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회의 만들기_20
회의, 원래 이렇게 무서운가요
이스라엘은 극대화된 효율을 추구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학교에서나 집에서 또는 군대에서도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주장하는 것을 올바른 가치 기준이라고 배운다. 우리나라의 신입사원이 상사의 눈치를 살필 때, 그들은 서슴없이 “당신이 나에게 지시를 내리는 이유를 대라”고 따져 물을 만큼 당당하다.
우리에게는 이런 문화가 있을까? 필자는 신입사원 시절을 기획팀에서 보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장 주관 회의에 참석하는 일이 많았다. 회의는 조용했고, 진지했으며, 엄숙하기까지 했다. 특히, 회의가 시작되기 전의 그 긴장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회의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도 가슴은 서늘하였고, 온 신경은 팽팽하게 조여오는 듯했다. 대부분의 회의는 사장님이 입장해 시작되고, 발표하고, 혼내고, 지시하는 것으로 끝났다. 신입사원이었기 때문에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회의를 왜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회의를 참관해보면 참 엄숙하다. 왠지 여기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가득했다. 한마디 말에도 치밀하게 준비하여 말하고, 정리하여 말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 다음에 말해야 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용기를 내야 이런 각본을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위기가 먼저다
우리 주변에는 훌륭한 퍼실레이터가 많다. 이분들을 만나보면 퍼실리테이션 기법만 도입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 말을 한다. “리더가 문제가 아닐까요?”라고 얘기하면 그래서 리더부터 퍼실리테이션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다시 얘기한다.
필자는 한 회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회의를 도구와 기법 하나만으로 완벽히 바꿀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퍼실리테이션은 훌륭한 회의 도구임이 분명하다. 필자 또한 퍼실리테이터의 역할 명확화와 퍼실리테이션의 적극적 활용을 강조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단순히 기법을 변화시킨다고 해서 회의가 바뀐다고 말하는 것은 비약이 심하다. 회의를 촉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그 전에 중요하게 만들어야 할 것은 문화이다. 이를 필자는 ‘용기를 내지 않고도 말할 수 있는 문화’라고 표현한다.
회의는 하나의 목적지로 나아가기 위해 논의하는 건설적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다. 그러나 회의는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방해하고, 사람들의 가장 나쁜 인격적인 속성을 드러내는 아주 특별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인 경우도 많다. 필자는 회의 중 훌륭한 생각들이 짓밟히고 이기심이 넘쳐흐르고 시간이 낭비되는 것을 자주 보았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라지만 회의실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끊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사이다. 이들은 고집이 세고 때로는 독단적이며 심지어 독설가인 경우도 많다. 그들의 부하 직원은 고집이 센 그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며 결코 대립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과 정보의 틀 안에서 사고할 수밖에 없다. 선택적으로 지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재해석한다. 시대와 환경이 변하고 있는 현실에서 과거의 성공과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방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기까지 한다. 이런 사람들이 주도하는 회의가 잦아지면 구성원들은 더욱 자신의 의견을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의견을 내더라도 상사가 생각하는 틀에 맞춰서 제시하므로 결국 다양한 의견은 마음속 깊이 감춰진다.
회의에 참석했다면 반드시 발언해야 한다. 앞에서 회의 참석자에게 발언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상사가 앉아 있는 곳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말한다. 발언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이니 한마디라도 거들라고 독려한다. 회의에서의 책임은 모두 1/N이니 당연히 자신의 주장이나 견해를 표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토의 기법의 하나인 라운드 로빈 프로세스(round robin process)를 활용하여 하나의 질문에 대해 모든 참가자가 돌아가면서 각자 생각하는 바를 공유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법을 사용한다고 해서 '용기'가 샘솟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결코 참가자의 정신이나 기법의 문제가 아니다. 분위기의 문제이다. 회의를 개선하고 싶다면 스킬의 영역을 넘어 문화와 리더십 차원에서 검토해야 한다. 문화와 리더십을 먼저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거듭하여 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분위기에 대한 책임은 리더에게 있다. 어떤 회의가 결론도 없고, 의견 교환도 없고, 참가자도 주관자(의장)도 모두 만족스럽지 않게 끝난다면 그것은 분위기 연출자로서 리더의 책임이 가장 크다. 용기를 내지 않아도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리더가 해야 할 일이 많다. 좋은 회의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부터 스스로 질문부터 가져야 한다.
