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십여 년 전만 해도 나는 글쓰기에 꽤나 큰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페이스북 같은 곳에 내 생각이나 감상들을 나누는 것도 좋아했다. 내가 쓴 여행기가 한 잡지에 실리기까지 한 걸 보면 글 쓰는 재주도 영 없진 않았다. 학창 시절 공부를 안 해도 언어영역 점수만큼은 우수한 편이었고, 제대로 된 어학연수 한 번 다녀온 적 없이 국제기구에서 영어로 업무를 해나가는 걸 보면 언어적 능력은 제법 타고난 듯하다. 그러고 보면, 요즘 유행하는 MBTI에서 내가 속한 유형은 조지 오웰, 돌킨, C.S 루이스, 생텍쥐페리, 셰익스피어, 안데르센 같은 천재적인 작가들과 같다고 한다. 물론 내가 이 작가들과 같거나 이들처럼 되리라는 말은 아니다.
어디에든 글을 좀 썼다 하면 언제나 비평가들이 등장했다. 글의 내용이나 전달하고자 하는 뜻보다는, "글을 못 쓰는 건 아닌데 너무 감성적이야" "여기저기 맞춤법이 틀렸네"와 같은, 왠지 모를 기분 나쁜 평가들은 내 글쓰기 의지에 찬물을 끼얹었다. 여기에 덤으로, 소셜미디어를 수놓은 주변 글쟁이들의 찬란한 글과 비교하니 내 글은 빛을 잃으며 떨어지는 별똥별처럼 보였다고나 할까. 이렇게 되다 보니 글쓰기는 고사하고 인스타그램에 글 한 줄 쓰는 것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렇게 글쓰기를 멈추게 되었다.
글을 다시 써야겠다는 생각은 종종 들었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과 내 삶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고 이왕이면 잘 된 이야기, 즉 내가 이룬 크고 작은 성취에 대한 '자랑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자랑질을 좀 해보려 하면 이 성취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다시 말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좀 더 높은 목표를 이루면 그때는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매한가지였다. 글쓰기에 대한 동기와 방향성 자체에 대한 변화가 필요했다.
글쓰기를 생각하면 나는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를 생각할 만큼 이상적이다. 베스트셀러 작가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통령의 글쓰기』 같은 책을 세 권은 읽거나 베스트셀러 작가의 글쓰기 특강 정도는 들어줘야 그럴듯한 글 한편 쓰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내 책장과 이북리더기에는 이런 책들이 놓여있다. 이렇게 이상주의적인 내 성향은 지난 몇 년 간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려던 내 발목을 붙잡았다. 목표가 높으니 시작이 어려웠고 또 그렇게 글을 쓰지 못했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려면 동네 뒷산부터 올라야 하는데 말이다.
글에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종교개혁의 시작과 성장에는 마르틴 루터의 95개 조 반박문과 그의 집필 활동이 있었다. 천부인권을 천명한 미국의 독립선언서가 쓰이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자유를 누리고 있을까.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 쓰이지 않았다면 1억 명 이상의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시대에 큰 획은 긋지 못해도 작은 점 하나 남기고 싶다면 글쓰기는 선택이 아닌 '당위성'의 문제임을 깨달았다.
세상이 반쯤 뒤집어졌을 때도 나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신중함을 내세운 방관이었고 중립으로 위장한 비겁함이었다. 누군가가 대신해 주리라는 게으름이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시대의 흐름과 일련의 사건들은 나 자신과 내가 속한 공동체의 가치와 믿음을 위협해 왔고, 더 이상의 방관과 비겁함, 게으름은 허락되지 않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스스로를 향한 질문은 '읽고 배우고 쓰는 것'이라는 답을 주었다.
나의 삶, 특히 실패와 좌절, 그리고 그 순간들을 딛고 일어난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이 이러한 일들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힘과 응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큼 신뢰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면 개인적인 이야기는 잘하지 않고, 또 이런 글을 썼다가 어느 날 이불킥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있지만 이제는 용기를 내보려 한다. 이 글들은 나의 이야기이면서 깨어진 조각 같은 내 삶을 멋진 모자이크로 만들어 가시는 내가 믿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크게 두 갈래로 글을 쓰려한다. 하나,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쓸 생각이다. 단편적인 주제들로 보일 수 있겠지만 큰 틀 안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둘, 나의 다이내믹한 개인사를 좀 진솔하게 써보려고 한다. 사실 나를 다 보여주는 게 싫어 두 번째 갈래의 글은 쓸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그분의 인도하심이란. 가끔은 곁가지로 삶의 소소한 이야기나 생각들도 적어볼 것이다. 여전히 부족한 글이 될 것이다. 누군가의 비난도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아예 읽히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이렇게 글을 쓴다.
내 글이 누군가가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는 창이 될 수 있기를,
내 글이 누군가의 삶에 빛을 들여줄 수 있는 창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