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회의 만들기_05
모니터링, 설문조사, 워크숍 실시 등의 도구를 사용하여 회의 현상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그토록 빈번하게 실시하는 회의에는 뜻밖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필자가 컨설팅에 참여한 회의문화 혁신 사례 가운데 가장 놀라울 만한 사실은 회의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만족도가 낮다는 점이다. 이들은 회의의 만족도를 묻는 말에 7점 만점의 3.98점이라는 응답을 보였다. 보통 조직 운영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하면 구성원 대부분은 평소 생각보다 관대한 점수를 주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인구 통계적 변수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노출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참여자가 다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추세가 나타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4점 미만(7점 척도기준)의 점수는 매우 낮은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회의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은 ‘현재의 회의’ 자체를 회의(懷疑)하는 것이다.
또한, 회의 진행의 역할에 따라서도 만족도가 다르다. 필자가 컨설팅한 대부분 회사에서 회의 주관자의 만족도는 회의 참석자의 만족도보다 높게 나타났다. 특히 주간회의, 월간회의와 같이 계획/실적 보고를 중심으로 한 회의에서는 만족도 차이가 1.0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이는 주관자는 회의를 통해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전체를 대상으로 생각이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이점을 얻기 때문이다. 반면에 회의 참석자는 자기 부서(일)의 현황만 얘기하고 나면 업무 특성상 크게 관련 없는 타부서의 일에 대해서는 그저 듣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놀라운 점은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제각각 동상이몽(同床異夢)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주제로 회의가 열리지만, 참여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회의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필자는 회의에 참여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회의 시작 전과 회의가 끝난 후 당일 회의의 목적과 목표를 적어보라고 했었다. 결과는 예상과 같았다. 회의 주관자와 참석자 사이에도 다른 생각과 입장을 가졌지만, 회의 참석자들 서로 간에도 회의에 참여하는 목적과 목표가 제각각이었다. 수많은 회의가 ‘산으로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회의는 언제나 겨울 왕국?
그 밖에도 회의문화의 문제는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회의가 너무 많다는 사실도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회의문화의 현실이다. 전략회의라고 하는데 전략은 없고, 아이디어 회의라고 하는데 아이디어가 없는 회의가 부지기수로 많은 상황이다. 한마디로 쓰레기 같은 회의가 조직 내에서 귀한 시간과 인력의 낭비를 부채질하고 있는 셈이다.
회의장이 프레젠테이션 경연장이 되는 경우도 흔히 만나는 사례다. 누가 누가 더 잘하는지는 서로 자랑하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화려한 모형과 아이콘, 현란한 전환 효과와 애니메이션이 동원되면서 청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쇼가 펼쳐지기도 한다. 알맹이 없는 화려한 화면에 넋을 잃고 있다가 회의장을 나오는 경우도 많다.
회의문화의 현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점은 회의 자리에서 말하는 순서는 ‘늘’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누가 1번이고, 누가 2번인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물론 회의의 공식적인 발언의 순서가 정해져 있지만, 회의가 끝나가는 마지막 발언의 시점에도 말하는 사람, 말할 사람이 정해져 있는 듯하다. 회의의 참석자들은 ‘왠지 지금의 이 분위기에서는 절대 말하면 안 된다’고 기가 막히게 분위기를 감지해 낸다.
마지막으로 놀라운 사실은 회의장의 공기가 냉랭하다는 점이다. 온도계를 가지고 측정하는 회의장의 실내 온도는 정상적이다. 하지만 회의장의 정서적 분위기를 측정하는 온도계는 아마도 영하 10도 이하이지 않을까 싶다. 회의장에는 전혀 열기가 느껴지지 않으며 전체적으로 꽁꽁 얼어 있기 일쑤다. 대부분의 회의장은 언제나 싸늘하다.
가짜 회의에는 없는 것들
이런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 회의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가짜 회의를 거둬내고 진짜 회의의 회의결행이 이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도대체 가짜 회의에는 무엇이 빠져 있는 것일까?
첫째. 회의는 있지만, 논의는 없다. 어떤 회의는 회의 주제 자체가 논의할 가치가 없는데도 회의가 열리는 경우가 있다. 또는 주최자의 일방적인 강요로 토의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일부 분위기가 좋은 회의는 일상사나 농담 등 회의 주제와 관련 없는 발언이 중심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둘째. 논의는 있지만, 결정이 없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또는 회의시간을 지키는 것이 원칙이라는 이유로 결론 없이 모호하게 끝나는 상황이 발생한다. 결론을 사람마다 다르게 판단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실질적인 결정권자가 참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셋째. 결정은 하되 실행이 없다. 누가, 언제까지,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하지 않고 끝낸다. 결국, 결론이 불분명하여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실현 가능성을 살피지 않는 결론을 도출하는 경우도 있다. 실행 이후 진척도 점검 및 점검방법이 부재하다.
회의는 왁자지껄해야 한다
이처럼 대부분의 가짜 회의에는 논의와 결정과 실행이 없다. 회의에서 이러한 활동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인정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진짜 회의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진행하면 될 것인지를 다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실제 현실에서는 이렇게 행동하기가 어렵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진짜 회의를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진짜 회의는 주관자와 참석자 모두가 즐거워지는 회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진짜 회의를 진행하는 것도, 진짜 회의를 지켜볼 기회도 적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진행하는 회의를 진짜 회의를 만들기 위해 폐기해야 할 일을 시작하는 것이 우선으로 필요하다. 없는 것을 채우기보다, 있는 것을 없애는 것이 혁신의 출발이다.
가장 먼저 없애야 할 것은 보고 중심의 회의이다. 회의는 공유를 목적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회의는 의장의 역할과 책임을 상대에게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각자의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듣고 옳은 방향을 찾기 위해 개최되어야 한다. 따라서 회의에서는 공유를 목적으로 보고를 받는 행위, 지시·질책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될 경우 회의는 자칫 참석자들은 이미 다 공유하고 있는 내용을 보다 형식적인 방법으로 보고하는 과정이 되고 만다. 발표 위주의 회의는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바꾸며 여간해서는 자기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거나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누어 최선 안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일방항적인 회의를 축소하거나 폐지해야 한다.
회의장에서는 용기를 내지 않고도 발언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어떤 의견이든 편안하게 말할 수 있고, 모두가 귀 기울여 들어주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인정과 칭찬, 격려와 지지의 언어들이 난무해야 한다. 한마디로 회의장은 왁자지껄해야 한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회의의 목적과 목표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다음 장부터 이야기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