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공간의 권위를 제거하자

진짜 회의 만들기_07


오늘은 내가 커피 담당이야



회의의 물리적인 양을 줄이는 활동이 완성되었다면, 이제 회의를 진행하는 공간의 변화를 통해 자유로움이 가득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공간은 상황을 바꾸고 상황은 행동의 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


먼저 일반적인 회의공간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회의장에서 사람들을 기다려본 적이 있는가? 회의 참석자들을 생각해보면 누구는 여기 앉고 누구는 저기 앉고, 최고 높은 분은 어디 앉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회의장은 공간 그 자체에서부터 상석이 정해져 있다. 물컵이 유리컵이야 종이컵이냐, 컵 받침이 있느냐 없느냐 등만 보더라도 이미 상하가 구분되어있는 듯하다. 격식과 권위를 내려놓을 때 회의의 분위기는 자유로워진다. 


공간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아무리 장군이라 해도 회의에 늦어 입구 근처의 빈자리에 앉았고 우연히 그 사람의 뒤에 커피포트가 놓여 있다면, 회의 내내 커피 시중은 장군의 몫이 된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형식의 파괴(Informality)이다. 거추장스러운 형식의 파괴는 창조경제·창조경영의 환경에서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러한 형식의 파괴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전통적으로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어른에 대한 존경을 강조하는 우리의 정신적 유산은 기업에서도 여전히 관료적이고 상명하복의 문화를 은근히 조장하는 상황이다. 많은 조직이 수평적 조직문화를 주창하고 있다. 필자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시기나 그 이전 세대보다 더 좋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문화의 변화는 가야 할 길이 멀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한 친구의 회사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회사의 회의장은 조금 특이했다. 우선 상석이 없었다. 최대한 원탁 테이블을 사용하고 있었고, 의자에 앉은 상대방과 떨어진 거리도 다소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로 작은 테이블을 사용하고 있었다. 의자도 조금 불편했다. 주변에는 여러 색상의 소파가 놓여 있었다. 의자가 불편한 이유는 오래 앉아서 이야기를 반복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고, 소파는 조금 멀리 떨어져서 회의의 상황을 바라보라는 뜻이라고 들려주었다. 뭔가 조화롭지 못한 다양한 색상은 오히려 관점의 다양성을 이해하자는 뜻이라고 한다. 회의장 하나에도 새로운 의미와 다양한 생각을 반영하고 있어서 무척이나 신선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순자』에는 “봉생마중 불부이직(蓬生麻中 不扶而直) 백사재날 여지구흑(白沙在涅 與之俱黑)”이라는 말이 있다. 옆으로 자라는 쑥도 삼 가운데서 자라나면 저절로 곧아지고, 흰 모래도 갯벌의 검은 흙 속에 있으면 검어진다는 뜻이다. 어떤 상황과 환경에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회사 신입이라도 내 자리 찾기는 어렵지 않다.



공간을 바꾸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 선진기업들이 업무 공간의 창의성 추구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대부분 격식을 차리지 않는 공간만을 표방하거나, 대부분은 보이는 것의 화려함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공간의 팬시화, 다양화에 그쳐서는 안 된다. 회의 공간도 표면적으로는 굉장히 감각적이지만, CEO나 담당 부서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지 실제 회의의 성격이나 조직원의 요구가 반영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경우도 많다. 회의 공간은 창발형 공간(Space of Emergence)이 되어야 한다. 관리와 통제의 끈을 놓고, 회의 참여자가 최대한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는 공간이 연출되어야 한다. 


회의 공간의 존재 이유는 더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합의·협의하고 좋은 결정을 실행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 하는 것이다. 이 목적에 방해될 말한 요소들은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필자가 컨설팅을 진행한 사례를 중심으로 어떻게 변화를 시도했는지 이야기하려 한다. 


첫째, 보유 회의공간을 목록으로 작성한다. 이때 순수 회의 공간인지 누군가의 집무실을 필요한 경우 회의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인지 확인한다. 각 회의 공간에 대해 1주일 정도 실제 활용 시간을 조사하여 1일 공간 활용도를 확인한다. 이때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직급이나 부서도 체크 해두면 좋다. 회의장을 위와 같은 방식으로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유휴공간의 발생빈도를 확인할 수 있으며 적절한 활용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임원들만을 위해서 별도로 마련해둔 회의장의 경우 활용 빈도가 매우 낮은 경우가 많다. 누구든지 필요에 따라 예약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회의장 내에 격식을 상징하는 도구를 제거하라. 높은 의자나, 별도의 테이블, 각각의 직급/직위를 상징할 수 있는 명패 등을 특별한 행사가 아닌 경우는 회의장에 없는 것이 좋다. 회의는 누가 더 높고 낮은지를 확인하는 자리가 아닌 좋은 생각과 아이디어를 나누는 자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테이블과 의자 등은 편안함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며 움직이기 편하도록 가벼우면서도 다양한 배치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좋다. 필자는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는 모듈식 테이블을 권장한다.


