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캐나다의 BC주 라이튼시를 공격한 폭염, 의성 고운사를 태운 비화
21년 작열하던 여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역사적 소도시인 라이튼(Lytton)에서 일어난 화재를 두고 뉴욕타임즈는 열이 파도처럼 마을을 덮쳐서 '지워 버렸다'고 썼다. 쓰나미급으로 열이 몰려왔고 순식간에 마을을 초토화 시켰음을 단번에 알 수 있게 해 주는 헤드라인이었다.
'폭염 살인'이 묘사한 구절에 따르면, 기록적인 폭염이 연이어 닥쳤던 셋째 날, 라이튼의 기온이 무려 49.4도에 달하더니만 철로 위를 지나던 화물 열차의 강철 바퀴에서 불꽃이 튀었고,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불씨를 마을의 여기저기로 실어날랐다. 삽시간에 번진 불은 대형 산불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마을의 90%가 파괴되고, 2명이 사망하며 수십 명이 부상을 입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연일 49도(섭씨)까지 치솟는 극단적 고온과 건조한 환경에서, 산불은 순식간에 마을 전체를 집어삼켜 주민 대부분이 긴급히 대피해야 했고, 마을의 역사와 문화재, 동물과 식물들도 함께 피해를 보았다. 이 산불은 지역사회의 심각한 트라우마와 상실감을 남겼으며, 응급 대응과 복구에 엄청난 인력과 자원이 동원됐다. 이런 재난은 명백히 인류가 초래한 기후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분석되었고, 앞으로도 이상고온·대형 산불 등의 파괴적 영향이 반복될 가능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캐나다 서부의 산불은 도시 하나를 태워서 없애버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미국 동부 연안 지대에까지 연기 오염이 번져서 뉴욕에 호흡기 질환으로 인해 장기 입원하는 환자들이 급증하였다. 바싹 마른 산림에서 일어난 산불 연기로 인해 지상의 스모그가 증폭되면서 사람들이 사망하기도 한다. 이 연기는 수천 킬로미터를 떠다니며 미세한 입자를 대기 속으로 밀어 올린다. 이 입자를 들이마시게 되면 천식이나 심장마비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산불이 초래한 연기를 흡입하고 사망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26만에서 6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폭염살인' 47쪽)
라이튼은 사실 도시 전체가 중국계 캐나다인들의 이민사 박물관 같은 곳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에 타서 사라져버리 바로 전 달에 이 곳에 위치한 중국사 박물관이 그 업적을 인정받아 수상을 하기도 했다. 불 타기 전 도시 모습들을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작권 문제가 염려되어서 사진을 붙여넣기 하지 않는다. 중국의 한 마을을 옮겨 놓은 것 같은 마을 모습이 놀랍고, 이런 광경들이 영영 사라져 버렸다는 것도 믿을 수가 없다. https://www.cbc.ca/news/canada/british-columbia/lytton-chinese-history-museum-prize-chinese-community-archiving-1.6019103
중국계 이민자들은 1850~1860년대 프레이저 캐니언 골드러시(Fraser Canyon Gold Rush)와 1880년대 캐나디안 퍼시픽 철도 건설(Canadian Pacific Railway)에 참여하기 위해 라이튼 지역에 모여 들었다. 철도 공사가 끝난 뒤, 상당수 이민자들은 라이튼 등지에 터를 잡아 농업·상업·소규모 산업에 종사하며 마을 발전에 기여했다. 원래 그 지역 원주민이었던 엔라카파먹스족과도 잘 융화되어, 혼인·문화교류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라이튼의 특별한 정체성을 형성해 나갔다.
서로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라이튼 지역의 성장은 19세기 후반 미국 오리건주를 중심으로 이루진 중국계 이민에 비할 법한 역사적 사건이다. 19세기 후반 콜롬비아 강 하구에 자리한 아스토리아(Astoria)를 중심으로 미국 오리건주와 워싱턴주 등지의 연어 통조림 산업에 수많은 중국계 이민자들이 고용되면서 대거 이민이 이뤄졌다. 1880년대엔 일대 노동자의 대다수가 중국계일 정도였고, 이들은 어류 손질, 통조림 작업 등 힘든 노동을 담당하며 마을을 일궈 나갔다. 캐나다의 라이튼도, 아스토리아도 태평양 북서부 연안을 중심으로 산업 발전을 위해 외국 이민자를 집단적으로 고용하면서 성장한 역사적 소도시들인 것이다.
