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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승리 Nov 03. 2020

또 다른 고생의 시작 - 나 홀로 자전거 여행

뉴질랜드 남섬 자전거 여행기 -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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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는 지금이 여름이라더니 벌써 겨울이 시작되는 건가? 잠자리도 불편하고 새벽부터 추워서 깼다. 오늘은 그나마 편한 일정이라 마음이 한결 놓인다. 어제 알아봤던 버스 티켓을 오전에 예매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Collingwood로 향하기로 했다.


씻고 나서 아침 식사로 까르보나라'처럼 생긴' 걸 만들어 먹고 i-Site에 갔다. 어제도 내 앞사람이 한참 시간을 잡아먹더니 오늘도 어떤 아줌마께서 꽤나 시간을 잡아먹었다. 


내 차례가 와서 바로 Richmond로 이동하는 버스를 예약하는데 직원이 "취소하게 되면 수수료가 10퍼센트 들 거야"란다. 그 말이 머릿속을 의미심장하게 맴돈다. 그래도 설마 내가 저 산을 다시 자전거로 오르겠어?


버스 예약을 마치고 자전거 샵에 갔다. 어제 연장이 없어서 못 달았던 스탠드를 달았다. 스탠드가 두 개가 되니 자전거를 세우기 훨씬 편해졌다. 물론 무게는 더 무거워졌겠지만..


볼일도 마쳤겠다. 바로 Collingwood로 향한다. Collingwood 가는 길은 대체로 평지여서 가는 길이 그다지 힘들지 않다.


시원하게 뻗은 도로를 가볍게 달린다


넓게 탁 트인 경관이 보기 좋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어느 풍경이나 그림 같다
밥알처럼 보이던 양 떼들


Collingwood 가는 중간에 목축하는 곳이 많이 있었다. 멀리 보이는 양들이 밥알처럼 보인다. 중간중간 냇가도 있었는데 물이 정말 맑다. 


문득 홀로 있다는 사실에 외로운 생각이 든다. 다른 한편으론 지금 이 순간에 대한 감사한 생각도 들었다. 언제 또다시 이런 시간을 누릴 수 있을까? 


한국에서 아옹다웅 죽기 살기로 경쟁하는 삶이 떠오른다. 명예란 것이 그리 중요할까. 권력이라는 것은 또 뭐 그리 중요할까. 그 막강한 권력이 온 세상에 퍼져봤자.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겐 그저 하찮은 일일 뿐인데 말이다.


삶이란 뭘까? 명예, 부, 권력을 쌓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이유일까. 하지만, 나도 한국으로 돌아가면 직장을 찾고 일을 해야 한다. 돈 없이 삶을 이어갈 수 없으니 말이다.


자전거를 타면 생각이 많아진다. 들리는 건 내 페달 소리와 보이는 건 하염없이 펼쳐진 길이다. 잠시 생각을 비웠다가도 여러 생각들이 다시 떠오른다.


주렁주렁 달려있던 사과들


그늘에서 잠시 쉬려고 멈췄다. 문득 바닥에 떨어져 있는 사과들이 보인다. 어디서 온 사과들인가 보니 머리 위로 사과나무가 있다.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주인이 있는 나무인지 확인했다. 다행히 주인 없는 나무다. 


근데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어떻게 닿아야 할지 난감하다. 길 옆으로 쭉 돌아 올라가면 될 것 같아서 시도했는데 울창한 풀숲이라 뱀이라도 나올까 봐 무섭다. 대신 큰 나뭇가지가 주변에 보였다. 가지를 주워 사과나무로 던지길 몇 차례. 드디어 후드득 하고 몇 개의 사과가 떨어졌다. 상태 좋은 것 같은 사과 몇 개를 냉큼 집어 가방에 넣었다. 다시 출발. 


지나치는 풍경 사이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Collingwood에 도착했다. Collingwood는 Takaka 정도 되는 마을일 줄 알았는데 Takaka보다 작은 규모의 마을이다. 마을이라기 보단 펜션들이 늘어선 곳이랄까. 


메인 스트릿에 카페와 식당 몇 개 편의점 하나가 전부다. 해변을 보려고 메인 스트릿을 돌아 해변가 길을 찾아갔다. 하필 썰물 때라 물이 많이 빠져있다.  


나름의 컨셉샷
썰물 때문인지 바다가 멀리 떨어져 있다.
새들이 얕아진 바닷물 속 물고기를 찾고 있다.

벤치에 앉아 아까 주웠던 사과를 먹는데 별로 맛이 없다(이런). 자전거를 잠시 묶어놓고 물이 빠진 바다를 걸었다. 혹여나 귀한 조개라도 있을까 바닥을 보며 걸었는데 별개 없다. 멀리 Farewell Spit이 보였다. 원래는 저곳까지 가고 싶었으나 무리하게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접기로 했다. 


캠핑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쉬고 있는데 퀸이 왔다. 나보다 먼저 출발해서 Farewell Spit까지 보고 온 듯했다. 퀸은 남섬 밑에서부터 출발해 위로 올라온 케이스다. 퀸은 크라이스트 처치까지 가려고 하는데 비자가 잘 못 되면 웰링턴으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단다. 지금은 방학중이고 나중에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간다고 했다. 짤막한 얘길 주고받다가 다시 출발을 했다. 체력이 좋은 건지 같이 출발하고 내가 더 괜찮은 자전거를 탔음에도 퀸은 저 멀리 사라졌다. 



캠핑장으로 오는 사이 '버스 티켓을 괜히 끊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비싼 돈 주고 버스를 탈 필요가 있나. 게다가 2시간 걸려 Richmond로 가는 것보다 Motueka에서 바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게 나을 텐데...


고민하다가 결국, 버스를 취소하는 건 너무 힘들 것 같고 Motueka 방향으로 바꿔 가기로 했다. i-Site에서 Motueka로 표를 바꿔달라고 했다. 그런데 변경하는데도 비용이 든다. 이렇게 된 거 그냥 취소하는 게 낫겠다 싶어 기어코 취소를 했는데 취소 페널티로 8.80불을 냈다. 맙소사. 46불에 끊었다가 2불은 수수료로 날리고 44불 - 8.80불 해서 35.20불을 돌려받았다. 10여 불을 꽁으로 날렸더니 마음이 헛헛해진다. 값 비싸게 배웠다 생각 하자. 앞으론 함부로 예약하지 말아야지.  


마트에서 미고랭을 사고 낚시가게에서는 부탄가스를 사서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씻고 밥을 지어먹었다. 오랜만에 쌀을 먹어 반가웠지만 차려 놓은 반찬이 썩 좋지 않다. 김치만 있었어도 진수성찬일텐데 냉장고가 없으니 뭘 사서 여행하기 힘들다.


그나저나 이제 저 산을 다시 넘어야 한다니. 벌써부터 허벅지가 저려온다.


주행거리: 63Km

이동위치: Takaka - Colling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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