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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Apr 16. 2020

선물 주고 욕먹지 않으려면

 아끼는 후배 기자 R과 회사에서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던 때였다. 사무실에 있던 칫솔이 어디론가 사라져 회사 지하에 있는 편의점에 갔다. 비슷비슷한 칫솔들 속에서 뭘 사야 할지 고민을 하는데 ‘원 플러스 원’ 제품이 눈에 들어왔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무적의 쇼핑 아이템 ‘원 플러스 원’이 아닌가. 주저 없이 집어 들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R이 컴퓨터 앞에 앉아 정신없이 방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칫솔 두 개는 필요 없을 것 같아 R에게 하나를 내밀었다. 


 “칫솔 쓸래?”


 그런데 칫솔을 본 R이 소스라치게 놀라서 소리쳤다.


 “헉! 저 입냄새 나요?”


 이런....... 별생각 없이 건넨 칫솔인데, 나 못지않게 소심한 R이 ‘이 좀 잘 닦으라’는 메시지로 오해를 한 것이었다. R의 반응에 당황한 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이거 편의점에서 원 플러스 원이라 산 거야. 이거 봐. 내 꺼도 있잖아.”


 나의 적극적인 해명에도 R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저 주려고 사면서 원 플러스 원 산 거 아니에요?”

 “정말 아냐. 진짜 진짜 아니라니까?”


 진땀을 흘리며 이런저런 말로 해명을 했지만 무슨 증거나 증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본심을 증명할 길이 없었다. 얼굴에 진심임을 담아 여러 차례 해명한 끝에 R은 수긍을 했지만 얼굴에는 뭔가 찝찝한 표정이 남아 있었다. 괜한 쓸데없는 선물로 일하느라 바쁜 후배 마음의 평화만 깨뜨린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준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사람 사이에 물건이 오갈 때는 마음이 함께 오가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그 안에는 상대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 들어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상대가 원치 않는 동정일 수도 있고, 지나친 관심이거나, 과한 호의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건넬 때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마음에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얼마 전 나를 진하게 감동시킨 동료의 선물도 있었다. 내가 새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로 낙점되고 얼마 뒤, 리허설을 하고 있던 어느 날 후배 기자 N이 차나 한 잔 하자며 나를 불러냈다. 회사 휴게실에 가서 앉아 있으니 N이 다가와 주섬주섬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쇼핑백 하나를 건넸다. 쇼핑백을 열어보니 긴장 해소에 좋다는 아로마 향수와 함께 엽서 한 장이 들어있었다. 센스 있는 향수도 감동적이었지만 그의 엽서 한 장이 내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문장 하나하나마다 날 응원해주는 그의 진심이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평소 나에게 진정성 있는 관심을 갖지 않고선 결코 담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N은 기본적으로 글을 정말 잘 쓰는 사람이다. 처음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게 만든 것도, 하지만 쉽사리 글을 쓰지 못하고 긴 시간 동안 주저하게 만든 것도 N의 브런치였다. 예술가적 감성과 기자적 논리를 모두 갖춘 그의 탄탄한 글들은 ‘나도 간절히 저런 글을 쓰고 싶다’며 가슴을 뛰게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나는 도저히 저렇게 잘 쓸 수 없다’며 좌절시키기도 했다. 


‘나묭’ 브런치 --> https://brunch.co.kr/@namgizaa


 그런 그의 엽서 속에는 짧은 글이지만 앵커가 되기까지 걸어온 내 삶에 대한 진심 어린 헌사와, 앞으로 내가 앵커로서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진지한 조언이 겸손한 어투 속에 모두 담겨 있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내 가슴속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가 글을 잘 쓰는 건 문장력이 훌륭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건 사람에 대한 진실된 관심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그 엽서는 내 휴대폰 속 사진으로 저장되어 있다. 일을 하다 종종 내가 앵커를 잘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면 그 엽서를 읽으며 다시 초심을 떠올리고 힘을 낸다. 나도 소중한 이들에게 이런 감동적인 선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N이 준 엽서. 그림도 참 따뜻하다

 얼마 전 2월 29일은 고마운 후배 기자 C의 생일이었다. 그의 생일은 공교롭게도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2월 29일이다. 생일이 올림픽처럼 4년에 한 번 돌아온다니! 남들보다 4배는 더 특별한 생일이 아니겠는가. 평소 내가 괴로울 때마다 힘이 돼주고 좋은 일에는 누구보다 먼저 기뻐해 주는 고마운 후배이기에 4년 만에 돌아온 이번 생일만큼은 꼭 작은 선물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생일날이 되어 선물을 고르자니 무엇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렇게 고마운 후배임에도 그가 어떤 선물을 받아야 가장 기쁘고 행복한지 나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SNS 선물함 속 상품들을 이것저것 뒤적였지만 대부분 어느 쇼핑몰에 가든 살 수 있는 뻔한 것들이었고,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다 적절치 않아 보였다. 그렇게 시간만 흘려보내다 결국 고른 건 케이크였다. 케이크가 아무리 이쁘고 맛있다 한들, 그 평범한 케이크 하나 속에 내 진심을 빵가루 하나만큼이라도 담아낼 수 있을까. 특별하지 못했던 그 날의 선물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선물을 잘 고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가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직장 동료든 친하다는 이유로 평소 편하게만 지내다 갑자기 선물을 고르려고 하면 좋은 결과물을 찾아낼 수가 없다. 평소 상대의 눈길이 오래 머무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곳은 어디인지,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순간이 언제인지, 그 미세한 움직임을 잡아낼 수 있어야 행복이 담긴 선물을 고를 수 있다. 나는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진심 어린 관심과 애정을 보내주고 있을까. 오늘이라도 소중한 이들의 눈빛을 좀 더 쳐다봐야겠다.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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