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건조한 휴직

그토록 읽고 싶었던 소설을 읽는 시간

by 미스트랄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하고 싶은 일들이 여러 가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일을 그만두는 데에는 실패했고 멈추는 정도까지만 할 수 있었다.

언젠가 약속된 날엔 다시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막상 휴직하고나니 집안에 산적한 일들이 쓰나미처럼 덮쳐 왔다.

돈을 버는 일만, 일로 대접하기 쉬운데, 사실 돈을 버는 일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뤄지는 노동들도 일이다.

이를 테면 가사노동은 먹고자고사는 일을 책임지는 일이고, 쉬고노는 일도 휴식과는 다른 개념으로 전념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쉰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그대로 모든 것을 멈춰도 생활이 해결되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휴직은 휴식과 아주 다르다. 휴직은 하던 일을 멈춘다는 뜻에 불과하다.

먹고사는 일을 하느라 신경 쓰지 못하고 미뤄놓았던 일들이, 이제는 내 차례인가 하고 슬금슬금 집안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오래된 책들을 버리거나, 위탁하거나, 팔았다. 책장의 공간을 넓혔고 회사에서 가져온 서류들을 넣었다.

14년을 회사에 적을 둔 동안 몇 번 휴직하면서도 내 물건을 다 빼내서 정리해 버린 적이 없었다.

나는 내게 배당된 캐비넷에 내 물건을 차곡차곡 넣어두었고 복직할 때마다 끄집어내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시작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회사에서 내 흔적을 지워버렸다. 다시 돌아간대도 물건을 쌓진 않을 것이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고나면 원래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다.


몇 개 소가구를 새로 재배치했다. 베란다에 있던 키 큰 바테이블을 식당에 놓고 서서 쓰는 노트북 작업대로 쓰기 시작했다. 긴 바테이블은 간단하게 밥을 먹기도 좋고 요리할 때에도 아일랜드처럼 쓸 수 있어 좋다. 되는 대로 물건을 쌓아놓았던 부엌 철제랙을 정리하고 거기 빈 책장을 넣어서 새로 꾸몄다. 굴러다니던 약품과 내 가방들을 넣었다. 이제 외출이 좀 더 단정하고 단출해졌다. 렉은 서재방에 넣어서 거기서 굴러다니던 물건들을 다 올렸다. 이제 서재방 땅바닥에 물건들이 없다. 일단 휴직을 해서 눈에 띄게 좋은 것들이 생겼다. 눈에 띄게 노력을 기울인 게 생겼다.


금요일에 임상 연구에 참여했다. 고지혈과 고혈압이 있는 사람에게 추가로 투약이 없는 임상 실험에 참가할 기회를 준다고 해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해 보기로 했다. 의학 실험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많이 궁금했다. 장내미생물에 관한 연구라고 해서 내가 좋은 일에 참여하게 되는 것 같아서 좋기도 했다. 그 연구와 다음 일정 사이에 시간이 남아서 강남구 도서관에 들렀다. 거기서 오랫동안 읽고 싶어했던 (그러나 소설 읽을 시간 따윈 없어서 꿈도 못 꾸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읽었다. 읽다가 시간이 모자라서 책을 두고 나와야 했다. 대출할까 생각도 했지만 다시 돌아오는 게 더 힘들 거 같아서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 찾아봐야 겠다고 생각하고 뒷부분의 이야기가 궁금했지만 참고 나왔다.


절묘하게도 주인공이 평생 마음에 품어왔던 이상향의 첫사랑 여인이 자기가 운영하는 바에 신기루처럼 나타났는데, 딱 거기서 이야기를 끊어야 해서 뒤가 많이 궁금해졌다. 그녀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그들은 바람을 피우게 되겠지? 그의 가정은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그의 아내는 이게 무슨 변인가? 세속적인 궁금증들도 연이어졌다. 문학적으로 보자면 주인공 남자는 꼭 '상실의 시대'의 그 남자가 여차저차해서 결혼을 얼결에 해낸 것 같은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오늘 아들이 학원 간 동안 나는 동네 도서관에 다녀왔다. 근처에 있는 여러 개의 도서관 중 비치되어 있는 곳이 있었다. 하루키가 워낙 인기 있다보니 딱 한 권만 빼고 다 대출 중이었다. 나는 6주 간 기브스를 하고 있던 발을 지난 주말부터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되었는데, 내 발로 자전거를 탈 수 있다니 이 더위까지 거슬리지 않을만큼 기뻤다. 6주 간 잃어버린 근육량이 상당해서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외려 기뻤다.


