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생일을 앞두고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생일날 당일, 카톡에서 내 전화번호가 등록돼 있는 모든 이들에게 자동으로 내 생일임을 알려주는 ‘생일 알림’ 기능을 그대로 켜 둘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거였다. 끄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카톡의 ‘내 프로필’에 들어가서 ‘생일 알림’을 끄기만 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몇 년 전부터 카톡에서 서비스하기 시작한 이 ‘생일 알림’ 기능은 우리의 ‘생일 문화’에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본다. 이전에는 누군가의 생일이란 그 주변의 가까운 몇 사람만 아는, 극히 ‘제한된 정보’였지만, 이 서비스가 시작된 이후 카톡 이용자의 생일 날짜는 개인의 친분 정도와 상관없이 자신을 아는 거의 모든 이들이 알 수 있는 일종의 ‘공개된 정보’가 됐다. 생일 당일 카톡 ‘친구 목록’의 맨 위쪽에 생일을 맞은 사람의 이름이 선명하게 뜨는 건 물론, 혹시나 놓쳤을까 지난 며칠간 생일과 앞으로 며칠 안에 다가올 생일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니, 지인의 생일이란 이제 웬만해선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고, 굳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었다.
카톡은 갑자기 이런 기능을 왜 추가했을까. 이 각박한 세상에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더 관심을 갖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착한 마음을 가진 개발자가 그런 좋은 뜻을 갖고 개발을 시작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의도는 생일을 맞이한 사람의 이름 옆에 앙증맞게 붙어있는 ‘선물하기’ 버튼 속에 있지 않을까. 카카오의 ‘선물하기’ 매출은 지난 2017년 1천억여 원이었던 것이 2020년에는 4천억 원을 넘겨, 그야말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중 적지 않은 비중이 이 ‘생일선물’아닐까.
2020.6.29. 서울경제신문
이런 수치를 보면 살짝 얄밉기도 해서, 카톡의 의도에 넘어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하.... 안타깝게도 그러기엔 이게 너무 편하다. 예전 같으면 뭘 살지 한참을 고민해서 매장을 찾아가 구매하고, 포장을 해서 직접 건네줘야 했던 생일 선물이 이제는 가만히 앉아서 카톡에서 버튼 몇 번만 누르면 상황 종료다. 생일 선물로 살만한 상품들을 알아서 소개해주고, 심지어 단돈 몇 천 원, 커피 한 잔 값만으로도 소소하게 선물을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편할 수가 없다.
특히, 생일을 ‘음력’으로 쇠는 나 같은 경우에는 이런 변화가 더 극적이다. 음력 생일의 경우 매년 그 날짜에 해당하는 양력 날짜가 달라져서 주변 사람들이 내 생일을 알기도 어렵고, 설사 한 번 알더라도 다음 해에 다시 챙기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굳이 내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는 한 매년 생일은 평소와 다름없이 매우 조용하게 지나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 카톡 생일 알림 서비스에 놀라운 기능이 숨어 있었으니, 매년 음력 생일을 양력 날짜로 환산해서 알려주는 것이다. 언제나처럼 아무 일 없이 지나갈 것 같던 어느 생일날, 갑자기 아침 일찍부터 시끄러운 알람 소리와 함께 축하 메시지가 오기 시작하더니, 하루 종일 사람들의 축하가 밀려들었고, 그중 상당수는 주렁주렁 선물까지 달고 왔다. 결국 그 해 생일, 나는 이전까지 평생 받은 생일 선물보다 더 많은 선물을 받았다. 그동안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했던 내 생일은 그렇게 순식간에 시끌벅적한 날로 바뀌었다.
더 큰 변화는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일어났다. 생일 당일 카톡으로 선물을 받을 때 한 번 즐거웠는데, 이후 며칠 동안 택배로 실제 선물이 배달돼 올 때마다 또 즐거웠다. 그런 즐거움이 며칠 동안 이어지니, 예전에는 하루면 끝났을 생일이 그 이후에도 며칠 동안 이어져, 마치 ‘생일 주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평소 생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아왔는데, 막상 이렇게 격한 축하를 받아 보니 은근히 기분 좋은 마음이 며칠 동안 이어졌다. 기술의 발달이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거라더니, 이런 걸 말하는 걸까?
그런데, 화려했던 ‘생일 주간’이 지나고 일상으로 돌아오자, 화끈하게 치른 기념일의 대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생일 선물을 받았으니, 상대의 생일에도 선물로 보답하는 것이 마땅한 일. 그런데 사람들의 생일이 어찌나 자주 돌아오는지, 어떨 때는 며칠 걸러 한 번씩 생일이 찾아왔다. 그때마다 선물을 골라야 하는데, 막상 상품들을 둘러보니 그 선물이 그 선물 같아서 상대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고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점차 사람들의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선물 고르는 일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해를 거듭할수록 생일날 카톡으로 선물을 받고 느끼는 흥분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올해 다시 생일이 다가오자 슬슬 고민이 일었다. 카톡에 입력돼 있는 내 생일을 그대로 둘 것인가, 아니면 지울 것인가. 계속 시끌벅적한 생일을 치를 것인가, 아니면 예전의 고요했던 생일로 돌아갈 것인가.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바쁜 일상에 치여 시간을 보내다 보니 결국 알림 기능을 끄지 못한 채 생일을 맞았다.
그렇게 다시 한번 시끌벅적한 생일을 보낸 나는 이후에도 알림 기능을 끄지 않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이 기능의 좋은 면을 발견한 것이다.
우선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다 보니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소중한 사람들이 생일을 계기로 연락을 해왔다. 일본으로 유학 가서 자리를 잡은 고등학교 때 친구, 우연히 마주친 자리에서 연락처만 받아놓고 연락이 끊어졌던 중학교 때 친구, 한때 둘도 없이 친했지만 몸이 멀어지면서 점차 거리감이 생겼던 옛 직장 동료. 서로를 아끼는 마음은 변치 않았지만 언젠가부터 연락이 뜸해졌던 이들이 카톡에서 내 생일 알림을 보고는 이를 계기로 축하한다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한 번 연락해야지 하면서도 어쩌다 보니 그러지 못했던 이들에게 카톡을 통해 알게 된 상대의 생일은 아무 고민 없이 말을 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렇게나마 우리는 자칫 끊어질 뻔했던 인연의 끈을 다시 이었다.
사람들이 보내준 선물에서도 예사롭지 않은 관심이 보였다. 평소 내가 커피를 못 마시는 걸 기억해 두었다가 디카페인 커피나, 차를 보내준 동료들. 최근 내 근무 시간이 길어진 점을 떠올리고 건강을 챙기라며 비타민이나 홍삼 같은 건강 보조 식품을 보내준 동료들. 그들이 보내준 건 비단 눈에 보이는 물건만이 아니었다. 나에게 무엇이 필요할지, 요즘 나는 어떻게 지내는지 생각하며 그들의 귀한 시간을 보내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카톡의 생일 알림 기능을 그대로 켜 두기로 했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주변 사람들의 생일에 맞춤형 선물을 고르는 게 좀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 귀찮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선물을 고르는 그 시간만큼은 1년에 한 번, 나에게 소중한 사람에게 감사하고, 그 사람을 위해 생각하는 값진 시간으로 보내기로 했다. 그거야 말로 카톡이 내게 준 진짜 생일 선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