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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Jan 13. 2019

고흐의 <귀를 자른 자화상>

너는 내 아픔을 모른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 and Pipe>, 1889년 1월, 51cm x 45cm, Private collection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가장 불운했던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고흐는 그 생전에는 제대로 된 평을 받지 못했고 작품 역시 팔지 못했으나 그의 사후에야 명성을 얻게 되었다. 또한 오늘날에 이르러 고흐는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고흐의 불운한 삶을 더 극대화한 것은 그가 앓고 있던 정신질환이었다. 고흐의 불안한 정신 상태는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구불구불한 선들에 반영된 것으로 이해된다. 무엇보다 고흐의 삶을 더 극적으로 만든 사건은 1888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고흐가 귀를 자른 일이었다. 더 놀라운 점은 이렇게 이상한 행위를 한 뒤 귀에 붕대를 감은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았다는 사실이다.

고흐가 그린 귀를 자른 자화상은 두 점으로 두 점 모두 1889년 1월에 그려졌다. 한 점은 영국 런던 코톨드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는<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Self Portrait with Bandaged Ear> 이다. 다른 한 점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 and Pipe>이다.


좌측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Self Portrait with Bandaged Ear >, 1889년 1월, 캔버스에 유채, 60.5×50cm. 코톨드 갤러리The Courtauld Gallery

우측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 and Pipe>, 1889년 1월, 51cm x 45cm, Private collection



고흐에게 이런 비극이 발생했던 원인은 무엇이며 고흐는 왜 이런 비극의 순간을 자화상으로 남긴 것일까?


이 모든 비극은 고흐와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이 함께 살면서 비롯되었다. 고흐는 1887년 그의 동생이자 아트 딜러인 테오(Theo van Gogh, 1857-1891)의 소개로 고갱을 만나게 된다. 고흐는 고갱을 존경하여 프랑스 아를Arles에 초대한다. 고흐는 1888년 10월 프랑스 아를에 '옐로 하우스 The Yellow House를 마련하고 여기에서 고갱과 60일간 함께 살게 된다.


고갱과 고흐가 같이 살았던 초기에 이 둘의 사이는 원만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함께 작업을 하고 술을 마시며 좋은 사이를 유지했다. 함께 살 무렵 그려진 고흐가 그린 두 점의 작품, <반 고흐의 의자 Van Gogh's Chair>와 <폴 고갱의 의자 Paul Gauguin's Armchair>는 당시 고갱에 대한 고흐의 친밀감이 엿보인다. 이 두 작품에는 비록 인물은 없지만 각각의 작품은 고흐와 고갱을 상징하는 듯 하다.


좌측

<반 고흐의 의자 Van Gogh's Chair>, 1888-89년. 캔버스에 유채, 91.8 x 73 cm, 내셔널 갤러리 National Gallery, 런던 London

우측

<폴 고갱의 의자 Paul Gauguin's Armchair>, 1888년 11월, 캔버스에 유채, 90.5  x 72.7 cm, 반고흐 미술관 Van Gogh Museum, 암스테르담 Amsterdam



고흐와 고갱은 종종 예술에 관한 깊이 있는 논쟁을 벌였다. 그런데 이 논쟁이 문제가 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을 두고 고흐는 자연을 직접 보고 그대로 그리는 일에 더 집중했다. 그러나 고갱은 작가가 상상을 통해 마치 새로운 풍경을 발명해낸 듯이 그려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의견 차이로 이들 사이의 논쟁은 심해졌으며 이로 인해 둘 사이는 멀어졌다.

1888년 12월 고갱은 고흐의 동생인 테오에게 파리로 돌아갈 예정이라는 편지를 보낸다. 게다가 12월 21일 테오는 결혼을 한다. 고갱과의 이별을 짐작한 데다 동생까지 결혼한 상태는 고흐를 불안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1888년 12월 23일 낮, 고흐는 고갱에게 아를을 떠날 것인지 물었다. 고갱은 그렇다고 대답한 뒤 고갱이 산책을 하였는데 이 때 고흐는 고갱을 칼로 찌르려다 멈췄다. 고갱은 고흐의 이러한 행동을 걱정하여 호털에서 밤을 보내기로 한다. 고갱이 떠났기 때문인지, 테오가 결혼으로 혼자가 되었기 때문인지, 고흐 자신의 불안한 정신병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12월 24일 아침 그는 자신의 귀를 자른채 시체와 같은 모습으로 발견된다. 당시 고흐의 모습을 본 경찰은 고흐가 죽었다고 여겼다. 그러나 고갱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를 병원으로 옮기게 된다. 결국 고흐의 삶에서 고갱을 살게한 사람도, 죽게한 사람도, 고갱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병원에 머물면서도 고흐는 늘 고갱에 대해 물었다고 전한다.


이러한 사건 뒤에 그려진 작품이 바로 귀를 자른 자화상 2점이다. 그림에서는 오른쪽 귀가 잘린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거울을 보고 그려 좌우가 뒤바뀐 것이다. 자화상 속의 고흐는 그 어떤 자화상보다도 슬퍼보인다. 그의 눈은 허공을 쳐다보는 듯 하다. 그의 눈에는 삶을 향한 어떠한 의지를 찾기 힘들다. 그보다는 상실과 상처, 불안에서 비롯된 우울과 절망으로 가득차 있다.  


귀를 자른 고흐의 행동을 쉽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린 것도 받아들이기에 결코 쉽지 않다. 다만 짐작할 수는 있다. 고흐에게는 귀를 자른 것보다 고갱과의 이별이나 모든 것을 상실한 듯한 상황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고흐는 귀를 자른 고통이 그에게 이별의 아픔을 망각하게 하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어쩌면 귀를 잘린 자신의 모습을 보고 고갱이 한번 쯤 돌아봐주기를 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귀를 자르고 무력감에 빠진 듯 한편으로는 태연해보이는 그의 얼굴이 더 어렵고 멀게만 보인다. 귀를 자른 그의 자화상은 우리가 도저히 그의 아픔을 가늠할 수가 없음을 말하는 듯하다.



이미지 출처 및 내용 참조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Self Portrait with Bandaged Ear >, 1889년 1월, 캔버스에 유채, 60.5×50cm. 코톨드 갤러리The Courtauld Gallery

https://en.wikipedia.org/wiki/Self-Portrait_with_Bandaged_Ear

https://courtauld.ac.uk/gallery/collection/impressionism-post-impressionism/vincent-van-gogh-self-portrait-with-bandaged-ear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 and Pipe>, 1889년 1월, 51cm x 45cm, Private collection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Vincent_van_Gogh_-_Self_Portrait_with_Bandaged_Ear_and_Pipe.jpg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반 고흐의 의자 Van Gogh's Chair>, 1888-89년. 캔버스에 유채, 91.8 x 73 cm, 내셔널 갤러리 National Gallery, 런던 London

https://www.nationalgallery.org.uk/paintings/vincent-van-gogh-van-goghs-chair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폴 고갱의 의자 Paul Gauguin's Armchair>, 1888년 11월, 캔버스에 유채, 90.5  x 72.7 cm, 반고흐 미술관 Van Gogh Museum, 암스테르담 Amsterdam

https://www.vangoghmuseum.nl/en/collection/s0048V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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