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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Apr 09. 2021

내가 나를 기다려 준다는 것

'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 여는 말

 내가 다닌 대학교의 문과대학 건물 앞에는 특별한 목련 한 그루가 있다. 이 나무에 학생들이 붙여준 별명이 있는데, ‘바보 목련’이다. 이 목련은 매년 봄기운이 돌기도 전인 이른 봄에 다른 목련들보다 일찍 꽃을 피운다. 아직 다른 나무들은 채 새싹도 틔우지 못한 썰렁한 교정에서 혼자 봉오리를 내밀고 이내 그 하얀 꽃을 만개해 개강과 함께 들뜬 마음으로 교정을 찾은 학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그런 관심은 며칠 가지 못한다. 일찍 꽃을 피우는 만큼 일찍 지다 보니, 정작 다른 목련들이 온갖 꽃들과 함께 만발해 교정 가득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봄의 절정을 뽐낼 때에는 혼자 누렇게 변해버린 꽃잎들을 떨군 채 외롭게 서있다.

 이 목련 나무가 왜 매년 이렇게 혼자 일찍 꽃을 피우는지 정확한 이유는 밝혀진 바 없는데, 나무 바로 옆에 건물 안의 난방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스팀 구멍이 있어 이 열기가 원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선후배들의 입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렇게 혼자 앞서가는 나무의 별명이 ‘천재 목련’이 아니라 ‘바보 목련’인 걸 보면 홀로 남들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것이 학생들 눈에는 바보같이 보였나 보다. 일찍 핀다 하여 더 오래 피는 것도 아니고, 더 많이 피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속도에 집착하는 것 같다. 남들보다 앞서야 하고, 빨라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들의 삶을 지배하는 느낌이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늦되면 세상은 곧 낙오자가 될 수 있다며 어서 빨리 ‘바보 목련’이 되라고 재촉한다.


 속도를 기준으로 본다면 나는 패배자다. 대학에 들어갈 때도, 취업을 할 때도, 그리고 작가가 되고 앵커가 될 때에도 난 한 번에 된 적이 없다. 공부를 해도, 운동을 해도, 사람들과 교류를 해도 무언가를 이루는 데 있어 한 번은커녕 두 번에 된 것도 잘 없다. 뭘 하든 몇 번씩 넘어지고 난 뒤에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기에 남들보다 늦게 도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 가장 큰 경쟁력은 ‘한 번에 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무엇을 하더라도  한 번에 되지 않았기에 한 번 더 고민할 수 있었고, 한 번 더 준비할 수 있었으며, 한 번 더 숙성시킬 수 있었다. 그 속에서 단단해진 내공과 깊어진 공감능력은 좀 늦게 도착한 목적지에서 어렵게 찾아오는 기회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다.


 이 책은 기다림에 대한 책이다. 기다리는 시간은 결코 버리는 시간이 아니다. 기다려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알지 못하는 더 가치 있는 것들을 배우고 채우는 시간이며, 기다림이 끝난 뒤 펼쳐놓을 소중한 것들을 잘 모아서 차곡차곡 쌓아놓는 시간이다. 같은 나이라도 바로 대학에 들어간 신입생보다 학교 밖에서 긴 준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재수생이 더 많은 고민을 하며, 쉽게 회사에 들어간 신입사원보다 숱한 도전과 실패를 맛보고 있는 취업 준비생이 더 단단한 인내와 끈기를 기른다.


 기다림을 위해 필요한 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다.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나를 가장 존중해줘야 할 사람은 나 자신이다. 주변의 시선이나 세상이 정한 정답이 아닌 나 자신을 믿고 바라볼 때 이미 오래전부터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내 안의 진짜 나와 마주할 수 있다. 혹시 지금 이 순간 그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면 이 책 속에서 힘차게 뛰고 있는 당신의 심장소리를 다시 듣게 되기를 소망한다.


('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 여는 말)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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