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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Oct 20. 2022

고이접어 아껴둔 편지 같은 질문,

할머니는 내게 무엇을 주고 싶어했을까.



할머니는 내게 무엇을 주고 싶었을까.
단 한번도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질문을 들었다. 질문의 답은 한치의 망설임없이 떠올랐다.
행복. 나의 행복.
그때부터 하염없이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내가 너를 두고 우얘 갈꼬.
마지막으로 봤던 그날, 할머니가 말했었다. 보통은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말이라고 하는데, 나는 할머니에게서 들었다. 당연했다. 내게 할머니는 부모 이상이었으니까 너무나 당연했다. 그리고 저 말에 담긴 그 깊은 의미를 아는데는 당신이 떠나고도 이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였다.

Johannes Vermeer, Girl reading a letter by an open window, c 1657,


당신의 질문은 마치 신이 보낸 편지 같았다. 모든 게 정지된 듯한 순간에 그렇게 내게 운명처럼 왔다. 고요한 적막 속에 편지를 읽고 있는 베르메르의 그림 속 여인도 어쩌면 나와 같지는 않을까. 편지를 당기듯 팽팽하게 붙잡고 있는 그녀의 손 때문인지 모르겠다. 편지의 마지막을 잡은 그녀의 손, 그 곳으로 향한 눈빛,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묘한 긴장감. 이상하리만큼 편지에서 미묘한 떨림이 느껴진다. 어쩌면 그녀의 편지는 그녀의 삶을 움직이게 하지 않았을까.

당신의 질문이 내게 닿은 순간, 나는 모든 게 엉망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어디하나 괜찮은 데가 없을 정도로 나는 나를 너무 소모해버렸다.
회사의 업무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부당할 정도로 과했다. 정확히는 받은 것 이상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다들 그렇겠지만 저비용 고효율, 일명 가성비인간이 아니었나 싶다. 업무적인 부분은 그래도 이해라도 해봄직한데 내가 굳이 휴가의 사유를 말해야되는 것도 더없이 불쾌했다. 여전히 그렇다.
이런 일과 별개로 개인적인 일로도 시달렸다. 어쩌면 회사가 서브, 이 일이 메인이어야 하는데 회사일로 집중을 못 했다. 그래서 고민했다. 지난 몇년간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다. 이런 이유들로 완전히 지쳐서 더 이상은 못할 것 같았다. 이제 다 그만 두고 현실과 타협하는 게 나를 위해서 맞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적당히 받았으니 적당히 일하며 회사나 다니는 게 나은 건가라는 생각이 어느덧 삶의 부질없음에 이르르며 멈추고 싶은 생각으로 이어졌다. 

Ethel Walker Old Letters 1908


이렇게 모든 걸 포기하고 싶던 순간, 당신의 질문이 내게 닿았다. 할머니는 내게 무엇을 주고 싶었을까.
한글자한글자 고민하며 고이 접어 간직하며 아껴두고 있던 편지 같은 그런 귀한 질문. 어쩌면 이 질문이 전해지기 위해서는 내가 당신을 보내고 또 내가 그 시간을 그 삶을 견뎌야만 했던 건 아닐까.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이유는 당신의 사랑 덕분이다. 나를 이 자리로 이끈 건 신의 뜻이라고 여겼는데 그게 아닐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조차도, 내 삶의 그 어떤 작은 순간도, 당신의 사랑이 미치지 않은 곳이 있을까.



할머니, 미안해. 다 잊고 떠나라고 말하지 못 해서 미안해. 아직은 떠나지마. 내가 행복해지면 그때 마음 놓고 떠나.
그런데 나 잘 모르겠어.  할머니가 없는데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또 이렇게 당신을 보낼 수 없다.




이미지출처


https://commons.m.wikimedia.org/wiki/File:Johannes_Vermeer_-_Girl_Reading_a_Letter_by_an_Open_Window_-_Google_Art_Project.jpg


https://wikioo.org/ko/paintings.php?refarticle=AQUHHT&titlepainting=Old%20Letters&artistname=Ethel%20Wal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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