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동영상 가운데 재미있는 영상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전 세계의 방송사고 영상이다. 생방송 도중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갑자기 벌어지는 방송사고는 그야말로 예측 불허의 재미를 선사한다. 그중에서도 제일 재미있는 건 역시 뉴스에서 벌어지는 사고다. 한없이 진지하고 근엄한 분위기 속에서 갑자기 벌어지는 코믹한 상황은 그 의외성으로 인해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다.
하지만 그게 만일 내 얘기라면? 생방송에서 사고를 낸 사람이 바로 나라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데 정말 피하고 싶은 그 순간이 나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내가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가 된 지 두어 달밖에 안 됐을 때의 일이다. 주중 뉴스데스크 앵커가 오랜만에 휴가를 가면서 주말 앵커인 내가 며칠 동안 주중에도 뉴스를 진행하게 됐다. 주중 뉴스가 주말보다 시간이 길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프로그램이고 형식에서도 큰 차이가 없기에 크게 부담 없이 뉴스에 임했다. 그런데 사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일어났다.
여느 방송 프로그램들과 마찬가지로 뉴스데스크는 타이틀과 함께 시작된다. 장엄한 타이틀 음악 속에 뉴스데스크를 알리는 CG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CG가 벗겨지면 카메라가 스튜디오를 비추면서 뉴스를 준비 중인 앵커들의 모습이 화면에 등장한다. 그런데 이때 앵커들의 노출 방식이 주중과 주말에 차이가 있다. 주말은 남녀 앵커가 테이블 앞에 앉아서 기사들을 살펴보고 있으면 카메라가 앵커들 주위를 180도 회전하며 각도를 달리해 비추는데, 주중은 남녀 앵커가 스튜디오 양쪽 끝에서 걸어 나와 중앙에 있는 테이블로 향한다. 한 마디로 앵커가 주말에는 앉아있고, 주중에는 걷는다.
주말에만 뉴스를 진행했던 나로서는 그렇게 걸어 나와서 테이블로 가는 건 처음이었다. 그게 뭐 힘든 일인가? 그냥 원고를 보면서 몇 발짝 걷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생방송이 시작되고 카메라가 스튜디오를 비추자 난 원고를 읽으며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그런데 서너 발짝 뗐을 무렵 바닥에 살짝 튀어나와 있는 작은 턱에 구두가 걸려 꽈당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생방송에서, 그것도 메인뉴스의 첫 장면에서 앵커가 등장하자마자 카메라를 향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넘어져버린 것이다. 거리에서 넘어져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일단 넘어지면 아프거나 다친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오직 하나, 누가 봤느냐 하는 거다. 그런데 실시간으로 전국에서 수많은 시청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공중파 뉴스에서 앵커가 그런 볼썽사나운 몰골을 보이며 몸개그를 펼쳤으니 이걸 대체 어쩐단 말인가. 못 본 척해달라고 하기에는 목격자가 너무 많지 않은가!
눈앞이 캄캄했다.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얼른 자세를 잡고 테이블 앞에 섰지만 이미 멘털은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상태였다. 신뢰도가 생명인 뉴스에서 앵커가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로 넘어지다니....... 방송사고 영상을 즐겨 보는 나조차 전 세계 뉴스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장면이었다. 이제 곧 내 방송사고 장면이 인터넷을 도배하겠구나. 이제 이 영상은 영원히 나를 따라다니겠구나. 절망감에 휩싸였다.
그런데 잠시 뒤 다시 한 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타이틀이 나가고 본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에 광고가 방송되는데, 그새 급히 유튜브에서 라이브 영상을 돌려본 여자 앵커가 한껏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선배! 그거 방송에 안 나갔어요!”
