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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Dec 01. 2020

직원의 창의력을 꺾는 상사

 창의력이 스트레스가 된 시대이다. 회사들은 끊임없이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요구하고, 직장인들은 ‘창의력이 있어야 한다’, ‘창의적인 인재가 돼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듯  듣는다. 아무리 성실하고 바른 사람이라도 창의력이 부족하면 낙오자가 될 것 같은 분위기까지 느껴진다.

 직장인들은 학교에서 창의력과는 거리가 먼 교육만 받고 자란 터에, 성인이 되어 갑자기 창의적인 인재가 되려니 보통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창의력 학원이라도 있으면 다녀보련만, 창의력 자격증이라도 있으면 열심히 따 보련만, 도대체 그게 어떻게 해야 쑥쑥 자라나는 건지 알 수가 없으니 갑갑하기만 하다. 그래도 살아남기 위해, 시대가 그렇게도 원한다는 창의적인 인재가 되기 위해 창의력에 좋다는 책도 읽어 보고, 예술작품도 감상해 보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도 떠올려 보며 발버둥 친다.

 그런데 정작 회사의 모습은 창의력과는 영 거리가 멀어 보인다. 창의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엄격한 상하관계와 경직된 분위기는 그대로 둔 채 직원들에게만 창의력을 강조하니 좋은 성과가 나올 리 없다. 특히, 조직 곳곳에 암초처럼 버티고 앉아 직원들의 창의력을 갉아먹는 상사들은 열심히 하려는 직원들의 의욕을 꺾고 조직을 뒤처지게 만든다.


 직원의 창의력을 꺾는 대표적인 상사는 ‘심판형 상사’이다. 본인은 팔짱만 끼고 앉아서 직원들이 내놓는 아이디어를 심판만 하는 것이다. 이런 상사들이 할 줄 아는 말은 두 개 밖에 없다.


“좋아.”

“킬!”


 특히 뒤의 말을 주로 사용한다. 좋은 아이디어는 설익은 생각에서 자라나는 건데, 언제나 완성된 결과만을 요구한다. 직원의 작은 아이디어를 계발하고 발전시켜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오직 심판하고 결정만 내린다. 아이디어가 발전되기 위해서는 활발한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이 보태지고 어우러져야 하지만 이런 과정을 모두 생략한 채 결과만 요구하는 것이다. 상사는 자유롭게 얘기하자며 직원들을 한 자리에 모아 보기도 하지만, 그 자리에서 이뤄지는 건 토론이 아니라 숙제 검사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직원들은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그걸 꺼내 놓는 걸 주저하게 된다. 상사는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내지 않는다고 탓하지만, 그 이유가 자기 때문이라는 건 알지 못한다.


 직원의 창의력을 꺾는 또 다른 상사는 자기가 모든 걸 다 알아서 하는 ‘만능형 상사’이다. 대개 일을 잘하고 유능한 상사들 중에 이런 사람이 많다. 이들은 부하직원이 해놓은 일을 보면 크게 한숨부터 쉰다. 자신은 처음부터 일을 잘해왔기에 부하직원들의 업무능력이 웬만해선 만족스럽지가 않다. 젊은 직원은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성장하는 건데, 그걸 기다려주지를 못한다. 직원이 뭘 해갖고 오면 잔뜩 찡그린 얼굴로 말한다.


“그냥 둬. 내가 할게.”


 상사는 직원이 해야 할 일을 보란 듯이 뚝딱 해치운다. 직원에게 지적해 주고 가르쳐 주며 성장을 기다리는 것보다 자기가 해버리는 게 훨씬 빠르고 간편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업무를 하며 쌓은 노하우를 직원들과 공유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넘친다.

 직원은 그런 상사를 만나면 처음에는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르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편해진다. 상사가 다 알아서 해주니 굳이 힘들게 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려고 고민하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상사의 화려한 개인플레이로 일이 다 잘 풀리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한계가 오기 시작한다. 조직은 한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현란한 개인플레이를 펼치던 상사는 점차 지쳐가고, 결국에는 조직력이 좋은 다른 팀과의 경쟁에서 도태된다.


 직원의 열정을 쪽쪽 빨아먹는 ‘흡혈귀형 상사’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직원에게 쉴 새 없이 일을 주며 몰아친다. 직원을 닦달해서 성과를 많이 끌어내는 상사가 능력 있는 상사라고 생각한다. 직원들의 하루 일과를 철저히 감시하며 조금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모든 직원을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싶어 한다.

 이런 상사가 있는 조직은 일단 일을 많이 시키니 눈에 보이는 성과도 많다. 그런데, 조금만 잘 들여다보면 새롭거나 참신한 것이 없고 다 그저 그런 것들뿐이다. 직원들이 상사가 시키는 일만 하기 때문이다. 직원은 도대체 여유가 없으니 뭔가 새로운 걸 생각할 겨를이 없다. 당연히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릴 시간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다. 주체적으로 일을 찾아서 하지 않고 오직 위에서 내려오는 일만 기다린다. 요즘 시대와 맞지 않는, 창의력과 가장 먼 조직의 모습이다. 일을 가장 많이 하고, 가장 성실하며, 가장 힘든 조직이지만, 결국에는 그보다 일을 별로 하지 않는 창의적인 조직들한테 점점 밀려나면서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그 중심에는 직원의 창의력을 갉아먹는 흡혈귀 상사가 있다.


 많은 회사들이 앞 다퉈 직원들에게 창의적인 인재가 되라고 소리친다. 그런데, 직원이 창의적이려면 가장 먼저 회사가 바뀌고, 상사가 바뀌어야 한다. 말로는 창의력을 말해도 회사와 상사가 그대로라면 아무리 창의적인 직원을 새로 뽑아도 얼마 못가 기존의 조직문화에 스며들고 만다. 구성원 누구나 마음대로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줘야 숨어있던 기발하고 놀라운 생각들이 샘솟듯 튀어나올 수 있다. 만약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유독 창의력이 부족해 보인다면, 혹시 내가 직원들의 창의력을 꺾는 상사는 아닌지, 그런 선배는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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