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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Jan 04. 2021

직장인이 침대 옆으로 굴러 떨어지는 이유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거였다. 신입기자 생활을 할 때는 매일 늦지 않게 출근하려면 새벽 5시 전에 일어나야 했는데, 아침잠이 많은 나로서는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알람시계를 여러 개 맞춰 놓고도 불안해서 엄마한테 몇 시까지는 꼭 깨워달라고 신신당부를 한 뒤 불안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다 보면 그게 습관이 될 만도 하건만, 주말이 되면 오전 내내 잠만 자다 점심시간이 다 돼서야 느지막이 일어났고, 마치 요요현상이 오듯 순식간에 원래대로의 생활 패턴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일요일 밤이 되면 잠이 오지 않아 몇 시간씩 이불속에서 뒤척이며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나의 이런 ‘늦잠 버릇’은 역사가 깊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 늦지 않게 가려면 매일 아침 엄마와 긴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잠에서 깬 뒤에도 한참 동안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안 자는 것도 아닌 상태로 뒹굴거리다가 참다못한 엄마가 끝내 소리를 버럭 지르면 그제야 어기적어기적 기어 나오곤 했다. 

 요즘도 어쩌다 일찍 일어난 날에는 오전 내내 뭔가 정신이 또렷하지 않은 상태로 시간을 보내고, 몸도 마치 어딘가 몸살이라도 난 것처럼 여기저기 쑤시는 느낌이 든다. 그러다가 오후가 되면 몸도 정신도 말짱해지고 저녁이 되면 정신이 또랑또랑해지니 신경을 써야 하는 중요한 일은 저녁 시간으로 미루곤 한다. 


 그런 나도 한 때 아침 일찍 일어나기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한 적이 있었다.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전국적인 ‘아침형 인간 되기’ 열풍이 불었을 때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 전 운동을 한다거나 맑은 정신으로 책을 읽고 글도 쓰며 자기 계발의 시간을 갖는다는 아침형 인간들이 참 부러웠다. 나도 그렇게 시간을 알차게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매일 아침 외국어 공부를 해볼까? 수영을 배워볼까? 소설을 써볼까?’


 그동안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뤄 두기만 했던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면서 이미 아침형 인간이 되기라도 한 듯 기대감이 몽글몽글 피어났다. 

 그렇게 큰 맘먹고 시작한 아침형 인간의 삶. 첫날부터 오전 내내 정신이 해롱해롱 하더니 점심을 먹고 나면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밀려왔다. 그래도 이겨내기 위해 버텼더니 결국 일주일도 못 가서 몸에 열이 나고 기침을 하다가 결국 몸살로 드러눕는 신세가 되면서 장렬히 끝이 나고 말았다. 그때 전국의 동네 의원에 몸살 환자가 급증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돌기도 한 걸 보면 당시 나처럼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가 끝내 포기한 사람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30여 년간 신문기자 생활을 하고 퇴직을 앞둔 선배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지방지 기자로서 중앙 출입처에서 여러 제약을 뚫고 해당 업종의 종사자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이름을 알린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일을 잘 해낼 수 있었는지 묻자 선배가 말했다.


“난 매일 새벽 알람이 울리면 몸을 옆으로 굴려서 그대로 침대 옆에 ‘쿵’ 하고 떨어졌어.”

“왜요?”

“내가 여기서 살아남는 방법은 남들보다 일찍 일을 시작하는 것밖에 없더라고. 그런데 아침 일찍 일어나기가 너무 힘든 거야.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알람이 울리면 곧바로 몸을 옆으로 때굴때굴 굴려서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는 거였어. 그러면 팔이고 등이고 너무 아파서 안 일어날 수가 없어. 정신이 번쩍 들거든. 


 아침잠을 이겨내기 위해 매일 아침 아픔을 참아가며 바닥으로 몸을 던졌을 그 선배의 의지가 참으로 경이로웠다. 아마도 중장년 세대는 대부분 평생을 그렇게 매일 이른 아침 잠을 이겨내며 서둘러 일터로 나갔을 것이다. 지금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혹은 나의 미래를 위해 많은 이들이 아침 일찍 눈을 비비며 집을 나선다.

 나이가 들면 점점 아침잠이 없어진다는데 4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아침마다 이불속에서 뒹굴거리는 걸 보면 나는 아직 나이가 덜 들었나 보다. 아침잠과의 전쟁은 여전히 버겁지만 어쩌면 아침 일찍 일어나 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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