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쓰기 플랫폼들의 역사

퇴사를 생각하는 마음, 퇴사를 버티는 힘, 숨은 웃음 찾기 5

by 미스트랄

나는 원래 글 쓰며 버티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하다.


20대에는 천리안(연식이 짐작되는 플랫폼이다)에 생활 유머를 썼다.

천리안에서 나중에 내 방도 만들어줘서 좀 더 폼나게 쓸 수 있었다.

천리안에서 작가님! 하고 보내주는 추석선물을 받아본 적도 있었다.

나보다 조회수도 높고 더 잘 쓰는 사람 정말 많았다.

난 아무래도 크게 웃기는 편은 못되었다. 그래도 조곤조곤 웃기는 편이라 방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이 먹으면서 글쓰기가 뜸해졌고, 천리안이 점점 더 힘을 잃어갔다.

그 때 프리챌과 네띠앙이 반짝 유행을 탔는데(연식 확정),

네띠앙에 내 홈페이지를 스스로 만들어보는 툴킷이 잘 나와 있어서 하나 후다닥 만들었다.

거기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 놀았었다. 천리안에서 만나서 친구가 된 사람들이 많았고,

원래 중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사람들도 있었다.

나중에 동생이 자라나서 제 친구들도 데리고 오면서 제법 큰 커뮤니티가 됐다.

함께 동강 래프팅을 가기도 하고, 명동의 술집 사장님이 멤버가 됐을 땐 거기서 모이기도 했다.

인터넷에 기반해서 자생적으로 키워나간 동호회 활동은 20대를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다가 20대 후반에 더 나이 들기 전에, 라는 마음으로 모아둔 돈을 챙겨서 혈혈단신 유학을 떠났다.

지치고 외로운 타국 생활에서 나를 버틸 건 오직 글쓰기 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웃긴 게, 내가 크고 작은 가방을 일곱 개를 갖고 떠났는데, 그 중 하나에 내 모니터를 소중히 모셔 갔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컴퓨터로 글 쓰는 생활이 소중하면, 쓰던 모니터라야 한다고 고집했던 걸까. 젊은 날의 나는 오십 줄에 들어선 지금의 내가 보면 많이 웃기고 살짝 이상한 인격체로 여겨질 때가 많다. ㅎㅎㅎ

유학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대학원에 들어갈 원서 준비를 하고 영어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합격 발표를 기다리기 전에 식당에서 일하는 시절에, 해커스에서 글을 썼다. 이 시절 외로운 유학생들은 다 거기 모여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녹였다. 몇몇은 실제로 만나기도 했고, 만나지 않고 썸을 타기도 했다. (이거 하던 머리 좋은 애들이 로맨스 스캠 개발한 거 아닌가 몰라)

유학 생활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이게 되는 장면이 있고 그런 나에게 조금 더 솔직해져도 좋겠다. 그렇게 시작한 사랑이라고 해도 그 사랑 자체가 틀린 건 아니다. 이런 내용의 글을 썼을 땐, 조회수가 단 이틀에 3천 회를 돌파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유학생이 많았고, 이렇게 공감을 얻을 수도 있다니, 하고 나도 놀랬었다. 천리안 하던 몇 분이 내가 아이디를 바꾸었는데도 글맵시만 보고 나를 알아보기도 했다.


해커스에서도 나중에 작가들의 전자책을 만들어서 아이콘으로 만들어 주었는데, 내가 대학원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즈음 내가 스스로 전자책을 없애주십사 해커스에 부탁했고 해커스에서도 어렵지 않게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나는 성장하고 있고 글은 어리고 유치한 나를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는 자신과의 다짐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했다. 글은 잠시 멈추는 걸로. 그래서 이 때 이후 글쓰기의 빈도수가 잦아지게 됐다.


그렇게 30대에는 네이버 블로그로 옮겨서 소소하게 글을 쓰게 됐다. 몇 번 폭탄글을 맛 보고 놀란 적도 있었다. 한 번은 영화 '페어 러브'를 리뷰했는데, 네이버 메인에 소개되더니 하루에 33만이 블로그를 방문했다. 소도시 인구 전체가 몰려온 것이었다. 네이버의 위력을 맛보았다. (이 글은 지금 비공개 처리되어 있다. 언제부턴가 방문 자체가 다 부담스러워져서)


글쓰기는 내겐 숨쉬기와 같은 것이라서 나는 결국 뭐라도 쓰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 쓰는 게 아닐진대, 나는 글을 쓰고 남의 글을 읽고 우리의 글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게 즐거웠다. 그리고 거기서 글 밖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얻었다.