비밀은 화면에 있었다. 사고가 난 문제의 그 뉴스 타이틀은 처음에는 앵커들을 멀리서 비추다가 중간에 앵커를 클로즈업한 화면으로 전환을 한다. 멀리서 비추나 가까이서 비추나 어차피 카메라가 찍고 있는 것은 앵커이기 때문에 앵커가 화면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다.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틈이 숨어있었다. 두 화면이 바뀌는 순간 앞 화면과 뒤의 화면이 살짝 겹치는 디졸브 구간이 있는데, 마침 내가 넘어진 게 1초도 안 되는 이 짧은 순간에 벌어진 것이었다. 덕분에 방송에서는 앞 장면에서 내가 넘어지기 직전 몸이 앞으로 쏠리는 부분만 잠깐 보이고, 뒷 장면에서는 재빨리 제자리에 서있는 모습이 담겼다. 참으로 기적적인 일이었다. 방송을 마치고 영상을 돌려본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있어서 ‘방송사고’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1년쯤 지났을 무렵, 이런 내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는 일이 벌어졌다. 유난히 긴 장마로 많은 사람들이 수해를 입은 시기였다. 기자가 수해 현장 한 곳에 나가 그곳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중계가 예정돼 있었다. 생방송이 시작되고, 나는 현장을 소개한 뒤 곧바로 기자의 이름을 불렀다. 화면에 기자의 모습이 등장했는데 느낌이 좀 이상했다. 기자의 얼굴 가득 크게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곳 상황이 어떤지 질문을 하자 기자는 몇 마디 하는 것 같더니 안절부절못하면서 아무 말을 못 하고 벌벌 떠는 손으로 휴대폰 화면을 만졌다. 생중계 현장에는 기자에게 기사 원고를 띄워주는 프롬프터가 앞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날 현장에 있던 프롬프터가 마침 뉴스에서 중계가 연결되는 순간 빗물 때문인지 갑자기 먹통이 돼버린 거였다. 당황한 기자가 급히 원고가 들어있던 스마트폰을 켰지만 역시 습기 때문인지 스마트폰마저 작동이 멈춰버리면서 기자의 원고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기자의 당황하는 모습에 급히 화면이 현장을 비추는 장면으로 바뀌었지만 원고를 잃어버린 기자는 제대로 입을 떼지 못했고,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생방송에서는 통상 3초 동안 정해진 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사고라고 보는데, 무려 수십 초 동안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으니 대형 사고였다. 그 와중에도 기자는 어떻게든 방송을 해보겠다고 기억 속의 원고를 꺼내려 안간힘을 썼고, 기자의 목소리가 나왔다 안 나왔다가를 반복했다.
카메라가 스튜디오로 돌아오자 나는 급히 시청자들한테 사과 멘트를 했다. 그렇게 방송을 끝내고 보니 현장에 있던 기자가 걱정이 됐다. 연차가 많지 않은 젊은 기자가 전국에 방송되는 뉴스에서 허둥지둥 당황하는 모습을 그대로 노출시켰으니 얼마나 괴롭고 참담할까. 연락을 해서 “누구나 다 그럴 수 있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며 위로했지만 기자는 그저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반복할 뿐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방송 이후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뉴스 동영상에 그 기자를 걱정하는 시청자들의 댓글이 줄을 이은 것이다. “그 기자 괜찮냐”는 걱정의 말부터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라는 위로의 말, 그리고 “그 기자 혼내지 마라”라는 애교 섞인 경고의 말까지 어림잡아 수백 개는 되는 댓글들이 하나같이 그 기자를 응원하는 내용이었다. “그 기자 덕에 참으로 오랜만에 조용히 빗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는 감미로운 글도 있었다. 글마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뗀 젊은 기자를 향한 사람들의 따뜻한 정이 넘쳐났다. 수해 속에서 고생하며 현장 상황을 전달하려던 기자의 진정성과 갑작스러운 사고에 당황하면서도 끝까지 방송을 잘 마치려 몸부림친 열정이 시청자들의 마음에 전해진 듯했다. 어차피 방송을 하는 것도, 보는 것도 다 사람의 일이 아닌가. 사고 속에서 드러난 인간미 넘치는 그날의 일은 지금도 마음속에 훈훈하게 남아있다.
그날 이후에도 나는 종종 방송에서 사고를 친다. 클로징 장면에서 여자 앵커의 인사말이 끝나기도 전에 혼자 고개 숙이고 인사를 했다가 고개를 다시 들지도 못하고 내리지도 못한 채 계속 어정쩡하게 숙이고 있거나, 프로그램 로고가 새겨진 카드를 거꾸로 든 채 뉴스를 진행하기도 하고, 물을 마시던 큼지막한 텀블러를 테이블 밑에 내려놓는 걸 깜빡 잊어서 PD를 당황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처음만큼 사고를 두려워하지는 않는 것 같다. 살면서 실수 안 하는 사람 누가 있고, 사고 안 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중요한 일에서 실수를 하지 않고, 사고를 안 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긴 진심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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