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호 Mar 17. 2020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됐을 때

 중국에서 코로나19 감염증 확산이 절정에 달하면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던 지난 2월 초, 뉴스데스크에서 베이징 특파원을 연결했다. 이미 전세기를 통해 우한에 있던 교민들이 현지를 빠져나오고, 베이징과 상하이 등 대도시에 있는 교민들 상당수도 줄줄이 귀국길에 오른 상황. 하지만 여전히 바이러스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그 곳에서 탈출은커녕 가족과 함께 남아 현지 상황을 보도하고 있는 특파원의 얼굴을 보니 한없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당초 정해져있던 질문들이 있었지만 첫 질문으로 본심이 튀어 나왔다.


 “좀....... 두렵지는 않으세요?”


 뉴스에서 좀처럼 하지 않는 뜻밖의 질문에 특파원이 잠시 주저하는 듯 하더니 곧 입을 열었다.


“사실 좀 위축이 되긴 합니다. 주위에 계셨던 한국 분들 가족들이 거의 귀국을 했기 때문에, 저보다 집에 있는 식구들이 좀 불안해하는 감이 있습니다. 당분간 식구들은 집에 꽁꽁 있고 저 혼자 이렇게 밖에 회사 사무실 나오고 마트도 가고 합니다만, 뭐 어쩔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다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 특파원의 얼굴이 그렇게 짠할 수가 없었다. 아빠만 혼자 두고 떠날 수 없어 함께 그 곳에 남아있는 어린 자녀와 부인 걱정에 가족들을 집안에만 ‘꽁꽁’ 묶어 놓았다는 특파원의 애틋한 감정이 뉴스를 마칠 때까지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시청자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뉴스 동영상에 베이징 특파원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댓글들이 여럿 달렸다.


[이쁜녕]

“김희웅 중국특파원님, 진정한 기자십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라는 말씀에 가슴이 찡하네요. 아무 일 없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응원하는 시청자가 있다는 것도 잊지 마세요. 힘내세요. 생생한 현장 뉴스 매일 감사합니다.”


[꿈별]

“베이징 기자님도 한국에 들어오시게 하면 안 될까요? ㅠ 에궁~ 짠해요.”


[kim soojin]

“중국에 있는 특파원 어떡하냐. 목숨이 경각인데 그냥 귀국하면 안되냐. 이런 식으로 소식을 접하고 싶진 않다.”


 베이징 특파원은 여전히 건강한 얼굴로 뉴스에 나오고 있어 다행이지만 화면에서 얼굴을 볼 때면 두려움 속에 기자의 사명감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사이에서 고뇌하며 현장을 지켰을 그 마음이 떠올라 짠하다.


 나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지난 2008년 5월 중국 쓰촨성에서 일어난 대지진 때였다. 진도 7.9의 강진에 도시 건물의 80%가 무너지면서 무려 9만 명이 숨지거나 실종된 대참사였다. 서둘러 현장으로 가라는 선배의 지시에 비행기를 타고 쓰촨성의 성도인 청두로 향했다. 현장의 모습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돌가루처럼 부서져 버린 건물들과 아무렇게나 버려진 시체들 사이로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 헤매는 시민들, 그리고 부모가 모두 목숨을 잃은 채 혼자 살아남아 울부짖는 아이들의 모습은 만약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처참했다. 

 곳곳을 다니며 현장의 모습을 담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던 어느 날 저녁, 현지 방송에서 긴급 속보가 나왔다.


 “오늘 밤 청두에 진도 8의 강진이 예보됐습니다.” 


 화면에서는 속보를 알리는 붉은색 자막이 끝없이 흘러나왔다. 대지진 이후 매일같이 찾아오는 여진으로 시민들의 공포가 극에 달해있던 상황에서 전해진 공포의 소식이었다. 순식간에 9만 명이 사라진 대지진이 진도 7.9였는데, 오늘 밤 진도 8의 지진이 온다니! 도시 전체는 엄청난 패닉에 빠져들었다. 그나마 형태를 갖춘 건물들에 들어가 있던 수많은 시민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 순간 난 마이크를 잡았고, 카메라기자는 카메라를 들었다. 달리는 시민들 곁에서 함께 뛰며 끝없이 인터뷰를 했다. 머릿속에는 이 공포의 현장을 생생하게 뉴스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시민들을 촬영하며 달리고 달리다보니 도시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에는 온 도시의 시민들이 지진을 피해 달려 나와 있었다. 도시의 모든 시민들이  공포 속에서 함께 모여 있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열심히 촬영을 하고, 인터뷰를 마친 뒤 취재팀과 함께 광장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집에서 이불을 들고 나왔는데 우리만 빈손이었다. 신문지라도 없나 주변을 찾아보았지만 종이 한 장 보이지 않았다. 쓰레기통을 뒤져 폐지 몇 장을 찾아 바닥에 깔고 다함께 앉았다. 그리고 삼각대를 세우고 카메라를 켰다. 언제 지진이 올지 모르니 지진이 오는 그 순간을 담으려면 카메라를 쉬지 않고 돌려야 했다.