글로 하는 치료 - bibliotheraphy - 살면서 저절로 터득한 셈이라고나 할까.

얼결에 써보니 숨쉬기 좋길래 더 써보고, 그러니 몸도 편안해지길래 더 써 보고, 조금 더 써보니 재미도 있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배운 경우라고 하겠다.


2011년에는 학위를 얻고 취직이 바로되면서 귀국했다. 그리고 그 즈음 유행이 시작된 페이스북으로 옮겼다.

수익이나 이웃, 이런 것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그냥 내가 편하게 쓸 수 있는 공간으로 옮겼다.

더 짧은 글을 쓸 수 있어서 부담이 적었다. 그리고 원래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연대를 강화해서 다시 시작한 한국 생활을 잘해 내야겠다 이 정도만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서 글의 양 자체가 줄어들었고, 가끔 블로그에 쓰는 글들은 비공개로 하기 시작했다.

직장 생활은 힘들었고, 다시 돌아온 한국은 타국 같았다.

글 쓸 시간도, 에너지도 없었다. 감성은 커녕 감정도 메말랐다.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고나니 글도, 일도 세상에 없었다. 이것은 첨 맛보는 노동의 통각.


그 후 복직했다가 몸이 크게 나빠져서 두 번째 육아휴직을 했을 때엔 중국에 살면서 오마이뉴스에도 글을 써 봤다. 글 쓰는 것도 (당연히) 재밌었고 원고료 받는 것도 쏠쏠했다. 그런데 내 큰 문제는 꾸준히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일단 육아에 모든 생활의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남는 시간에 글을 써야 했는데, 그러자니 체력과 시간이 부족했다. 그리고 의뢰 받는 글을 잘 써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글에도 고객이 있고 그 취향에 맞춰야 할 때가 제법 되는데(식당에서 맛있는 메뉴를 개발하듯) 내가 그 능력이 몹시 부족했다. 어느 날 한 번 꽂히면 잘 쓸 수 있다가, 그 꽂힘신이 지나가시면 또 못 쓰게 되고, 글솜씨가 들쑥날쑥한 게 문제였다. 식당 영업에 비유하자면, 내가 식구들에게 맛있는 요리 한 그릇은 가끔 만들 수 있었으나 그 음식을 늘 일정한 맛으로 만들어서 손님들에게 꾸준히 제공하는 능력은 없었던 것이다.


음식 잘 만든다고 다 식당 하는 게 아니고, 글 잘 쓴다고 다 작가 되는 게 아닌 것이다.

과거 내가 여기저기 역사적인 플랫폼들을 전전하면서 글을 써 온 것은, 아마도 이 명제를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싶다.

오늘 읽은 책에 보니 9년 동안 수영했는데 8년 간 그냥 했고 9년 째에야 발목을 발레리나처럼 써야 속도가 난다는 것을 깨닫고 엄청난 구력이 붙기 시작했다, 라는 내용이 있었다. 나의 글쓰기 경험도 이와 비슷하여, 나도 플랫폼을 전전하며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써 보고 나서야, 계속해서 일정하게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가를 깨닫게 된 셈이었다.


그러나 지난 내 역사에서 늘 그랬듯이, 나는 삶이 고달플 때마다 글을 쓰고 싶었다.

글을 써야 내가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본능으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브런치"에서(이게 또 요즘 한국에서 대세니까?! 내 플랫폼 전전 역사를 보시면 내가 대세 플랫폼을 보는 눈이 있다는 건 확실하다. 거기서 장기적으로 오래 못 버텨서 그렇지 ㅎㅎㅎ ) "꾸준히" 글 써 보려고 한다.


주제를 가능하면 "이븐"하게 맞춰보되, 잘 안 되면 그 날 그 날 꽂히는 대로 "주방장 추천 메뉴"라도 써 볼 생각이다. 목표는 빠지지 않고 점심 시간에 글을 발행하는 것. 단 연차 쓰는 날과 주말은 쉴 것이다.


이번 주 5일을 만근했고, 브런치에 만필했다.

그래서 내가 이런 각오로 브런치에 쓰기 시작했다는 것을 밝혀본다.

(오늘은 정해진 루트대로 여유롭게 출근해서 에너지도 있는 편이라 길게 써 보았다!)


모두 씐나는 불금 되시길! 월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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