 이 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알파고를 개발한 데미스 허사비스는 인터뷰에서 “알파고는 시작부터 잘(Well) 두다가, 중반 이후에 이세돌의 환상적인(Fantastic) 한 수에 실수(Mistake)했다.”라고 말했다. 단순한 실수였을까? 아니다! 3년이 지난 지금 알파고를 뛰어넘는 릴라제로, 엘프고 등의 AI에 당시의 78번째 수를 입력해도 AI는 인간을 이기는 수를 찾지 못한다고 한다. AI는 왜 찾지 못할까? 이세돌의 말을 들어보자.


“78번째 수를 놓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요?”라는 질문에 이세돌은 “그 수 밖에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세돌은 패배를 인식한 절박했던 순간에 승부의 수를 던졌던 것이다. 인간은 승률이 50% 이하로 떨어지는 절박한 상황에 닥치면 살기 위한 승부 수를 던지지만, AI는 승률이 낮아진 절박한 상황에서도 예전처럼 데이터를 분석하고 확률에 따라 결정하는 반복 작업을 수행한다. 흥미로운 점은 프로 바둑기사들은 복기하는 과정에서 “이세돌의 78번째 수는 원래 안 되는 수였다.”라는 것을 알아냈지만, AI는 지금도 그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 수는 인간의 생각법과 AI의 분석법의 차이를 명확하게 알게 된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세돌은 네 번째 게임에서 백을 잡고 이겼으니까, 마지막 다섯 번째 게임에서 자신이 흑을 잡고 게임을 하고 싶다는 제안을 한다. 참고로 AI는 백을 잡고 바둑을 두면 승리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고 한다. 절박한 순간이 지난 후에 안정을 찾고 호기를 부리는 다분히 인간다운 발상이다.


“ AI에게는 절박함이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있다. 내 삶의 절박함은 무엇인가? ”


AI에게는 절박함이 없다. 그래서 AI는 지금도 인간처럼 78번째 수를 두지도 못하고, 해결하는 수를 찾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절박함이 있다. 인간은 절박한 순간에 최고의 창의적인 발상을 하고 도전적인 시도를 한다. 췌장암 진단을 받고 죽음을 의식한 절박한 상황에서 스티브 잡스의 명연설이 등장한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죽음’ 앞에서는 모두 떨어져 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만이 남는다는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을 인용하며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방법은 자신의 가슴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당부한다. 이세돌은 절박한 순간에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가장 인간다운 수를 생각해 내고 시도한 것이다. 첫 회를 마치며, 독자 여러분에게 잠시 생각해 보기를 권합니다. “내 삶의 절박함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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