일본소설 서가에서 책을 찾아서 계속 읽었다. 그들은 당연히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하루키 소설이 으레 그렇듯 첨부터 육체적으로 마구 부딪히지는 않았다. 하루키 소설에 나오는 남자들의 특징은 뭐랄까 사랑이라고 생각되면 육체관계까지 진행하는 데에 뜸을 들이는 경향이 있다. 마치 그게 진짜 사랑과 그저 연애를 구분이라도 짓는다는 듯이. 그래봤자 가려는 목표 지점은 다 하나일 텐데 말이다. 청년 때 읽었던 '상실의 시대'가 주었던 아련함은 중년에 이르러 쳇! 으로 바뀌고 말았다.


주인공은 마치 하루키 자신인 것처럼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었고, 탄탄한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루키가 자신의 내면을 어느 정도 투영하지 않고서는 글을 쓰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추천하는 대로 썼다고 굳이 변명을 작품 외에서 늘어놓는 것은 그래도 가정생활을 하고 있으니 기본 장치를 하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주인공 남자가 그렇듯이 거의 완벽한 가정생활에 작품 하나 더 발표해서 생채기를 내냔 말이다. 그렇다고 생각난 작품을 안 쓸 수도 없고, 작품이 안전하게 나오도록은 해야 겠고, 뭐 이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두 군데 도서관에 가서 이 책을 다 읽었다는 사실에 기뻤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10분 후 도서관이 문을 닫는다고 사서가 알려왔다.

오, 시간도 맞췄어.

나는 이 도서관에 또 오겠지만, 그래도 이 책을 보러 오는 건 아닐 테니 좋았다.

남은 10분 간 다음에 와서 볼만한 책들을 돌아 보았다.

농학 쪽 서가를 보았더니 최근에 내가 사서 보았던 '폭염 살인'이 두 권이나 꽂혀 있었다. 좋은 책이다.

시원한 곳에 살다가 우연히 만난 여자가 텍사스 사람이라 자발적으로 폭염 지역으로 이사했다는 위트가 너무 웃겼다. 학자들이 쓰면 지루할 수 있는데 기후 저널리스트가 쓰다보니 재밌는 표현들이 많이 나와서 지루함을 덜 수 있어서 좋았다.


주말에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다.

나는 주말에 늘 지쳐 있었고, 못다한 집안일을 하느라 바빴다.

휴직을 하고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도서관에 올 수 있게 되어서 기뻤다.

나중에 다시 일을 하러 돌아가더라도 주말에 도서관으로 나들이를 갈 것이다.

이런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돌아오는 길에 홈플러스에 들러서 간단히 장을 봐 왔다.

회사를 다닐 때엔 어쩔 수 없이 늘 배달을 시켰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맹렬하게 쿠폰을 붙이고 특가를 조사해서 내가 요리할 수 있는 시간까지 배달을 시켰다.

나와 식재료가 한꺼번에 집에 도착하고 나는 바로 요리에 돌입했다.

많이 살 수밖에 없다보니 남는 식재료들이 늘 있게 마련이었고, 냉장고에 파묻히게 되면 상해서 버리거나 하게 되기 일쑤였다.


휴직하고나서는 신선한 재료를 그 날 그 날 사서 먹고 싶었다. 오늘 처음 그 바람을 이뤘다.

몸을 움직여서 하고 싶던 일을 했다. 오늘 저녁에는 간단하고 맛있는 가정식을 먹어야 겠다.


특별할 것 없는 나의 건조한 휴직이 바야흐로 시작되려 하고 있다.

아들이 방학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가고 나면 본격적으로 나의 글쓰기가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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