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기후변화에 대한 기록

#1. 2004~2011년 vs 2023년 태평양 북서부 연안, 워싱턴

by 미스트랄

나는 2004년 9월부터 2011년 6월까지 시애틀을 중심으로 워싱턴 주의 킹카운티 지역에 살았다. 박사 과정에 여러 군데 지원했다가 워싱턴주와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는데, 두 군데 다 장학금은 포함되지 않아서 가서 장학금을 구해야만 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로 가면 환경경제학을 공부할 수 있고, 운 좋게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시카고 학파에 속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경제학을 잘못 건드렸다간 10년 가량 학교에 머물게 될 지도 몰랐고, 무엇보다 옥수수밭이 가득한 곳에서 살아낼 자신이 없었다.

보스턴에서 사귄 미국 친구들은 하나 같이 노스캐롤라이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스트랄, 거긴 끊없는 옥수수밭이라고, 얼어 죽을 옥수수들!" (실제로는 f***ing corn fields 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워싱턴주로 가기로 했다. 20살 때부터 해왔던 임학을 또 해야 한다는 건 마이너스 요소였으나, 그래도 세부 전공으로 임업마케팅을 골랐으니 새로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학교가 커서 장학금을 얻을 기회가 상대적으로 더 있었다. 한인 커뮤니티가 큰 지역이라 향수병을 달랠 수가 있었고 한식당도 많았다. 무엇보다 초록초록하다는 그 곳의 아름다운 자연은 정말 "에버그린"이란 워싱턴주의 별명에 걸맞게 '사는 곳이 주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었다. 회색으로 둘러 싼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태평양 북서부 연안(Pacific Northwest)의 축복 받은 자연은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고, 그간 들인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 할만 했다.


운 좋게 나는 입학 첫 날 오티에서 배우자가 될 사람을 만나게 됐고, 그와 2005년 바다가 보이는 카킥 공원에서 약혼식을 올렸다. 카킥 공원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연어들이 마지막으로 박차고 뛰어 오르는 길목으로 바다와 강이 만나는 수려한 경관지였다. '차갑고 짠 태평양 바닷물에서 3~4년 머물다가 알을 낳기 위해 강물을 거슬러 자신들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경이로운 장소였다. 우리의 만남이, 약혼과 결혼이 궁극적인 목적지로 함께 향하는 여정이 되길 바라면서 고른 장소였다. 여름날 저녁은 서늘했고 하객들과 우리들은 그 날 하루를 연어처럼 즐겼다.


2010년이 되기 전까지는 정말로 여름에 에어컨이 필요 없었다. 겨울을 중심으로 한 우기 6개월은 추적추적 비가 오는 우울한 날씨로 유명하나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상처한 톰 행크스가 그래서 시애틀로 이사를 갔다. 그의 슬픔을 더 극대화 할 날씨와 공간을 찾아서), 여름을 중심으로 한 건기 6개월은 천국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축복 받은 날씨였다. 날씨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화창하고 맑고 덥지 않으며 공기는 청정기를 수천 대 돌린 것처럼 깨끗했다.


그런데 2010년을 전후로 자동차량이 많아진다는 게 피부로 와 닿게 됐다. 아마존, 익스피디아, MS 등 굴지의 기업들이 시애틀을 찾아서 둥지를 틀었다. 그 즈음 우리 부부는 남부 킹카운티에 살면서 학교로 출퇴근을 했었는데 오가는 길에 차가 막히는 일이 잦아졌다. 그 전에는 교통 체증이라고는 모르던 곳이었다. 부촌인 밸뷰를 가로지르는 도로에는 통행세가 매겨졌다. 전체 지구도 더워지던 때였는데, 시애틀 지역의 기온은 더 빠르게 데워지고 있었던 것 같다. 뉴스에서 시애틀 지역의 에어컨이 인기리에 팔리기 시작했다면서 기후 변화가 걱정된다는 내용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던 2011년에는 에어컨이 동 나서 살 수가 없게 되어 다른 주에서 공수해서 팔아야 한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그 뒤 시애틀과 워싱턴주의 환경은 어떻게 변했을까?

오늘 읽은 책에 몇 가지 해답이 기술되어 있어서 브런치 친구들과 함께 읽기 위해 옮겨본다.

책 제목은 "폭염 살인: 폭주하는 더위는 어떻게 우리 삶을 파괴하는가"이다.

원제는 The Heat will kill you first, 지은이는 기후 저널리스트인 제프 구델 Jeff Goodell이고 옮긴이는 왕수민, 출판사는 웅진지식하우스이다.

책은 2023년의 사실들을 다루고 있고, 책이 나온 것은 2024년 상반기, 아직 바이든 정부가 기후 변화에 대해 책임감 있는 대책들을 내놓고 있을 때이다. 이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섰으니 기후 변화와 관련된 모든 상황은 이보다 훨씬 더 나빠졌을 것이다. (사실 책을 읽어보면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겠나 싶을 정도인데도 말이다.)


