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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Jan 13. 2019

『위대한 개츠비』의 표지, 호퍼의 <자동판매식당>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모른다


“무엇이『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를 위대하게 하는가”

이 질문은 영국의『가디언』 지에 실린 글이 제목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는 1925년 처음으로 출판된 미국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 1896-1940)의 소설이다. 피츠제럴드는 그가 "재즈 시대(Jazz Age)"라고 이름 붙인 1920년대의 미국을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에서 그렸다. 제1차 세계대전의 혼돈과 충격을 겪은 이후 미국은 1920년대에 이르러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번영을 누렸다. 피츠제럴드는 이 번영의 시대에 매력을 느꼈으나 물질 만능주의는 환멸했다. 그는 이 시대가 머지 않아 끝나리라는 것을 알고 이 시대의 모습을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에 담고자 하였다. 

따라서 소설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의 끝에는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예고편 같은 화려한 영상이 주는 스펙터클이 아닌 쓸쓸함과 허탈함, 무력감만이 남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에 개츠비가 죽은 뒤 치러진 그의 장례식에서 그 생전의 넓은 인맥에도 몇 명만이 참석했던 것처럼 말이다. 


『가디언』지에 실린 글에 따르면 소설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개츠비의 재능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경이로움을 알 수 있는 인간의 능력으로 결론지어진다. 감동을 주는 듯한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그러한 결론을 암시한다. 


"우리는 과거로 끊임없이 흘러들어가면서도 해류에 맞서 배를 띄우고 파도를 가른다."

So we beat on, boats against the current,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



그러나 이 문장이 『위대한 개츠비』가 남기는 공허함과 쓸쓸함, 허탈함을 채울 수는 없다. 소설을 읽은 뒤에 느껴지는 그 감정과 이어지는 그림이 바로 민음사에서 표지로 사용했던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657)의  <자동판매식당(Automat)>(1927)이다.


좌측은 민음사의 표지, 우측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657)의 <자동판매식당(Automat)>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657), <자동판매식당(Automat)>, 1927년, 

캔버스에 유채, 71.4 cm × 91.4 cm, 디모인 아트센터(Des Moines Art Center), 디모인(Des Moines), 아이오와주(Iowa).


에드워드 호퍼의 <자동판매식당(Automat)>은 선명한 색으로 가득 채워져 있으나 그 안에서 나오는 울림은 소외감, 외로움, 고독, 우울함, 무기력함에 가깝다. 이는 호퍼가 피츠제럴드가 예상한 황금의 시대 이후의 공허한 시대를 그림에 담았기 때문이다. 호퍼가 작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며 인정받았던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 대초는 경제 불황으로 아메리칸 드림이 끝나가는 시기였다. 호퍼의 그림 속 찬란한 색채는 아메리칸 드림과 같다. 동시에 찬란함 뒤에 오는 깊은 쓸쓸함은 그의 그림을 통해 나타난다.



다시 그림을 보면 어느 밤에 자동판매식당에 고독해 보이는 한 여인이 앉아 있다. 그녀는 옷을 잘 차려입고 화장을 했으며 모자를 쓰고 있다. 그녀가 입은 의상을 통해 늦가을이나 겨울로 생각된다. 그녀의 한 손은 커피잔을 들고 있으며 그 앞에는 빈 접시가 놓여져 있다. 한 손은 여전히 장갑을 끼고 있다. 어두운 창으로는 실내의 전등이 비추어지는 듯하다. 아니면 식당 외부의 가로등일 수도 있다. 


호퍼의 모든 그림이 그러하듯이 이 여인을 둘러싼 어떤 상황도 알 수 없다. 그녀 앞의 의자는 텅 비어 있는데 그녀가 누구를 기다리는 것인지 혼자 차를 마시기 위해 들른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해보이는 것은 그녀가 자리한 레스토랑은 꽤 커보이지만 어떠한 활동도 없어보인다. 창 밖의 거리에서도 어떠한 인기척이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한 적막은 그림 속 여인과 그림 전체가 고독한 분위기를 가지게 한다. 이 그림을 통해 생명력을 느끼기는 어려우며 그보다는 허무함과 쓸쓸함으로 채워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이 그림과 그림 속 여인을 도시의 인간 소외와 연관짓게 한다. 


이렇게 감상자와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고독해보이는 여인은 호퍼의 그림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여인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다른 그림들 속 인물도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있다. 또한 어떤 인물은 아예 감상자에게 등을 보이고 있다.


좌측; 에드워드 호퍼, <호텔 방>, 1931, 우측; 에드워드 호퍼, <브루클린에 있는 방>, 1932 


좌측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657), <호텔 방(Hotel Room)>, 1931년, 

캔버스에 유채, 152.4 x 165.7 cm,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Museo Nacional Thyssen-Bornemisza), 마드리드(Madrid).

우측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657), <브루클린에 있는 방(Room in Brooklyn)>, 1932년,  

캔버스에 유채, 73.98 x 86.36 cm, 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은 이렇게 그림을 보는 우리, 감상자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므로 고독해보이며 소외된 듯하다. 동시에 그림 앞에 선 우리의 시선을 외면함으로 우리를 소외시킨다.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과 그림 앞의 우리가 공감을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렇게 공감대가 형성되기 어려운 상황은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과 그림을 마주한 감상자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그림이 그려지던 1920년대에서부터 약 100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도시 생활의 한 현상이다. 그럼에도 호퍼의 그림들이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미국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것은 그들은 도시로 인한 소외의 첫 경험자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화려함과 찬란함 뒤의 쓸쓸함과 허무함을 처음으로 경험했기에 그 충격은 지금보다 더 컸을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쓸쓸함과 허무함은 낯설다기보다는 익숙한 한 현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문명의 혜택은 더할 나위 없이 커졌으나 더 없이 급변하는 시대에 있어 당시에 없던 수많은 불안과 긴장이 더 증폭되어 버렸다. 오늘날의 우리는 당시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시대를 산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날의 우리는,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말, "과거로 끊임없이 흘러들어가면서도 해류에 맞서 배를 띄우고 파도를 가르는"것이 더 없이 버겁다.


 







<<참고 사이트>>



위대한 개츠비 마지막 문장 번역은 위대한 개츠비 - 나무위키 참고.


가디언지에 실린 위대한 개츠비 관련 글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13/may/03/what-makes-great-gatsby


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표지

http://minumsa.minumsa.com/book/1744/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657), <자동판매식당(Automat)>, 1927년,

https://emuseum.desmoinesartcenter.org/objects/41752/automat?ctx=3839b75e-4634-490e-b8e0-3705f143256c&idx=4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657), <호텔 방(Hotel Room)>, 1931년, 

https://www.museothyssen.org/en/collection/artists/hopper-edward/hotel-room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657), <브루클린에 있는 방(Room in Brooklyn)>, 1932년,  

https://www.mfa.org/collections/object/room-in-brooklyn-32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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