성공하는 기업은 숫자부터 다르다
2005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심리학과의 바버라 프레드릭슨(Barbara L. Fredrickson)과 마셜 로사다(Marcial F. Losada) 교수팀은 60여 개 기업의 회의록에 나온 단어를 조사한 결과 성장하는 기업은 쇠퇴하는 기업보다 긍정적인 발언이 많았으며, 이러한 성장과 쇠퇴를 가르는 '한계 긍정률(critical positivity ratio)'이 2.9013:1이라고 밝혔다. 이를 '로사다 비율(Losada ratio)'이라고 한다. 참고로 실적이 가장 좋은 회사의 경우 긍정적인 발언이 6:1을 차지했다고 한다. 따라서 리더는 비난, 비판, 부정이 아닌 인정, 칭찬, 긍정으로 가득 찬 분위기 연출을 통해 더욱 창조적 회의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한, 지적하고 싶은 욕구와 지침을 내리고 싶은 욕구,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싶은 욕구를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요즘 상사들은 회의실에서 직원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규칙을 알고 있고 지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기에 서운한 마음이 앞서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도 저 친구들은 왜 아무 생각도 없이 저렇게 앉아서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다시 (리더 또는 상사인) 당신에게 물어보자. 혹시 상대방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듣는 것이 아니라 그냥 끝까지 들으며 책임을 다했다고 스스로 자위하는 것은 아닌가. 말을 끝까지 듣는 것과 온전히 듣는 것은 다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나의 방식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의견을 제안하는지 의도를 파악하고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서 개방형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일상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해 상호 이해와 교류를 하는 것이 우선이다. 사람들은 조직과 일체감을 느낄 때, 의견을 들어줄 사람들과 관계가 좋을 때, 조직에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낄 때, 상사 중에 행동을 취할 사람이 있다고 생각될 때, 어떤 이슈를 알리는 데 자신의 에너지를 투자할 정도로 관심이 많을 때 소신을 밝힐 확률이 높다. 사람들이 변화의 필요성이나 현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점을 발견해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다면 기업은 성장하고 번영하기 어렵다. 그래서 회의를 바꾸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중요한 만큼 어렵고 고된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최고경영자부터 일선 담당자까지 모두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
지금 당장 불필요한 회의를 찾아보고, 프로세스에 맞추어 회의를 진행하고, 용기를 내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말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참고] 레드팀(Red Team) 제도를 활용해보자
회의 참가자의 의견 제시는 당연한 권한이기도 하지만 아주 중요한 책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발언을 하기 위해서는 특히 상사의 의견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들이 효과적으로 발언할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여 자유로운 발언을 유도할 수 있다. 바로 레드팀 제도의 도입이다.
레드팀 제도는 군대에서 유래되었다. 특정 작전을 수행하기 전 적군의 입장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아군을 공격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취약점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한 군사 훈련 프로그램이다. 해외의 선진 조직에서는 레드팀이 군대, 정보기관, 언론사, 사기업, 공공기관을 가리지 않고 보편화 되어 있다.
회의에서는 서로 듣기 좋은 이른바 ‘해피토크’나 주무부서의 의견을 생각 없이 따르는 ‘폭포효과’를 지양해야 한다. 레드팀 제도를 도입할 경우, 별다른 반론 없이 당연하게 넘어가던 안건들이 격렬한 토론 주제가 되기 시작한다. 레드팀은 팀의 실행계획을 비판하거나 무산시키는 임무를 부여받은 팀으로 두 가지 기본적인 형태가 있다. 주어진 임무에서 경쟁자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본래 팀을 이기려고 노력하는 형태와 악마의 대변인과 똑같은 지침을 따르면서 제안이나 기획에서 생길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공격하는 형태이다.
레드팀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먼저 레드팀 제도의 긍정적 취지를 회의 참석자 모두 공감할 수 있도록 사전에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공감되었다면 레드팀의 멤버를 선정하고 레드팀에 회의 자료를 사전에 제공하여 검토하고 논리적인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반대를 위한 반대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레드팀 멤버를 소개하고 회의에서 반대의 관점에 설 수 있음을 미리 공지하면 좋다. 상징적으로 레드팀 멤버 앞에는 빨간 깃발을 꽂아두면 좋다. 그러면 회의가 끝나고도 서로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감정적 갈등을 만들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레드팀 제도를 도입할 때는 계획의 취약한 부분 및 실수를 찾아낼 동기를 부여하고,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경우 확실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면 레드팀은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참고] 회의문화 혁신을 위한 전략과제
필자는 고객사와의 컨설팅을 바탕으로 회의문화를 혁신하기 위해 12개의 전략과제를 도출하였다. 시급성과 전략적 중요성을 중심으로 1순위 과제 5개, 2순위 과제 2개, 나머지 5개 과제로 구분하였다. 회의문화를 혁신하는 활동은 주무 부서를 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부서들이 참여해야 한다. 기획전문가, 내부홍보전문가, 조직문화전문가, 인사전문가, 교육전문가, 총무 전문가 등 다양한 사람들의 지지와 적극적인 참여가 없다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또한, 이들이 주축이 되어 프로젝트 초반부터 회의문화 혁신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필자의 경우, 프로젝트 초반에게는 개별적인 접촉을 통해 프로젝트 필요성에 대해 설득했고, 후반부에는 Intensive Day라 명명하여 핵심 담당자들이 모여서 팀 단위 실행 계획을 함께 수립하고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