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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Mar 12. 2020

술 못 마시는 남자가 사는 법

 난 술을 잘 못 마신다. 소주 한 잔만 마시면 온 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석 잔을 마시면 오바이트를 하느라 화장실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어야 한다. 술이야 잘 마시는 사람이 있으면 못 마시는 사람도 있는 거고. 술을 못 마시면 안 마시면 될 일이지만, 문제는 내 직업이 기자라는 거다.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 (지금의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들어오기 전 1년여 동안 한 지역 방송사에서 기자 일을 했다.) 부서에서 술자리가 있을 때마다 난 술을 잘 못 마신다는 사실을 숨긴 채 선배들이 주는 잔을 넙죽넙죽 받아 마셨다. 직장 생활이라는 걸 처음 해본 사회 초년병으로서 회사에 술을 못 마신다고 말하는 건 곧 내가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고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과는 참혹했다. 소주 석 잔을 넘기면서부터 화장실에서 오바이트를 하기 시작해, 또 한 잔 마시고 오바이트, 다시 한 잔 마시고 오바이트....... 밤새 이 일을 수십 번씩 반복했다. 내가 술을 잘 못 마신다는 사실은 그렇게 수도 없이 속을 게워내며 눈물 콧물 쏟아가면서까지 숨기고 싶은 비밀이었지만, 얼마 못가 탄로가 날 수밖에 없었다. 내 동기들에게 술을 따라주던 선배가 화장실을 드나들며 너절하게 녹초가 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쟤 얘기 안 돼. 난 쟤는 완전히 내놨어.”

 1년 뒤 그 회사에 사표를 내고 나와 다시 1년 동안의 백수생활을 거쳐 오매불망 바라던 회사의 입사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나에게 가장 큰 고민은 술을 잘 못 마신다는 거였다. 요즘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대안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출입처 중심의 취재환경 속에서, 출입처의 중요한 정보를 갖고 있는 취재원을 내 사람으로 만들어 특종 거리를 빼내는 걸 과업으로 여기는 기자에게 술은 기본이었다. 술 약속을 잡아 2차, 3차, 4차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를 거치며 ‘형님-동생’의 끈끈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렇게 만들어낸 은밀한 관계 속에 특종 거리를 빼내는 것이 기본 룰인 이 바닥에서 술 못 마시는 기자는 무능력한 기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컸다.


 결국 회사를 옮긴 뒤에도 나의 오바이트 셔틀은 계속됐다. 술은 마실수록 는다고 하는데, 나는 시간이 갈수록 주량이 늘기는커녕 ‘한 잔 마시고 오바이트’가 오히려 ‘한 모금 마시고 오바이트’로 축소됐다. 그래도 마셨다. 같은 출입처의 타사 기자들에게 밀리지 않고, 낙오되지 않으려면 악을 쓰고 마셔야 했다. 다른 사람 눈에 안 띄게 몰래 술을 버리려고도 해봤지만 한 명 한 명 차례대로 술잔을 비우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입에 들어갔는지를 확인하는 파도타기 속에 나의 시도는 언제나 무력화됐다. 잔을 들고 이 자리 저 자리 돌아다니며 물을 마시듯 술을 들이켜면서도 얼굴색 하나 안 변 하는 기자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술을 안 마시는 아랍국가에서 태어났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일을 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나가고, 나는 갈수록 지쳐갔다. 나는 왜 나와 맞지 않는 직업을 선택해서 이 고생을 하는가. 언제까지 이런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나. 후회를 거듭하며 몇 번이나 사표를 만지작거렸지만 여러 번의 취업 실패 속에 어렵게 들어온 회사를 다시 그만둘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중앙의 주요 출입처 국장과 얘기를 나누다 술 약속을 잡고 있던 중이었다. 서로 날짜를 맞추다가 그 국장이 부하 직원들에게 우리 회사의 또 다른 기자도 함께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술도 잘 마시고 취재도 잘하는, 유능한 특종기자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부하 직원들은 하나같이 손사래를 쳤다. 그 기자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함께 마시면 도대체 집에 들어갈 수가 없고, 다음 날까지 보통 힘든 게 아니라는 거였다. 한 번 술자리를 한 이후로 다시는 같이 마시고 싶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아, 그렇구나.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취재원도 술 많이 마시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지 않겠나. 술 못 마시는 기자가 있듯, 술 못 마시는 취재원이 있는 게 당연한 일인데 난 나만 혼자 다른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며 나를 숨기고 살아왔던 것이다.


 요즘은 정말 부득이한 자리가 아니면 억지로 술자리에 가지 않는다. 술자리에 가더라도 내 주량을 솔직하게 말하고 주량만큼만 잔을 든다. 저녁 약속을 잡게 되면 주점이 아닌, 상대방의 식성에 맞는 맛집을 찾아본다. 대신 상대방이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걸 좋아하는지에 더 관심을 갖는다. 술에 취하지 않은 또랑또랑한 머리로 그의 얘기를 잘 기억해 두고, 그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찾아 선물하거나, 나와 취향이 비슷하다면 함께 세미나에 참여해 공부를 하기도 한다. 술자리에서 한 번에 벽을 허물어버리는 것처럼 짧은 시간에 친해지지는 않지만, 오히려 이렇게 천천히 가까워지는 사람이 나와 더 잘 맞고 더 오래가는 것 같다. 


 물론 지금 내 출입처가 여전히 술 아니면 취재원을 깊게 사귀는 게 쉽지 않은 검찰이나 정치부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어떤 출입처를 가게 된다 하더라도 전처럼 나를 속여가며 불행한 방식으로 취재원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그 시간에 좀 더 다른 곳에 눈을 돌려 기자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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