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특정 지식인만의 소유물인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을 읽기 전엔 글쓰기에 대해 ‘어떤 심묘한 법칙과 수학 공식들을 알려줄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한편, 여타 자기계발서와 같이 뻔히 아는 법칙들을 나열하거나 반대로 알기 어려운 수학 공식들을 보는 것 처럼 ‘글쓰기를 해보기도 전에 떨어져 나가진 않을까’라는 걱정도 들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이 책은 매우 읽기 쉽다. 책 초입에는 '이런 글이라면 나도 써볼 수 있겠는데?' 라는 기가 막힌 생각이 들정도로 쉽게 술술 읽혔다. 술술 읽힌다는 느낌은 머리 속에서 문장을 한 번 더 풀어 헤치는 작업이 필요 없는 것이다. 읽는대로 머리 속에 들어오는 글이다. 책을 거의 다 읽을 즈음 느낀 것은 “이 책 자체가 ‘글은 어떻게 쓰는 것이 좋다’라는 표본을 쓴 책이구나.” 였다. 유시민이 주장하는 글쓰는 방법들을 그대로 적용한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쉬운 글과 어려운 글의 가장 뚜렷한 대목은 다음이다. 유시민이 <문학의 아토포스>라는 책의 한 부분을 발췌하여 자신이 이해한대로 풀어 쓴 것과 비교하였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미학적 전위와 정치적 전위가 중첩되는 과정에서 실패로 돌아간 미학적 전위운동을 찾아낸다. 그러나 그 실패가 미학과 정치가 만나서 필연적으로 미학의 자율성이 상실되었기 때문일까? 미학적 전위가 치안의 운동으로 전락하거나 그것에 포획되니 것은 아닐까? 정치와의 만남 없이도 실패한 미학적 운동들, 또는 정치와의 만남이 없어서 실패한 미학적 운동들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우리가 너무 쉽게 정치는 항상 미학적인 것을 훼손한다고 결론짓는 것은, 치안과 정치를 동일시하고 순수모더니즘의 미적 자율성과 예술적 경험의 자율성을 동일시하는 습관 때문이다. 또한 미학을 미학적 자율성과 미학적 타율성 중 어느 하나와만 동일시하는 습관 때문이다. 이러한 습관은 김수영의 말대로 대부분 냉소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는 문화 · 예술의 선각자들이 정치적 혁명운동에 뛰어든 결과 혁명적 문화 · 예술운동도 결국 실패로 끝나버린 사례가 있다. 정치와 만나면 문학과 예술은 자율성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문화 · 예술인들이 권력의 앞잡이가 되거나 포로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닐까? 그런데 역사에는 정치와 결탁했기 때문에 실패한 문화 · 예술운동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정치와 결탁하지 않았는데도 실패한 문화 · 예술운동도 있었고 정치와 결탁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 문화 · 예술운동도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쉽게, 정치는 언제나 문화 · 예술의 가치와 정신을 훼손한다고 결론짓는다. 권력 행사와 정치를 구별하지 않고, 순수모더니즘의 미적 자율성과 예술적 경험의 자율성을 똑같이 취급하는 습관 때문이다. 문화 · 예술이 사회에서 완전히 독립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관점과 반드시 사회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관점 가운데 어느 하나만 옳을 것이라고 믿는 습관 때문이기도 하다. 김수영이 말한 것처럼, 이러한 습관은 대부분 냉소에서 나온 것이다.
어떠한가? 내 이해력 부족으로 원문이 제대로 안 읽힌 탓도 있겠다. 하지만, 수정한 부분이 훨씬 이해하기 쉽고 문장 의미가 머리 속에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이다. 이 단적인 예를 통해서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 얼마나 쉽고 이해하기 편하게 쓰여진 글인지 느낄 수 있다.
그는 본인이 쓴 책이 ‘요약과 발췌를 잘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많이 본 것이다.’ 라고 하지만, 다른 사람이 이해 할 수 있도록 풀어쓰고 논리에 맞게 문장 순서를 배치한다는 것은 그의 이해력이 그만큼 깊고 그가 글을 잘 쓴다는 의미다.
유시민이 주장하는 내용이 논리적 글쓰기에 한정될 수 있지만, 글 본연의 존재 이유가 어떤 뜻을 타인에게 전달하려는 것이라면 읽는 독자에게 보다 편하게 읽히는 글이 더 좋은 글이 아닐까 생각한다.
블로그링크 : http://vlee.kr/18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