나는 2010년 경에 아스토리아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중국계 이민사에 대해 모르고 방문했다가 그 곳에 있는 작은 박물관에 들어가서 역사를 읽고 새롭게 아스토리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작고 고즈넉한 마을이 태평양을 그대로 바라보고 서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수많은 중국 사람들이 그 곳에 서서 이역만리 떨어져 있는 고향을 그리워했으리란 생각을 해서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었다. 태평양 북서부 연안의 달빛도 그들의 마음을 대신 말해 줬으려나.
최근 2025년 3월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던 경북 의성 고운사 화재도 주요 문화재를 잃었다는 점에서 몹시 안타까운 화재였다. 실화에서 비롯된 대형 산불이 건조한 환경에서 강풍을 타고 산자락을 넘어 고운사까지 번졌다. 비화(飛火, 불씨가 바람에 옮겨 붙는 현상)로 인해 완전히 진화하지 못한 화재가 수십 건물로 확산됐고, 결과적으로 산불 때문에 주요 전각과 문화재들이 대거 소실되는 피해를 겪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석조여래좌상 등 주요 유물을 화재를 입기 직전에 이동할 수 있어 보존할 수 있었고 인명피해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런가 하면 2005년 양양 낙산사를 전소시켰던 화재는 야외에 노출되었던 인화물질로 인해 발생한 불이 강풍과 대기 건조라는 기후 조건과 결합되면서 큰 재난으로 번진 사례였다. 건조주의보와 강풍특보가 내려진 상태에서, 어른이 서 있지 못할 정도로 강한 바람(영서지방 특유의 ‘양간지풍’)이 불면서 산불이 순식간에 확산됐다. .산불은 한때 진화되는 듯했으나, 오후 3시 무렵 강풍을 타고 잔불이 낙산사 인근 송림으로 번지며 결국 사찰 주요 전각을 휩쓸고야 말았다. 이 안타까운 화재 이후 낙산사 화재피해 복구와 더불어 "전통사찰 화재예방대책"이 수립되었다. 목조 건물이 대부분인 유적 내부에 스프링쿨러를 설치하고, 사찰 내에 소방 도로를 구축하는 한편, 사찰 주변 20~30미터 안에 있는 수목들을 솎아내거나 베어내서 방화선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불연화소재로 건축물을 지어서 재난대피시설로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저수댐을 설치하여 소방용수로 쓸 수 있게 하였다. https://www.buddhism.or.kr/m/board/view.php?skey=&sval=&scale=10&board_contents_idx=154459
라이튼시를 폭염이 덮치던 때에도 그 일대가 몹시 건조했다. "폭염 당시 태평양 북서부 연안 전역에서는 대대적인 잠금 현상이 있었다. 즉, 식물들이 자신들 이파리 뒷면의 공기구멍을 전부 꽉 닫아 어떻게든 숨을 참고 폭염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린 것이다. 이때 블랙베리와 블루베리는 자기가 맺은 열매의 수분을 마셔버려서 열매는 줄기에 매달린 채로 바싹 마르고 시들어버렸다. 물푸레나무와 단풍나무 같은 활엽수는 이파리들이 부서지고 말려 올라갔다. 기온이 오를수록 햇빛에 노출된 나무들은 대부분 공기구멍을 열고 땀이라도 흘려서 열을 식히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나무들의 뿌리도 메마른 흙에서 물을 빨아들이려 애썼지만, 물 대신 공기 방울이 잎맥으로 들어가 결국 나무줄기가 파열되고 말았다"고 제프 구델은 썼다('폭염살인' 33쪽).
식물들도 인간들과 같이 똑같이 사투를 벌이다가 인간과 함께 멸망을 맞은 것이다.
라이튼에, 의성에, 양양에 만일 조금만 더 습도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일대의 식물들이, 산림이 불쏘시개처럼 바짝 말라 타들어가지 않아도 됐더라면 결과는 덜 비참할 수 있었을까.
지구상의 생물들은, 비극을 초래한 인간들을 포함하여, 과연 기후재난을 극복하고 이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