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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승리 Nov 02. 2020

고생 끝, 행복 시작? - 나 홀로 자전거 여행

뉴질랜드 남섬 자전거 여행기 -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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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다음 날을 맞이했다. 낯선 곳에서의 첫 캠핑. 캠핑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게 잠만 겨우 청했다. 지난밤의 여파가 얼굴에 그대로 남았다.


텐틀를 정리하고 첫 캠핑을 기념하여 찍었다



Takaka Hill은 꽤 고지대라 그런지 아침부터 안개가 자욱하다. 그렇게 고대하던 내리막길을 만나는데 안개가 너무 짙게 내려앉아 무작정 달릴 수가 없다.


아침에 안개가 자욱해는데 서서히 걷히고 있다.


안개가 걷히길 기다렸지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걷힐 생각이 없다. 별수 없이 그냥 출발하기로 한다. 마침 어제 머물렀던 곳이 내리막길의 시작점이었다. 본격적으로 달리기 전에 가방 같은 것들이 잘 매어졌나 확인하고 조심조심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갔다. 


산 밑으로 내려갈수록 안개가 점점 걷힌다. 덕분에 기분도 상쾌하다. 내리막길이라 어제 업힐로 고생했던 무릎도 무리가 없다. 좋은 컨디션에 기분이 하늘을 찌른다. 


기분이 한 껏 들떴지만 항상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했다. 내리막길은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내리막길에서 실수로 페달질을 잘 못 하거나 속도에 못 이겨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집중하며 내려갔다. 길 옆으로 넓은 목초지들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이슬이 온 사방을 덮고 있는 듯했다. 


중간에 여성 자전거 여행자를 봤다. 빠르게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있는 중이라 대화는 못하고 인사만 하고 지나쳤는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제 그렇게 욕을 하면서 올라왔는데 저 여자는 혼자서 자전거 끌바도 안 하고 올라왔다니. 욕하던 내가 부끄럽다. 


시원하게 펼쳐진 전망이 보인다


편하게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어제 그렇게 욕하던 나의 간사한 입술은 다시 감격의 언어로 채워졌다. 아름다운 경관을 보고 이 산을 무사히 내려오다니 감격할 따름이다.


내리막길을 신나게 내려온 후, 이제 얼마 안 가면 Takaka 마을이 보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Takaka는 멀리 있었다. 어떻게 된 동네가 중간에 슈퍼마켓, 주유소 하나 없는지 모르겠다. 옆에는 양이며 소며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데 나는 한없이 페달질을 하며 달리고 있다.  



내리막길을 본격적으로 달리기 전에 자전거를 점검한다


왜 걸려있는지 모르겠는 신발들


얼마나 달렸을까. 내리막길만 맞이하면 바로 마을이 보일 줄 알았는데, 어제 산에서 야영을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캠핑한 곳에서 마을까지 거리가 꽤 멀다. 가는 길에 또 다른 자전거 여행자를 만났다. 리어 랙(짐받이)에 얹은 짐은 간소했는데 커다란 가방을 직접 몸에 매고 달리고 있었다. 맙소사.


드디어 Takaka에 도착


힘겹게 마을에 도착해 바로 캠핑장부터 찾았다. 처음엔 1박만 하려 했는데 캠핑장 가격이 15불로 꽤 저렴했다. 힘겹게 산을 넘어온 게 아쉽게 느껴졌다. 그래서 하루 더 쉬어 2박을 하기로 하고 근처에 있는 콜링우드 까지 가보기로 했다. 리셉션에서 체크인하는 사이 아까 봤던 자전거 여행자가 뒤따라 왔다. 여기서 묵을 건가 보다. 


캠핑장은 깨끗하고 시설도 꽤 잘 구비되어 있다. 아쉬운 건 전자제품을 충전할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다.  


짐을 풀고 텐트를 치는 사이 옆에서 아까 봤던 자전거 여행자도 텐트를 쳤다. 멋진 텐트가 내심 부러웠다. 사실 내가 가져온 텐트는 호주에 막 도착했을 때 백패커에서 만났던 어떤 여행자가 10불에 팔았던 텐트다.


샤워를 하고 짐을 풀어놓으니 한결 여유가 생긴다. 점심도 못 먹어서 허기진다. 바로 라면부터 끓였다. 그 사이 아까 봤던 자전거 여행자가 왔다. 이름은 쿠인(퀸)이고 캐나다인이다. 뭔가 말을 붙여보고 싶었으나 마땅히 할 이야기가 생각나질 않는다.


식사를 하고 나니 기운이 난다. 바로 장을 보고 왔다. 마트에서 산 것들을 텐트에 넣고 이번엔 i-Site에 갔다. 근처에 자전거 샵이 있는지 물어보고 버스로 Richmond까지 갈 수 있는지 물었다. 아무래도 왔던 길을 자전거로 다시 가기엔 에너지 소모도 심하고 불필요할 것 같았다. 버스는 다행히 Richmond까지 가는 노선이 있다고 해서 그걸 타기로 했다.


자전거 샵은 스탠드를 바꾸려고 들렸다. 지금 달아 놓은 스탠드는 너무 약했다. 아니. 사실 내가 얹어 놓은 짐을 생각하면 스탠드가 강해질 수 없을 것 같다. 어찌 됐던 중간중간 자전거를 세워놓고 쉬려면 스탠드가 좀 튼튼해야 했다. 그동안 자전거를 세우느라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자전거 샵에서 샀던 스탠드는 약해 보여 걱정이다.


'중요한 볼일은 끝냈고 이제 뭘 할까?'


고민을 하다가 내일 가보려는 Collingwood의 반대 방향에 있는 Pohara를 가보기로 했다. 캠핑장으로부터 8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으로 그리 멀지 않다. 게다가 무거운 짐을 텐트 안에 넣어놔서 한결 가벼워진 상태로 자전거를 타고 갔다.  



막상 도착한 Pohara는 날씨가 흐린 탓에 풍경 보는 맛이 덜 했다. 적적하게 Pohara에서 골든베이 바다를 보고는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첫 여정부터 너무도 힘든 산을 넘어버렸다. 적응되면 괜찮아지겠지?


주행거리: 52Km

이동위치: Takaka Hill - Tak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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