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에서 한강까지, 가보고 싶었던 길을 자전거로
아침에 중1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일찍 잠실로 길을 나섰다.
어른 없이 놀이동산에 가 보는 게 처음이라 첫발부터 이미 어드벤처 입성이었다.
지하철 타는 일, 갈아타는 일, 내려서 놀이동산 찾는 일, 그 모든 과정이 아들과 친구들에게 모험 그 자체였을 것이다.
아침에 잠을 설치며 일어나서 아들을 든든하게 밥 먹이고 자리에 앉으니 할 일이 없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해보니 오전에 바쁘다고 했다.
도서관에 갈까, 자전거로 갈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날씨를 살펴보니 비가 쏟아지고 난 직후라 세상이 그다지 덥지 않았다. 25도.
몇 시간 후면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이 다시 푹푹 찌는 찜통 더위로 돌아간다고 예보가 나와 있었다.
좀 멀리 있는 중앙 도서관을 일부러 가 보기로 결심했다.
자전거 타기 딱 좋은 날씨네.
6주 간 기브스를 하다가 푼 지 일 주일 밖에 안 되어서 아직 조심해야 하는 게 힘들긴 했지만, 더 이상 가만히 꿍치고 있는 것은 못할 짓이었다. 어렵게 모아둔 근육을 도둑 맞는 느낌, 정말 싫었다.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선 후 북으로 갈까, 남으로 갈까 망설였다.
북으로 가야 도서관이 있었는데도 막상 선택의 순간에는 남쪽에 있을 그 어떤 미지의 거리들을 상상했다.
이 무궁무진한 상상의 나래를 펴는 무계획 인자를 MBTI에선 NP라 불렀다.
이게 F와 합쳐지면서 손댈 수 없이 폭주하는 NFP로 자가 발전하는 것이다.
그게 에너지를 밖으로 분출하는 외향형 E와 겹쳐지면서 손댈 수 없는 스파크로 변한 게 ENFP이다.
(저 MBTI 일반 강사 자격증 있어요.)
나는 그래서 스파크를 일으키며 자전거를 타고 북으로 향했다.
가다보니 오랫동안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궁금증이 고개를 쳐들었다.
성남에서 한강으로 가는 길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내가 지도에서 보았던 그 구간들은 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과연 한강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운동을 강제로 6주나 쉬어서 무릎이 아직 신선했다.
날이 최근 들어 가장 선선했다. 구름이 끼어서 햇빛이 덜 쏟아졌다. 근래 들어 얻을 수 있는 최상의 날씨였다.
무엇보다 휴직 중이어서 내일 출근하지 않아도 됐다. 오늘 무리할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래 오늘은 이 휴직을 자기재활 휴직이라 부르지. 그토록 원했던 몸놀림을 한 번 해 보는 걸로!
나는 그래서 22킬로 구간을 계속 달려가기로 결심했다.
오래 마음속에 품고 살았던 궁금증을 풀기 위해, 출발!
다만 무리하지 않기 위해 쉬고 싶다면 언제 어디서건 쉬겠다고 생각했다.
그늘 아래 있는 벤치라면 어디든 쉬어도 좋다는 방침을 세웠다.
야탑을 지나니까 인간의 흔적이 드물어지기 시작하며 태평에 접어 들었다.
그 곳을 지나고 나니 서울 외곽에 도착하기 전까지 끝없이 습지가 펼쳐졌다.
사람이 사는 구간에 있는 탄천에는 수달이 돌아왔다고 광고가 되어 있었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구간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없어지니 되려 더 많은 동물들이 몰려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제일 신기했던 것은, 얕은 개천에 새들이 발을 담그고 옹기종기 서 있는 모습이었다.
왜가리, 오리 할 것 없이 동네에 살고 있는 여러 새들이 다 얕은 개천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울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다들 멍하게 서 있기만 하는데 그 모습이 희한하고 웃겼다.
더위를 피하러 나온 사람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서 ㅎㅎㅎ 덥긴 덥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멈춰서 새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나도 한 번 멈추면 다시 달리는 게 정말 힘들어서...
게다가 땡볕에 멈추면 몇 초라도 너무 더워서...
다친 발도 다 안 나아서 행여 자전거에서 내리다가 더 다치면 안 되기에...
