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부진아가 되다.
이십 대 중반 이후 나를 만난 사람들이 내 첫인상에 대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대게 인상 좋은 순둥이나 공부 잘하는 모범생 같다고 한다. 지난 십 년 간 나름대로 공부도 열심히 했고 모범적인 사람들과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그 흔적들이 내 인상에 묻어났을 수 있겠다. 지금은 유엔에서 일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은 내가 학창 시절 공부를 꽤나 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키운다. 이럴 때면 나는 “이 사람들이 내 어린 시절을 모습을 알게 되면 어떤 생각을 할까?”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슬며시 미소를 지어본다. 왜냐하면 나는 특히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아이였기 때문이다.
빠른 연생이었던 나는 남들보다 한 해 먼저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온 동네를 놀이터 삼아 뛰어놀던 아이가 몇 시간씩 책상에 앉아 있으려니 머리부터 발끝이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 학교에 가는 것이 너무 싫어 내가 자는 동안 학교가 무너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 정도였다. 어떤 날은 꾀병을 부려 학교에 가지 않은 날도 있었다.
학교 가는 것이 이렇게 싫으니 공부를 잘할 리 없었다. 받아쓰기 시험을 보면 50점을 넘기질 못했다. 나는 빨간 소나기가 쏟아지는 시험지를 받으면 곧장 책가방 깊숙이 쑤셔 넣었다. 집에 돌아가면 엄마는 가방 구석에서 구겨진 시험지를 꺼내 보시곤 뜻 모를 미소를 지으셨다. 그러나 성적을 가지고 나를 나무란 적은 한 번도 없으셨다. 공부를 하라고 닦달하지도 않으셨다. 알림장도 제대로 써오지 못하는 나를 위해 친구 집에 전화를 걸어 숙제와 준비물을 물어보고 챙겨 주셨다. 아버지는 좀 다르셨다. 글자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나 때문에 걱정이 크셨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오시면 나에게 공부 좀 하라고 야단을 치시기도 했다. 나는 이런 아버지가 무서워 아버지가 돌아오실 시간이 되면 얼른 방에 들어가 불을 끄고 자는 척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종례 시간, 선생님은 내게 교실 청소를 한 후 집에 가지 말고 교실에 남으라고 하셨다. 선생님들이 나를 부르셨을 때는 대부분 혼날 거리가 있을 때였기에 나는 내가 또 무슨 잘못을 한 것이 있는지 걱정이 됐다. 창문 너머로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선생님은 교실로 돌아와 나를 책상에 앉히셨다. 그러고는 가져오신 산수 문제집의 한 단원을 풀라고만하시고 다시 교실을 떠나셨다. 선생님은 내가 왜 학교에 남아 나머지 공부를 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지만, 나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말로만 듣던 학습부진아가 된 것이었다. 텅 빈 교실에 혼자 남겨진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연필로 문제집 귀퉁이만 끄적거렸다. 그저 선생님이 빨리 교실로 돌아와 집에 보내주기만 기다렸다.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났을 때 선생님은 교실에 돌아오셨다. 그리고 한숨을 푹 쉬시고는 별말 없이 나를 집에 돌려보내셨다. 이런 날이 반복되니 친구들도 내가 학습부진아로 학교에 남아 나머지 공부를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창 시절 친구들을 만나 내가 지금 유엔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면, 처음엔 예상치 못한 대답에 흠칫 놀라고 그다음엔 미심쩍은 눈길을 보낸다. 그리고 내가 정말 유엔에서 일하는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런저런 질문들을 넌지시 던진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가진 선입견에 마음이 상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이런 반전 스토리가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감사하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나와 같이 뒤처진 삶을 살았거나 살고 있는 이들에게 작은 응원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