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내 아픔을 모른다
"전쟁에서 고귀한 희생이란 있는가?"
이 질문은 1914년 제1차대전으로 아들을 잃은 독일의 조각가 케테 슈미트 콜비츠(Käthe Schmidt Kollwitz, 1867-1945)가 가졌던 의문이었다.
케테 슈미트 콜비츠는 독일의 화가이자, 판화가이며 조각가이다. 콜비츠의 작품들은 20세기 초 가난과 전쟁으로 상처 입은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콜비츠는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이를 작품에 담았다. 결혼 이후에는 남편의 빈민 구호 활동에 참여했는데 이러한 것들도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초기에는 주로 판화 작업을 하였는데 작품에서 어머니와 아이가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1차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의 청년들은 자원하여 입대하였고 여기에는 콜비츠의 아들인 한스와 페터도 포함되었다. 1914년 콜비츠는 전쟁으로 인해 페터를 잃게 된다. 이 일로 그녀는 대의를 위한 고귀한 희생에 회의를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아들을 잃고 크게 상심한 그녀의 아픔이 담긴 작품이 바로 독일 베를린 노이에 바헤(Neue Wache)에 있는 <피에타> 조각상이다.
노이에 바헤(Neue Wache)는 새로운 경비대를 뜻하는 말이다. 동독 시절에는 파시즘과 군국주의 희생자 기념관이었으며 현재는 전쟁과 독재의 희생자를 위한 추모관이 되었다. 노이에 바헤는 운터 덴 린덴가(Unter den Linden)에 훔볼트 대학과 초이그 하우스 가운데 있다. 또한 건물은 독일 근세건축의 거장인 칼 프리드리히 싱켈이 지은 고전주의 형식의 석조 건축물이다. 그리고 이 안에는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 만이 놓여져 있다.
콜비츠의 <피에타>상은 노이에 바헤 이외에 쾰른 콜비타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도 있다. 그런데 이 작품들을 자세히 보면 전형적인 <피에타>상과 다름을 알 수 있다.
전형적인 피에타에서 죽은 예수의 몸은 마리아의 무릎 위에 놓아져 있다. 이와 달리 콜비츠의 피에타에서 죽은 아이는 어머니의 무릎으로 감싸져 있다. 어머니의 온 몸은 마치 아이를 감싸 앉은 듯이 보인다. 어머니의 손도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듯 하다. 어머니의 또다른 한 손은 슬픔에 겨운 얼굴 앞에 있는데 마치 틀어져 나오는 슬픔을 막으려는 듯 해보인다. <피에타>라고 이름 붙여진 이 상은 마리아와 예수의 모습이 아닌 것이다. 이 상은 당시 전쟁과 독재로 아들을 잃은 동시대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이다. 안타깝게도 콜비츠는 2차 대전으로 또다시 그의 사랑하는 손자를 잃었다. 콜비츠는 전쟁으로 인해 아들과 손자 모두를 잃었던 것이다.
콜비츠의 <피에타>를 단순한 피에타로 볼 수 없는 이유는 콜비츠의 다른 작품들을 통해 드러난다. 어머니와 아이를 다룬 판화와 조각을 보면 어머니는 늘 아이를 감싸앉고 있다. 콜비츠는 조각가이기 이전에 사랑하는 아들과 손자를 둔 어머니이자 할머니였던 것이다.
아이를 팔에 앉은 어머니를 다룬 판화는 1916년에 제작된 작품이다. 판화 속 어머니와 아이는 웃고 있다. 어쩌면 이 아이와 어머니는 콜비츠가 아닌 그녀의 손자와 며느리 일 수도 있겠다. 두 아이들과 어머니를 다른 조각도 콜비츠와 그의 아들들 일 수도 있고 며느리와 손자들일 수도 있다. 아니면 콜비츠와 동시대를 살았던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 작품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 작품들에 콜비츠의 아픔과 비극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 작품들은 그 어느때보다 단호하게 말하는 듯 하다. 내 작품을 보고 있는 당신은 내 아픔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K%C3%A4the_Kollwitz
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15910
http://www.kollwitz.de/module/werkliste/Details.aspx?wid=295&lid=7&head=Tour+-+Mother+and+child&l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