아쉽지만 그냥 통과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구간에서 크레인 하나가 홀로 땅을 파고 있었다.
멀리서 보니 스테고사우루스가 땅에 고개를 처박고 먹이를 찾는 것처럼 보였다.
운전자가 어디에 타고 있는지 보이지가 않아서, 정말 기계 혼자 움직이고 있나 하는 착각이 들었다.
흐린 하늘 위로 전투가기 여러 대 날아갔다.
직선으로 뻗은 자전거 도로에 나 하나만 달랑 달리고 있었고,
나와 반대 방향으로 전투기가 느리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여러 번 전투기를 올려다 보았는데, 어쩐지 조종사도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른 인생의 궤적을 살아가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처럼 우리는 공중과 땅을 교챠해서 조우했다.
반가워서 하마터면 손을 흔들뻔도 했는데 참았다. 손 흔들다가 자전거 도로에 얼굴 처박으면 큰 문제였다.
인가도 없는 곳에서 피를 철철 흘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오늘 멀리 가기로 한만큼 사고가 일어날 여지를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었다.
대신에 여러 번 비행기를 바라보고 웃어 주었다. 조종사의 미소를 볼 수 없는 게 안타까웠다.
6킬로미터 정도마다 세 번 쉬었는데, 물이 다 떨어졌다.
남은 구간은 그냥 입 꾹 다물고 달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너무 비장하게 가다가 길을 우회전하는 걸 이해못하고 한강 끝까지 갔더니 청담대교가 나왔다.
잠실한강공원에 가야 물이 있는 거였는데... 기운이 주욱 빠지려는 걸 다시 다잡고 왔던 길을 돌아가 루트를 조정했다.
이 악물고 목적지에 도달하니 총 25킬로를 달린 셈이 됐다.
중간에 느꼈던 갈증과 허기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해 마구마구 먹을 거리들을 사고 흡입했다.
편의점에서 3만원이 나오다니!
충분히 쉬고 다시 집으로 가기 위해 남쪽으로 출발했다.
이제 날이 뜨거워지고 있어서 가다가 못 갈까봐 걱정됐다.
중간에 자전거를 놓고 올 곳도 없을 뿐더러 공공교통으로 교환도 불가능했다. 무조건 가는 수밖에 없다.
열 번 쉬면서 가겠다고 결심했는데, 결과적으로는 평균 4킬로미터마다 다섯 번만 쉬었다. 그래도 잘한 셈이었다.
세 번째 휴식 장소에서는 결국 견디질 못하고 벤치에 드러누웠다.
그 곳은 다리 밑이 아니고 차양 밑에 불과해서 좀 더웠고, 그래서인가 아무도 없었다.
몸을 눕히니 잠이 저절로 왔다. 이대로 조금만 자자. 자전거가 없어지면 안 될 텐데... 집에 못 가는데... 하면서 스르르륵 잤다. 아마 입도 벌리고 잤을 것이다. 발과 다리를 햇볕이 간지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10분에서 15분 정도 자다가 이러다가 퍼지면 집에 못 간다는 생각에 또 벌떡 일어났다.
그거 좀 잤다고 몸이 한결 개운해져 있었다. 다시 힘을 내어 페달을 밟을 수 있었다.
이렇게 집에서 1킬로 떨어진 빵집까지 총 22킬로미터를 주행해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무척 고단했지만, 꼭 돌아가서 알을 낳아야만 하는 연어처럼 집으로 팔딱팔딱 돌아왔다.
귀소본능 하나로 해 낸 자전거 여행이었다.
총 48킬로를 달렸는데, 중간중간 어찌나 먹어댔는지 배가 하나도 안 고팠다.
꼭 돌아와야 했기에 있는 대로 퍼 먹었던 나머지 소화가 안 되어서 자전거 안장에 앉아 있는 게 힘들 정도였다.
그랬더니 그렇게 달렸는데도 살이 빠지진 않았다는 게 큰 아쉬움이다.
좀 쉬고 나면, 몸이 회복되고 나면 남쪽으로 한 번 더 달려봐야 겠다.
그 땐 물도 좀 충분히 챙기고, 먹을 것도 미리 좀 챙겨서 가봐야지.
남쪽으로 펼쳐진 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또 궁금해진다.
이번 휴직에는 마음속에 품고 있던 오랜 궁금증을 이렇게 하나하나 풀어보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