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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Mar 10. 2020

40대에 싱글 남자로 살기

요즘 사람들한테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


“애는 몇 살이야?”


 내가 이미 오래전에 결혼을 했을 것이며, 지금 치열한 육아전쟁을 치르고 있을 거라는 건 물어볼 필요도 없는 기본 옵션이다. 새로 만나는 취재원들뿐만 아니라, 그동안 나와 특별한 접촉이 없어서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직장 동료들한테도 종종 이런 질문을 듣는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직 애가 없어요.”


 정답은 “저 결혼 안 했는데요?” 이겠지만 그 뒤에 이어질 피곤한 질문들이 귀찮아 그냥 이렇게 대답한다. 뭐 아직 애가 없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 대부분 뭔가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며 당황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난 어느새 불임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중년 부부가 돼버린 것이다. 40대의 멀쩡한 한국 남자가 결혼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아예 고려 대상도 되지 않는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가면 난 어쩔 수 없이 고백 아닌 고백을 해야 한다. 상대의 당황을 그대로 방치하면 그 남은 자리까지 어색해지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는 역시나 여지없이 피곤한 질문들이 이어진다. 내가 기혼인지 아닌지도 모를 정도로 나와 친분이 없는 사람들이 시시콜콜한 나의 연애사와 결혼관, 청춘 스토리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다.


 나를 좀 아는 (특별히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선 40대 싱글남인 내가 빼놓지 않고 술안주로 등장한다. 그러면 모두가 이 분야의 전문가라도 되는 양 이러쿵저러쿵 훈계를 늘어놓는다.


“눈이 높아서 그래.

“소개팅 좀 해달라고 그래.”

“결혼중개회사에 등록이라도 좀 해봐.”

“내가 한 명 찾아볼게. 기다려봐.”


 내가 현재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만약 없다면 지금 새로 만날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는 역시 고려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나는 당연히 해야 할 일조차 제 힘으로 하지 못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하자 있는 사람’이 돼버린다. 그러다 술이 더 들어가면 급기야 비난으로까지 이어진다.


나이 먹도록 결혼도 못하고 뭐했냐?

“넌 대체 어쩌겠다는 거야!”


 다들 짐짓 큰일이라도 난 듯 날 걱정해주는 얼굴로 말을 하지만 그중 어느 누구도 털끝만치라도 진심으로 날 걱정해주는 사람은 없다는 건 나도 알고 그들도 안다.

 한국 사회에서 싱글은 그렇게 무례해도 되는 존재이며, 아무리 나이가 많고, 사회생활을 많이 했어도 미성숙한 존재이다. 한 번은 지인들과 얘기하다 식당 같은 공공장소에서 함부로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는 아이에 대한 얘기가 화제가 됐다. 그러자 어린 딸 하나를 키우는 지인이 말했다.


“난 절대로 우리 애한테 조용히 하라고 안 할 거야. 왜 우리 애 기를 죽여?”


또 다른 딸 키우는 지인이 곧바로 동조했다.


“당연하지. 난 절대로 우리 애한테 조용히 다니라고 안 해. 우리 애 기를 죽일 수는 없잖아.”


이들의 대화에 난 너무나 놀라서 한 마디를 했다.


“그럼 안 되는 거 아냐? 아이에게 상대를 배려하는 법을 가르쳐줘야 하는 거잖아.”


그러자 앞서 말한 딸 키우는 지인이 단 한 마디로 나를 제압했다.


“그건 네가 애를 안 낳아봐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내가 경험이 없어서 몰라서 그렇다는데 더 이상 뭐라고 말을 하겠는가. 싱글인 나는 대학에서 교직 이수를 하고, 교생 실습을 나가 교육 현장을 고민하며 교사 자격증을 땄어도, 육아나 교육 문제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자녀에게 타인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부모도 많지 않을까” 따위의 말은 꺼낼 필요도 없었다. 이 주제에 관한 그 어떤 내 생각도 제압할 수 있는 무적의 말이 있지 않은가.


“넌 애를 안 낳아봐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심지어 그 지인은 아버지로서 자식을 향한 무한한 사랑과 희생을 이야기하며 나에게 확인사살까지 했다.


“난 애를 안 키워본 사람과는 말도 섞고 싶지 않아.”


 애를 키워보지 못해서 희생을 모르고, 인생을 배우지 못해 성숙되지 못한 사람과 무슨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가 애를 키워서 성숙한 것이 누군가를 차별하고 이런 잔인한 말로 상처를 주는 것이라면, 그런 배움은 배우고 싶지도 않고, 그런 성숙은 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소심한 나는 그 말을 마음에만 묻었다.


 적지 않은 기혼자들이 자신의 젊은 미혼 시절 성숙하지 못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나이 든 싱글들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성장을 멈춘 채 성숙하지 못한 상태로 머물러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두가 비슷한 목표와 비슷한 고민 속에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젊은 싱글의 삶과 혼자 힘으로 인생의 모든 것을 해결하며 남들과 다르게 살아가는 나이 든 싱글의 삶은 같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방식대로 인생을 배우고 성장해 간다. 많은 이들이 어른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되어 희생하며 인생을 배우고 성숙해가지만, 누군가는 자신이 선택한 남들과 다른 삶이 헛되지 않도록 더 자신을 채찍질해가며 성숙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특별한 인생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고민 속에 성숙해가며, 누군가는 혼자 나이 들어가는 외로움 속에 성숙해가고, 또 다른 누군가는 늙어서 혼자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성숙해간다. 나이 들어서도 성숙하지 못한 존재는 자신의 삶만 정답이라 여기면서 자신과 다른 삶을 함부로 예단하고 폄훼하며 상처를 주는 인생일 뿐이다.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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