셋째, 상석을 없애고 조금 더 자연스러워질 수 있는 회의 공간을 만들어라. 스탠딩 회의 공간 같은 경우 시간 단축도 되고 그러다 보니 내용에 충실해질 수 있다. 높낮이가 조절되는 회의 책상도 있으니 회의장 내 비치를 검토해보기 바란다. 한실 회의 공간(좌식 테이블)이나 맨발로 들어가는 회의 공간도 좋다. 아니면 방석을 깔고 그냥 편안하게 앉아서 하는 회의도 의외의 신선함이 있다. 회의 공간에 격식을 제거할 때 회의 참가자들은 좀 더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된다.


정보통신의 산 역사가 담긴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PARC)에는 전쟁의 방(War Room)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는 방음시설이 되어 있으며 편안한 의자가 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평소에 하지 못하는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마련된 공간이다. 이 방에서 지켜야 할 대화의 원칙을 제도적으로 정하고 안 지키면 퇴장되고 이후에도 공간을 활용할 수 없게 한다고 한다. 흥미 있는 점은 먼저 들어왔던 팀이 의논했던 내용을 벽에다가 그냥 막 낙서처럼 적어놓는 것이다. 이는 다음 팀이 들어와서 이야기하다가 앞서 회의한 팀이 적어놓은 내용을 보고 아이디어를 덧붙여서 키워나가기 위함이다. PARC는 이를 창의적 절도라 부른다. 이 말은 최초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누가 처음인가’가 아니라 ‘누가 최종적으로 쓸 만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고, 먼저 실행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뜻이 담겨있다.




필자가 컨설팅했던 회사의 경우 맨발로 들어가는 회의장을 마련하였는데 처음에는 불편하게 생각하는 구성원들이 있었으나 신발을 벗고 나니 좀 더 자유로운 느낌이라서 편안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회의 장소에 테이블을 회의 형태 및 참여규모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회의장을 확보하는 것도 좋다. 


넷째, 회의장 안팎으로 짧은 문구의 명언을 걸어두어 생각을 자극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언어가 주는 긍정적 영향이 있다. 예를 들어 회의장 앞에 ‘이곳은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견해를 말할 수 있는 곳입니다.’,‘당신에게 타인의 의견을 막을 권리가 없습니다.’와 같은 문구를 회의장에 입실하는 사람들이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에 비치하면 좋다. 


일례로 구글은 직원들이 더 건강한 식사습관을 기르도록 하려고 구내식당에서 접시를 집으려면 ‘큰 접시를 이용하는 사람일수록 음식을 많이 먹는다.’는 경고문을 보게 했다. 이렇게 간단한 변화를 줬더니 작은 접시를 이용하는 사람의 비율이 50%나 증가했다. 


회의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 있고 리더는 리더로서,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는 퍼실리테이터로서, 참가자는 참가자로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이런 원칙들을 회장 안에 미리 적어두거나 포스터 등으로 만들어 비치하면 좋다. 추가로 인트라넷 등의 메인 화면에 각자의 역할에 맞춰서 노출을 시켜주면 좋다. 



[참고] 참여형 공간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것들



IFA의 그룹 퍼실리테이션 핸드북(The IAF Handbook of Group Facilitation)에 실린 글 중에 참여의 건축(The Architecture of Participation)이라는 글은 공간을 기획할 때 매우 유용하다. 몇 가지 부분만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다.

 

1. 트인 공간, 기둥이 없고, 바닥이 평평한 공간이 좋다. 다양한 좌석 배치(주로 벽을 향하여 반원)가 가능해야 하며, 사각형 공간이 가장 유용한 배치를 할 수 있다. 크기는 6~10명일 때는 5m × 5m가 25~30명일 때는 10m × 10m가 적정하다.


2. 방해요소가 최소인 벽면을 확보되면 좋다. 크고, 평평하고, 연속적인 면으로 높이는 최소 2.5m가 좋다. 20장의 전지(플립차트)를 두 줄로 붙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크기의 벽면이 확보되면 좋다.


3. 창문이 있는 것이 좋은데 ‘작업 벽’과 반대편에 있으면 좋다.


4. 곳곳에 기본 밝기를 유지할 수 있는 인공조명을 두되 벽면에 중점을 두는 것이 좋다. 밝기 등을 변경할 수 있으면 좋으나 벽면의 밝기는 일정한 것이 좋다.



[참고] 회의장 배치 방법




매거진의 이전글 회의의 양을 줄이자. 가짜 회의는 싹부터 없애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