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승리 Nov 06. 2020

나는 어딘가 - 나 홀로 자전거 여행

뉴질랜드 남섬 자전거 여행기 - 7편

지난 이야기)


잠자리 타령으로 아침을 맞이하기 싫지만 또 잠자리가 불편하다. 매트 없이 침낭만 바닥에 깔고 자는 게 이렇게 힘겨울 줄 몰랐다. 매일 같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니 체력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날씨도 아침저녁으로는 계속 춥다. 그나마 오늘 갈길이 멀지 않음에 위안을 삼아 본다. 


아침으로 라면에 베이컨을 넣어 끓여 먹었다. 어제 챙겨두었던 밥도 마지막으로 먹고 버렸다.


짐 정리를 했는데 짐들은 줄지 않고 자꾸 늘어난다. 뭘 버려야 한단 말인가..! 사람들이 돈을 들여 경량 제품 위주로 짐을 챙기는지 알 것 같다. 

자전거에 어찌어찌 짐을 실어 놓고 출발한다.


처음보다는 패킹이 나아졌지만 많은 짐을 주체할 수가 없다(옆에 보이는 사과 뭉탱이...)


출발이 늦어져 부랴부랴 길을 찾아 가는데 구글 지도를 워킹 모드로 설정했더니 이상한 길을 알려주었다. 슬슬 마음이 급해진다. 마음만 급해서였을까? 결국엔 길을 되돌아왔다. 엎친데 덮친다 했던가. 이쪽인지 저쪽인지 길이 헷갈려 같은 길을 맴돌다가 더 늦어졌다. 오늘 목표로 했던 Kohatu로 가는 길에 제대로 된 심터가 있을지 의문이다.  


정신을 붙들고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길을 찾아 출발. 다행히 경사진 곳이 많지 않아 초반 주행은 무난했다. 게다가 큰 산 하나를 넘었겼더니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솟아오른다. 설마 Takaka를 넘었던 것보다 힘든 상황이 있을까 싶다. 

평화로운 풍경들이 이어진다
달리고 또 달리고


다채로운 풍경을 만끽하며 한참 달렸다. 힘겹게 Kohatu라는 곳에 도착한 거 같은데 쉴만한 곳을 찾기 어려웠다. 주변에 마을도 안 보이고 물어볼 사람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어딘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달린다. 


얼마나 달렸을까? 캠핑장만 찾아서 열심히 달렸은데 캠핑장이 보이질 않는다. 아까부터 캠핑장을 찾아보려고 핸드폰을 보는데도 서비스 지역이 아니라는 메시지만 나타났다. '구글 신'과 떨어지니 절망감이 엄습한다. 


구글 신만 믿고 있었는데 인터넷이 갑자기 안되니 당혹스럽다. 애초에 달릴 거리와 숙소 위치를 정확히 알아놨어야 하는데 책자 내용만 믿고 그냥 왔더니 이렇게 됐다. 책자엔 clark valley라는 곳에 휴식처와 캠핑장이 있다고 되어 있는데 휴식처만 보이고 캠핑장은 어디 있는지 안 보였다.  


휴식처를 지나 가면 캠핑장이 나올까 해서 달려 봤는데 캠핑장이 보이질 않는다. 점점 몸은 지쳐가는데 어디까지 가야 할지 모르니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물은 거의 다 먹고 반통만 남았다. 이걸로 내일 주행할 때까지 먹으려니 아껴 먹어야 했다. 어디 오지에 떨어진 것도 아닌데 이렇게 힘든 상황들에 시시각각 마주하게 될 줄 몰랐다.


별수 없이 시간도 늦어 더 가는 건 포기하고 지나왔던 휴식처로 돌아가 텐트를 치기로 했다. 물이 부족한 게 영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다. 챙겨 온 사과로 수분을 조금씩이나마 보충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쉬기로 했다. 자전거 여행이 아니라 점점 알 수 없는 생존 싸움이 되어 간다.


그나저나 보다폰이 제일 잘 터진다더니 왜 안 되는 건가!


주행거리: 84Km

이동위치: Motueka - Norris Gully Recreation Area


다음 이야기)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산을 넘는다 - 나 홀로 자전거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