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남섬 자전거 여행기 - 8편
지난 이야기)
오늘은 백팩커에서 자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며칠째의 캠핑으로 편히 못 자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하루 쯤 편하게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하는 중간중간 하루 쯤은 백팩커에서 쉬는 것이 오래 여행하는데 도움이 될것 같다. 캠핑에 적합한 준비물들을 챙기지 못 해서 캠핑으로만 여행하기가 힘든 거 같다.
밤새 괴롭히던 '날파리 같은 벌래들'을 피해 텐트를 걷고 짐을 챙겼다. 풀어놨던 짐이 별로 없어서 출발 준비하는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물이 별로 없어서 걱정이다. 50Km만 더 가면 마을이 있을테니 희망을 갖고 달려 본다. 어느 덧 뉴질랜드 거리에 익숙해진 것일까. 기본으로 50Km 쯤은 가야 무언가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 것은 hope saddle이란 곳만 넘어가면 내리막 길이 이어지니까 가기 수월할 것이라 짐작해본다.
달리며 풍경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뉴질랜드의 자연풍경은 다채롭다. 산도 많고 넓게 펼쳐진 녹초지도 많아 시시각각 풍경이 바뀌면서도 장소마다 화폭으로 담아야 할 법한 멋진 풍경들이 많다.
Hope saddle 전 까진 계속 오르막 길이 이어졌다. 급경사는 아니어서 패달을 밟고 가긴 해도 지친 몸은 속력을 내지 못하고 있다.
한참 가다 보니 갑자기 급경사가 시작됐다. 느낌상으로 여기가 마지막 오르막인 것 같다. 가는 내내 벌인지 뭔지 알 수 없지만 지속적으로 '윙윙-' 소리를 내며 벌레가 옆에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기가 막히게 잠깐 쉴려고 하면 달라 붙고 해서 잠시도 편히 쉬지 못하고 오르막길을 겨우겨우 끌바로 올라갔다.
간신히 정상에 도착해 숨을 돌리는데 옆에 지나가던 사람이 갑작스레 '물 좀 줄까?' 라고 물어봤다. 안 그래도 물이 간당 간당했는데 염치불구하고 냉큼 따라가서 물을 받았다.
'훤칠하게 생긴 남정네가 마음씨도 좋구나!'
같이 사진을 찍었으면 좋았을텐데(작은 친절에 들이대는 스타일.. ㅎㅎ) 너무 지친 상태라 뭘 생각하고 자시고 할 수가 없다. 고맙단 말을 하고 가는데 미안한 마음이 든다. 호의를 받았으나 줄게 없어 아쉽다. 사진 한장이라도 남겨 둘걸.
이제 내리막길을 타고 가면 금새 Murchison이 나오겠거니 했는데 짐작과 달리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완전한 내리막 길은 아니고 중간 중간 언덕이 있어서 터질려는 허벅지를 달래며 페달을 밟는다.
쉬는 틈에 물을 마시는데 아까 그 청년에게 너무 고마웠다. 그때 물을 안 받았으면 큰일 났을 뻔 했다. 배고파서 사과를 게걸스럽게 먹었다. 딱히 먹을만한 게 없어서 사과로 허기를 채운다.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사이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사진을 찍어보려고 삼각대를 펴는데 여간 귀찮은게 아니다. 나름 멋진 풍경을 담아 보겠다고 무거운 DSLR을 챙겨 왔는데 꺼내고 넣기가 상당히 귀찮다 보니 찍는 횟수가 많지 않다. 그래도 이 곳을 놓칠 순 없다는 생각에 삼각대를 세팅하고 사진을 찍었다.
도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타이머를 맞추고 여러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중간에 차가 지나가서 제대로 안 찍히기도 했지만 조금이나마 멋진 풍경을 담을 수 있어 만족스럽다.
사진 찍을 땐 한 껏 기분이 좋았는데 한참 또 달리고 나니 체력적으로 지치기 시작했다. Murchison에 거의 도착할 즈음 배도 고프고 몸에 모든 힘이 빠져버렸다. 마지막 6Km를 가는 게 너무도 힘들다.
간신히 Murchison에 도착 했는데 생각보다 작은 마을이다.
'백팩커가 있기는 할까? 슈퍼마켓은 있나?'
의문만 가지고 가는 사이 i-Site가 보였다. 들어가서 숙소를 예약하려고 물었는데 바로 옆에 백팩커가 있으니 가보란다. 직원 말을 듣고 거의 기절 할 것 같은 상태로 백팩커에 갔다. 충격적인 말. 빈방이 없다.
별수없이 오던 길에 봤던 캠핑장으로 갔다. 거의 초죽음 상태로 리셉션에 갔는데 아무도 없다. 맙소사. 주인은 어딜간 것인가. 더이상 움직일 기력도 없어서 털썩 눕다시피 앉아 있는데 캐러밴 한대가 온다. 아주머니 한분이 내리셔서 두리번 거리시다가 주인을 찾았다. Oh. God. 그리고는 매너 좋게도 내가 먼저 왔으니 먼저 일을 보라신다.
주인장이 텐트를 칠거냐고 물어 간절한 눈빛으로 방에서 잔다고 말했다. 어젠 노숙하다시피 잤으니 오늘은 방에서 편히 자야만 한다.
체크인을 마치고 방에다 짐을 넣으려는데 벌들이 입구에서 윙윙 거리며 날아다닌다. 이녀석들이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재빨리 짐을 옮기고 사과를 또 게걸스럽게 먹었다. 사과를 먹고 잠시 앉아있으니 기력이 어느정도 되돌아 왔다.
자전거를 타고 마을 중심에서 봤던 슈퍼마켓으로 갔다. '오늘 저녁은 무조건 고기를 먹어야지' 하고 봤는데 고기가 없었다. 도대체 왜?
어쩔 수 없이 그냥 햄을 집어 들고 음료수와 진저비어를 사서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장본 걸 방에다 놓고 샤워를 했다. 놀랍게도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다. 미친듯이 빠르게 샤워를 마쳤다. 샤워까지 하고 나니 살 것 같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봤는데 폐인이 다 되어 있다.
먹을 걸 챙겨 키친으로 갔다. 밥이랑 까르보나라(로 보이는 음식)랑 미고랭을 끓여 먹었다. 조촐한 식사여도 노지 캠핑에 비하면 호화로운 식사와 숙소다.
주행거리: 62Km
이동위치:Norris Gully Recreation Area - Murch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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