 모든 촬영 준비를 마치고 바닥에 눕고 나니 그제서야 내가 있는 이곳의 현실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오늘밤 대지진이 예보된 현장 한가운데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그 곳에. 캄캄한 밤하늘에 별들이 보였다. 옆에서는 그 별 만큼이나 많은 낯선 이들이 함께 누워 언제 찾아올지 모를 비극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밤 정말 지진이 올까? 그 광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까? 그럼........ 난 어떻게 될까. 만약 나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오직 나 하나만 바라보고 사시는 부모님은 어떡하지? 잊고 있었던 걱정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러면서도 눈은 계속해서 카메라로 향했다. 제대로 찍히고 있나? 배터리가 닳지는 않았나? 테이프가 다 된 건 아닌가? 만약 지진이 온다면 꼭! 그 현장을 담아야 하는데!

 그 날 밤 우린 카메라에 지진의 모습을 담지 못했다. 중국 기상청의 지진 예보는 빗나갔다.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밤을 보내 정말 다행인 일인데, 숙소로 돌아가는 마음 한구석에서는 지진의 모습을 영상에 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숙소에 도착해 전날 밤 거리에서 취재한 영상들을 서울로 전송하고 다음 취재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 시각 서울에 있는 회사에서는 난리가 났다. 전 날 밤 현장에 강진이 예보됐었다는 소식이 서울로도 전해진 것이었다. 지금 당장 짐을 싸서 서울로 복귀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곧바로 모든 취재를 중단하고 짐을 챙겨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는 끝없는 탈출 행렬이 이어지면서 항공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고민 끝에 국내선을 타고 중국내 다른 도시에 갔다가 다시 항공권을 구해서 서울로 가기로 했다. 취재팀과 함께 비행기에 타려는데 문득 지난밤 광장에서 함께 누워 밤을 새던 청두 사람들이 떠올랐다. 영문을 모른 채 엄마 등에 업혀 광장에 나온 어린 아이부터 들것에 실린 그대로 차가운 돌바닥에 누운 할머니까지, 두려움 속에 뜬눈으로 광장에서 밤을 보내던 사람들. 그들은 오늘밤도 광장에서 보낼까? 매일 밤 여진은 계속되고 있는데, 언제 다시 강진이 올지도 모르는데, 나처럼 어디로 피할 곳도 없는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다들 무사할 수 있을까? 무거운 마음속에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비행기에 오르며 그렇게 쓰촨성을 떠났다.


 그런데 내가 취재를 하며 결정적인 생사의 기로에 섰던 건 코로나19같은 감염이나, 쓰촨성 대지진같은 대참사가 아닌, 오히려 아주 작은 사고 때였다. 장소도 어떤 특별한 현장이 아닌, 서울 한복판이었다. 어느 초겨울 야근을 하고 있는데 올림픽대로에서 빙판길 교통사고가 났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인명피해도 없는 단순한 사고였다. 다음날 아침뉴스에서 빙판길 조심운전을 당부하는 뉴스가 예정돼 있으니 밤사이 빙판길 사고는 꼭 취재해달라는 편집부의 요청이 있었기에 현장으로 향했다. 

 빙판길에 미끄러진 차량이 뒤에서 오던 차량과 부딪친 사고였는데, 이미 차량은 길가로 치워져 있었다. 사고 차량의 모습을 담기 위해 도로로 나갔다. 카메라기자가 부서진 차량을 촬영하고, 난 그 뒤에서 차량 모습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멀리서 달려오던 대형 트럭이 중심을 잃고 미끄러지며 내 쪽을 향해 덮쳐왔다. 순간적으로 몸을 피했는데, 트럭은 내 얼굴과 불과 10cm 차이도 안 나게 바로 옆을 아슬아슬 빗겨나갔다. 내가 조금만 덜 움직였어도, 조금만 늦게 움직였어도 빠른 속도로 달리던 대형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할 뻔한 순간이었다. 

 다들 꼭 알아야 할 것이, 빙판길 사고는 한 번 난 곳에서 계속 사고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사고차량이 현장을 떠난 뒤에도 미끄러운 얼음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같은 방식의 사고가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 사고가 난 빙판은 후속 조치가 없다면 차도 사람도 절대로 그 위에 서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난 취재 욕심에 그 위험함을 잊은 채 그 빙판길 위에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TV에서 뉴스만 틀면 사고 소식을 접하다보니 소식을 전하는 기자들도, 그 소식을 듣는 시청자들도 점점 사고에 무뎌져간다. 한두 명 죽은 사고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웬만한 집 한 채 불에 탄 건 화재로 보이지도 않는다. 사고가 사고로 보이지 않다 보니 사고 속에 있는 사람조차 잊게 된다. 뉴스에 짧게 지나쳐가는 사고에서 어쩌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어쩌면 사랑하는 이를 안타깝게 떠나보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만 뉴스의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런 사고가 어느 특별한 사람에게만 콕 찍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고가 있는 곳엔 항상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은 대부분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사고에 휩쓸린 보통의 사람들이다. 저 사고가 내 사고였을 수 있고, 저 사람이 나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작은 사고 하나에도 그 안에 담긴 누군가의 아픔을 좀 더 공감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www.instagram.com/kkh_mbc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