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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승리 Nov 03. 2020

다시 산을 넘는다 - 나 홀로 자전거 여행

뉴질랜드 남섬 자전거 여행기 -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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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났더니 미련하게 느껴진 일들이 있을까? 


내겐 이 번 Takaka 여행이 그렇게 느껴졌다.




오늘은 다시 Takaka Hill을 넘는 날이다.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다. 간밤에 춥고 누운 자리가 불편해서 제대로 잠을 못 잤다. 어서 매트를 사야겠다.


일어나자마자 아침 식사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추워서 움직이기 힘들었는데 한결 나아진다. 


텐트를 정리하고 출발할 채비를 마치니 시간이 꽤 늦었다. 벌써 오전 9시가 넘어간다. 일단 오늘의 목표는 산을 넘는 것으로 하고 되도록 가까운 데서 쉬는 것으로 결정했다.


짐을 정리하는 중 불필요한 짐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수건을 몇 개 버려야 할 것 같다. 팬티도 두장이면 되는데 괜히 가져왔다. 짐이 많을수록 자전거를 타는데 따른 체력 소모가 심해서 작은 물건이라도 부담된다. 별건 아니지만 수건은 테이블에 올려놓자. 누구라도 쓰겠지.


재롱둥이


아침마다 나타나는 고양이를 쓰다듬어 본다. 붙임성이 좋아 보이는 고양이다. 마지막으로 퀸에게 인사하고 먼저 출발했다. 퀸도 오늘 Takaka Hill을 넘는다고 한다. 곧 퀸에게 따라잡힐테지만 어쨌든 출발. 



초반 주행은 그다지 힘들지 않다. 대부분이 평평한 길이라 이대로라면 문제없을 것 같다. 날씨도 지난번 올 때와는 다르게 맑다. 같은 길인데도 다르게 느껴진다. 하지만 멀리 보이는 Takaka Hill 산자락이 점점 거대해지기 시작한다. 


문득 저 멀리 보이는 Takaka Hill을 보며 생각 난 노래. 


'저 산맥은~ 말도 없이~ 5천 년을 살았네~'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언덕이 시작되는 부근에서 점심으로 간단히 과자를 먹었다. 오르막이 시작되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휴식을 하고 출발하는데 앞에 퀸이 보인다. 그새 따라 잡혔다. 경사가 가파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도저히 자전거를 타고는 앞으로 가기 힘들다. 슬슬 힘에 부쳐 끌바를 하는데 앞서 가는 퀸은 힘들어 보이는데도 꿋꿋이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올라가고 있다. 


언덕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끌바로 올라간다. 꼭대기 지점까지 가려면 10Km를 가야 되는데 걸어서 가면 2~3시간은 걸릴 거리다. 


에라 모르겠다. 끌바가 답이다. 


얼마나 자전거를 끌고 언덕을 올랐을까? 자전거 여행인지 도보여행인지 헷갈린다. 이 언덕이 다시 끝나긴 하는 건지 몸은 점점 지쳐간다. 여태 슬리퍼를 신고 자전거를 끌다가 운동화로 갈아신었더니 한결 나아졌다. 그래도 오르막 길은 여전히 힘들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올 때는 꼭대기가 어딘지 모르고 하염없이 왔다면 오늘은 어디가 경사의 끝인지 안다는 것이다. 


거의 꼭대기까지 도착했을 때 멀리 보이는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마침 친절한 부부가 사진을 찍어 주었다.

멀리 펼쳐져있는 평지가 지나 온 길이다


눈으로 보는 풍경을 담기 어렵다


이후로도 한참을 더 걸어 올라가서 정상에 도착했다. 바닥에 'MILK TOP!'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는데 이렇게 반가울 수가. 지나가는 차가 응원을 해주며 간다. 힘겹게 올라왔지만 기운이 난다.




이제 내리막 길. 대략 25분가량을 내리막 길만 타고 내려갔다. 어떻게 여길 올라왔었을까..?


신나게 내리막길을 즐긴 후 평지가 시작됐다. 붙었는지 떨어졌는지 감각이 희미해진 무릎이 다행히 움직여 주어 슬슬 페달을 밟아 Motueka로 향한다.


날이 좋다


마을 입구에 거의 도착할 즈음 과일을 판다는 팻말이 보였다.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배고픈 탓에 뭐라도 사볼까 하고 가봤다. 가판대에 주인은 없고 과일과 동전함이 있다. 과일 한 봉지에 2불이었는데 양이 꽤 많다. 지난번 주워 먹었던 사과 탓인가. 맛은 별로 기대하지 말아야겠다. 


조그만 가판대에 무인으로 과일을 팔고 있다


Motueka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캠핑장으로 들어갔다. 체크인을 하는데 1박 가격이 무려 22.50불이다. 모든 캠핑장이 저렴한 건 아니구나. 


텐트를 치고 바로 마트에 갔다. 간단히 먹을 게 있을까 싶어 둘러보는데 계속 소고기에 눈이 간다. 아껴야 한다! 애써 눈을 돌렸다. 여행경비를 줄여야 하는 건 여행자의 숙명인가. 오래전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도 정말 거지처럼 여행을 다녀서 다신 그러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뼈 속까지 새겨져 있는 구두쇠 습성은 바뀌질 않는가 보다. 


대신, 오늘은 특별히 맥주를 먹기로 결정. 맥주를 고르고 까르보나라에 넣을 베이컨을 집어 계산대로 갔다. 한데 이게 무슨 일인가. 여권이 없으면 맥주를 살 수 없다고 한다. 배고프고 갈증 나는 데 못 먹게 하니 점원이 그리 야속할 수가 없다.


허기진 배를 달래며 캠핑장으로 왔다. 아까 산 사과를 먹었는데 맛이 의외로 좋다. 이런 걸 그렇게 떨이처럼 팔다니.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것만 모아서 파는 걸까?


사과로 주린 배를 달래고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려고 했는데 취사도구가 없다. 두둥.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캠핑카를 가지고 다녀서 그런진 몰라도 취사도구를 따로 준비 해 놓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챙겨 온 코펠을 사용해 요릴 해 먹었다.


왜 굳이 힘겹게 지나 온 길을 다시 자전거로 넘었을까. 여행 초반이라 자전거로만 여행을 완수하겠다는 고집이 있었던 것 같다. 무동력 기네스북에 오를 것도 아닌데 여행을 즐기는 방향보다 돈을 아끼고 시간을 버리는 미련한 선택을 한 것 같다.


Takaka는 자전거 여행으로 다녀오기에 아쉬움이 남는 장소였다. 루트가 갔다 왔다 중복될 수밖에 없었고 산을 하나 넘어야 하는 꽤나 부담 있는 장소임에 비해 특별히 꼭 어딜 가야 한다는 매력적인 여행 포인트를 찾기 힘들었다. 무엇이든 호기심이 생기고 궁금하면 해봐야 한다는 성격이지만 그만큼 다른 기회비용을 지불한다는 걸 알아야 했다. 


그래도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 첫 챕터를 잘 지나고 있는 느낌이다.


주행거리: 56Km

이동위치: Takaka - Motue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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