사실 나는 산림 분야 연구자인 만큼, 원래는 '폭염 속에서 말라 붙은 나무가 자연발화' 하여 산불로 연결되는 부분을 읽어보려고 이 책을 골랐는데("...뉴욕시에서는 더위로 발화한 캐나다의 산불 때문에 하늘이 영화 <블레이드 러너>처럼 오렌지색으로 물들어버렸다...", '폭염살인' 11쪽), 읽다가 시애틀 지역의 기후가 자주 묘사되는 것을 보고 이 부분에 대해 내 기억과 결합하여 기록을 남기고 싶어졌다. 내 자신이 시애틀 지역에서 최근 20여 년 간 급격히 진행되어 온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증인 중 하나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었다.


이 책 29쪽부터 31쪽까지의 묘사를 일부 옮긴다.

".... 2021년 여름, 태평양 북서부 연안(오리건, 워싱턴, 아이다호 일부를 이른다-옮긴이)의 기상예보관들이 폭염이 다가오는 중이라며 사람들에게 우려 섞인 경고를 보냈다. 워싱턴 야키마계곡의 일꾼들은 새벽 1시에 체리 농장으로 소집되었다. 다 익은 과일이 물러지기 전에 얼른 따야 했기 때문이다. 에어컨 냉방 업체에는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홈디포와 로우스에서는 선풍기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적십자에서도 더위 경보망을 가동해 사람들에게 수시로 물을 마시고 혼자 지내는 가족과 친구들의 안부를 확인하라는 안내 문자를 대거 발송했다. 도서관과 교회에서는 노숙자나 누구든 더위를 피할 데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무더위 쉼터를 만들었다. 포틀랜드에서는 오리건컨벤션센터를 개방하기도 했다. 이 건물이면 냉방 시설이 있는 공간에 수백 명의 사람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었다. "지금 다가오고 있는 것은 단순히 불편한 더위가 아니에요." 포틀랜드 보건국의 제니퍼 바인스가 한 말이었다. "이건 목숨을 위협하는 더위에요."... 그해 여름 태평양 북서부 연안에 살았던 사람들은 아마도 폭염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을 테지만, 그것이 아스팔트를 녹이고 사랑하는 이를 죽이고 내가 사는 세상이 이런 곳이었나 새삼 일깨울 정도로 매우 혹독한 괴력을 발휘할 줄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태평양 북서부 연안은 오랜 세월 기후위기의 피난처로 여겨져 왔고, 기후변화의 영향으로부터 '안전한' 어딘가에서 살고 싶다면 이사갈 만한 최적의 장소로 손꼽혀 왔다. 해변과 호수, 빙하와 온대 다우림 등이 어우러진 태평양 연안, 캐스케이드 산맥, 올림픽국립공원은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였다. 스티브 잡스가 회사 이름을 정한 곳도 이 곳에 있던 사과 농장이었다. 그랬던 태평양 북서부 연안도 기후변화가 초래한 재앙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식물, 동물, 사람 할 것 없이 다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이 고장의 연어들은 더 이상 고향으로 되돌아가지 못했다. "... 강물에 따뜻한 물이 한계 이상으로 불어나자 강물을 거스르느라 발버둥치는 연어 떼는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물속의 산소가 줄어들면 연어 떼는 머리에 비닐봉지를 쓰고 숨 쉬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연어 떼의 은빛 비늘엔 어느새 빨간 병변이 일어났다. 등에는 곰팡이가 솜처럼 폭신하게 피었다... 연어 때 수만 마리는 결국 따뜻한 물속에서 맥이 빠지고 숨도 못 쉬다가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되었고, 다른 물고기의 밥이 되거나 강둑까지 쓸려가 너구리와 독수리의 발톱에 갈가리 찢기는 신세가 됐다..." ('폭염살인' 33쪽).


나는 2023년의 시애틀 지역을 미루어 짐작해 본다. 1994년 서울을 강타했던 폭염과 그리고 우리가 사는 현재 2025년 대한민국 전역을 쓰러뜨리는 극한 폭염을 근거로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그 아름다웠던 지역이 어떤 방식으로 이 기후재앙에 휩쓸렸을까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내가 겪었던 2011년의 시애틀과 킹카운티의 더위는 확실히 '불편한 더위'였을 뿐이고, 여름이 지나고나면 그건 찬란한 벚꽃과 다채로운 단풍 사이에 잠깐 지나가는 통과 의례 같은 것으로 참을만 했었다. 그러나 제프 구델이 찾아 정리한 기록들을 보면 이제 더 이상 더위를 참아서는 안 되게 된 것이다. 이제 더위는 폭염이라 불리게 됐고, 그로부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어떻게든 피해야 하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두고, 조선시대에는 호환과 마마가, 1950년대에는 전쟁이, 1980년대에는 불법 비디오가 제일 무서운 존재였다면, 이제 21세기에 가장 무서운 것은 폭염, 산불, 홍수가 아니겠는가 싶다.


너무 길어져서 캐나다의 산불 주범인 자연 발화에 대해서는 다른 날 다른 브런치로 써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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