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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Mar 03. 2021

우리는 왜 역주행 신화에 열광할까

 걸그룹 브레이브걸스의 노래 ‘롤린(Rollin)’의 역주행 신화가 화제다. 한 유튜버가 과거에 발표됐던 이 노래의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공연 화면과 함께 편집해 올린 동영상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시작된 역주행은 결국 이 노래를 발매 4년 만에 각종 실시간 음원 차트 정상에 올려놓 신화를 일궈냈다.

 도대체 어떤 노래이기에 이렇게 난리인가 싶어 동영상을 찾아보니 역시나 귀에 꽂히는 멜로디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춤, 그리고 군인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까지, 히트를 칠 만한 여러 요소들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인상적인 건 동영상에 달린 댓글들이었다. 여느 걸그룹의 영상과 마찬가지로 멤버들의 실력과 매력을 칭송하는 댓글이 많았지만, 이 동영상에는 유독 다른 곳에서는 찾기 어려운 감동적인 글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진짜 앞길 모르는 거구나... 진짜 열심히 살아야지 ㅜ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나도 살아가면서 인생 살기 쉽지 않다는 걸 점점 깨닫고 불확실한 미래에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하는데...... 개인적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음"


 많은 이들이 이 걸그룹을 보며 자신의 삶을 떠올리고, 그들의 성공에 감정을 이입하며 위로를 받, 용기를 얻고 있었다. 다 이유가 있었다. 브레이브걸스의 데뷔 연도는 2011년. 올해가 2021년이니 꼬박 10년 동안 무명의 세월을 보냈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빛을 보지 못하면서 멤버는 수시로 교체됐고, 중간중간 공백 기간도 길었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이 없으면 1,2년 만에 해체되고 사라져 버리는 숱한 아이돌 그룹들과 달리 무려 10년의 시간 동안 그룹을 유지하며 버텼다. 그 사이 멤버들도 나이가 들어 이제는 대부분 30대에 접어들었다. 무서운 10대들이 주류를 이루며 20대 중반만 돼도 나이 많은 사람 취급을 받는 아이돌계에서 서른이 넘은 나이에 큰 주목을 받지 못하면서도 꿋꿋하게 버틴 것이다. 감동적인 댓글들의 물결 속에 멤버들이 소회를 적은 댓글도 눈에 띄었다.


"작년에 컴백할 때 저희에게 "얘들아 포기하지 마라 고맙다" 해주셨던 댓글이 인상 깊었는데

아직 많은 분들이 이렇게 응원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재미있는 건 이 노래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던 지난 4년 동안 군부대에서는 이미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화제가 된 영상에서도 관객석에 앉은 군인들은 가사를 다 외우고 있는 듯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가 입을 모아 큰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고, 춤까지 그대로 따라 췄다.

 이들의 역주행에 큰 감동을 받은 현역 장병과 예비역들도 댓글 쓰기에 동참했는데, 점호 시간마다 선임이 후임들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거나, 선임이 제대할 때면 새로운 후임에게 이 노래와 춤을 전수해 줬다는 등 저마다 이 노래와 얽힌 즐거운 추억들을 나누었다.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신나고 경쾌한 음악과 매혹적인 춤이 젊은 군인들의 취향을 사로잡은 것 같은데, 나름 설득력 있게 그 원인을 분석한 사람도 있었다. 고된 훈련과 갑갑한 집단생활 속에 매일 힘든 하루를 보내야 하는 군인들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다른 걸그룹들과 달리 자신들처럼 힘든 상황에서도 밝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그들에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동질감을 느낀 것 같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유행한 말 중에 ‘존버’라는 말이 있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버티라는 뜻인데, 현실에서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버티는 자가 이기는 자’라고 하지만 학교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집에서 나를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하는 일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어난다. 코로나 위기 속에 불확실한 미래를 바라보며, 버티면 정말 이기는 건지 불안해하며 버티고 있는 이들에게 ‘존버’의 신화를 눈앞에 보여준 브레이브걸스의 모습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꾹 참고 버티다 보면 우리 인생에도 한 번쯤 역주행이 일어나지 않을까? 마침 감동적인 역주행 신화를 쓴 브레이브걸스의 이름이 ‘용기’를 뜻하는 ‘브레이브(brave)’이니 다들 힘들 때마다 ‘롤린’을 들으며 다시 한번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www.instagram.com/kkh_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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