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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장장 Oct 25. 2019

#002 인간의 맥락화와 AI의 학습법

디지털 시대의 생각법, 디크리에이션

“ AI에게 맥락이 사라졌다. 그 맥락을 인간이 찾아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


2016년 이세돌과 대결에서 이긴 AI(인공지능) 알파고-리는 2017년 알파고-제로 버전에게 100:0으로 패했다. 알파고-리가 인간의 경험을 학습해서 성장한 반면에, 알파고–제로는 바둑의 기본 규칙만 알고 혼자 학습해서 알파고-리를 이긴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알파고-리가 7개월을 학습하고 인간을 이긴데 반해, 알파고-제로는 72시간만 학습하고 알파고-리를 이겼다는 사실이다. 이 결과를 알파고 개발 책임자 데이비드 실버는 “인간 지식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고, 프로바둑기사는 “고정관념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주목해 보자.


독일의 철학자 후설은 고정관념이 없어야 사물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보고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을 ‘판단중지’라 정의했다. 판단중지는 순수한 앎을 찾는 철학자의 생각 방식이다. 알파고-제로는 백지상태이기에 자신을 판단중지 상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알파고-리와의 대결에서 순수한 상태에서 찾은 새 해석이 얼만큼 강한지를 증명한 것이다. 지금까지 판단중지는 검증이 불가능했다. 경험에 기반해서 판단하는 인간이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흔히 새 해석이 필요할 때 “고정관념을 깨!”라고 주문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것을 AI를 통해 실현한 것이다. 이 대결에서 인간과 AI 사이에 중요한 차이를 발견했다.


AI에게 맥락이 사라진 것이다. 프로바둑기사는 자신이 두는 거의 모든 수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 결과로 바둑판 위에 과거-현재-미래가 연결된 맥락을 보여준다. 그래서 해설이 가능하다. 이에 반해 AI가 보여 주는 것은 분석 데이터와 승리 확률이 전부다. 누구도 AI가 두는 수의 맥락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이제 반대로 절대강자가 된 AI의 맥락을 인간이 찾아서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맥락이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알파고의 바둑은 고정관념을 실험하는 장이었다. 고정관념을 없애면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다는 사실이 증명됐고, 동시에 맥락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금 인간은 맥락을 알려주지 않는 강자를 따라 하며 자신만의 새 맥락을 구현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아마도 직장에서 절대강자인 윗사람이 맥락이 부족한 지시나 결정을 했을 때, 아랫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이와 유사할 것이다. 아랫사람은 성과를 내기 위해 스스로 맥락을 연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새 맥락을 찾는 사람이 철학자다. 이들이 경직된 생각을 버리고 새 생각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즐겨 사용한 방법이 산책이다. 한 예로 지정된 시간에 지정된 장소에서 산책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기존의 다양한 철학을 비판하고 종합한 자신만의 철학을 탄생시켰다. 그의 주장을 보고 이제 철학은 그의 철학 이전과 이후로 구분해야 한다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그는 산책을 하며 떠올린 새 생각을 모아서 새 철학을 엮어낸 것이다.


우리는 중요한 판단을 할 때 불안을 느낀다. 생각이 연결된 맥락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일에는 ‘철학자의 길’이라는 이름의 산책로가 많다. 그들은 생각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맥락을 연결했던 철학자의 삶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 여러분에게 주변에 자신만의 산책길을 정하고 자주 걷기를 권한다. 산책에서 생각한 것을 주변 사람들과 대화해 보자. 맥락 있는 새로움을 만드는 시작으로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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