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 말고 휴직
몇 달 전 브런치에서 걸핏하면 사직을 주제로 노래 부를 때, 이럴 거면 왜 사직해 보려 들지 않는가 하는 자문을 하게 됐다. 그래서 좀 더 깊이 생각해 본 후 사직을 결심하게 됐고, 드디어 실행했다. 6월 초에 사직서를 내고 한 달 후에 정말 회사를 떠나기를 청했으나, 이런저런 논의가 오고간 후에 결국 나는 휴직을 하게 됐다.
사직이 반려된 데에는 아주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서 한번에 설명하기 불가능하다. 다만 나 말고도 관련자들이 여러 명이었고 그들의 입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는 것 정도는 말해 볼만한 것 같다. 기관 역사상 몇 명 없었을 JS(진상)으로 남길 각오한다면 사직까지 가 볼 수도 있었겠지만, 다행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겐 쓸 수 있는 휴직이 남아 있었고 그래서 나는 내가 속한 사회에서 좀 덜 잡음을 일으키고, 사람들이 왜 저래? 하는 의문을 덜 가질 수 있는 쪽을 택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서른다섯 살 정도였으면 아마 끝까지 갔을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곧 귀가 순해지기로(耳顺)인생이 예약되어 있다. 나이의 미덕에 맞게 살도록 노력해 볼만 하다.
휴직은 확실히 사직보다는 절차가 간소했고 처리 속도도 빨랐다. 사직 예정일로부터 열흘 정도 지났을 때 휴직이 결정됐다. 사직했을 때의 인생길을 그려뒀던 지도를 전부 수정해야 했고, 그래서인지 잠이 잘 오질 않았다. 집안의 묵은 먼지들을 닦고 오래된 물건들을 버리고 정리했다. 몇몇은 당근을 했고 어떤 가구는 재배치를 했다. 퇴직했더라면 했을 일을 미루지 말고 조금 당겨서 해 보기로 맘 먹었다. 아들이 방학이라 집에 있다보니 이것저것 챙겨 줄 게 많아서 집안일이 그다지 속도가 안 나긴 했다. 그러나 퇴직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한 가지가 아들을 좀 더 알차게 돌봐주고 싶어서였던 만큼 아들 돌봄의 강도가 강해진 것도 퇴직 이후 시나리오에 가깝긴 했다.
엄마들은 대부분 자녀들이 어렸을 때 육아에 힘 쏟으며 어서 보육의 시간이 끝나길 기다린다. 그러다 초등학교 고학년 어느 시점에 교육의 시간이 열리는 걸 보고 기함을 한다. 중학교 1학년은 교육의 시간 중 꽃을 피우기 위해 꽃가루를 모아날리는 시기라 할만 하다. 이 화분 과정이 잘 이뤄져야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대학가기 위한 공부 뿐만 아니라 다 커서도 자기가 원하는 공부는 뭐든 덤벼서 해볼 수 있는 공부 할 줄 아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나는 회사일을 하고 지쳐서 귀가했을 때 아들이 이 화분 과정이 잘 안 되어서 혼자 쩔쩔 매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 속상했다. 기운이 없어서 도와줄 수도 없고 아들은 홀로 노력해도 성과가 안 나고. 둘 다 뜻이 있고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데도 내 몸과 정신이 내 뜻대로 안 굴러가는 답답한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퇴직하고 싶었다. 한 번 더 아들에게 내 에너지를 몰아주어 아들이 성숙한 나무로 자라서 제 인생 화려하게 꽃 피울 수 있도록. 내가 임학을 평생 공부해 와봤자, 내 아들 하나 꽃 피우지 못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는 마음이었다. 나무를 다정하게 키워야 산이 푸르러진다. 나는 아들을 다정하게 키워서 알찬 일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싶다. 이런 일꾼들이 많다면 우리 사회가 푸르러질 것이다.
이렇게 나는 아들의 방학 중간에 휴직을 시작하게 됐다. 날은 폭염-폭우-폭염으로 이어지는 폭폭한 여름이고. 당장 중고차부터 하나 구입했다. 그간 경기-서울 간을 출퇴근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해 왔던지라 차가 필요 없었지만, 이제부터는 이 교육의 동네를 누비며 아들을 데리고 다닐 필요가 있었다. 아들의 오전 학원 스케줄에 맞춰서 알람을 울리며 일어났고, 아들을 학원에 바래다주고 나서 나는 근처 커피숍에 앉아서 내 일을 하게 됐다. 내 전공분야를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받은 휴직이라 안식년의 개념으로 평소 하고 싶었던 공부들을 심도 깊게 해 보고, 책도 실컷 보기로 맘 먹었다. 그리고 브런치나 오마이뉴스 등에 글도 쓰고 싶은 만큼 써 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평소 쓰던 수필형 글 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글도 많이 써 보기로 결심했다. 이 모든 걸 다하고자 한다면 휴직 시간이 결코 충분하지 않았다. 사직하면 천천히 공부하고 글 쓸 생각이었는데, 휴직이 되면서 양껏 해야 한다로 노선이 바뀌었다.
휴직했지만 여전히 아침 9시에 맞춰서 살고 있다. 그래도 재택 근무인 셈이라 오전 8시 반에 일어날 수 있는 걸로 이미 행복하다. 일하러 다닐 때엔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야 해서 괴로웠다. 그래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니며 중간에 부족한 잠을 보충할 수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지금은 차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서 기쁘지만, 그만큼 저녁 늦게까지 이 일 저 일 하게 된다. 배달 음식으로 때우곤 하던 저녁을 차려 먹을 수 있게 된 건 기쁘지만, 그만큼 설거지는 늘어났고 보통 8시 경에 일거리로 돌아오곤 하게 됐다.
결국 휴직은 그 일을 쉰다는 것이지 모든 일을 쉴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 일을 쉬는 대신 이 일 저 일이 새롭게 생겨난다. 그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던 이 일(아들 돌봄)과 저 일(연구와 글쓰기)이 이젠 우리 차례인가 하고 머리를 들이미는 것이다.
뭐가 됐든지 간에 일단 새로운 시간을 살아보기로 한다. 그 일을 멈추고 이 일과 저 일을 하며.
벌써 3일 째에 접어 들고 있고, 나는 이미 피곤하다. 오늘은 더 일찍 자도록 해봐야 겠다.
가을이 오면 좀 쉬기로 하고, 곧 다가올 쉰 살 생일을 정신 똑똑히 차리고 맞아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