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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Jan 12. 2019

워터하우스의 <샬롯의 여인>

내 선택에 담긴 아픔을 너는 모른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 <샬롯의 여인(The Lady of Shalott)>, 1888, 캔버스에 유채, 1530x2000 mm, Presented by Sir Henry Tate 1894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작품인 <샬롯의 여인(The Lady of Shalott)>은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인 시인인 테니슨(Alfred Lord Tennyson, 1809-1892)의 시를 바탕으로 그려졌다.

테니슨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계관시인(桂冠詩人, Poet Laureate)이다(계관시인은 국가나 왕에 의해 공식적으로 임명된 시인 또는 그 칭호를 말한다). 테니슨은 1832년 <샬롯의 여인(The Lady of Shalott)>을 썼다. 당시에는 혹평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이후 이 시는 빅토리아 시대 영문학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를 받았다. 또한 이 시는 빅토리아 시대의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라파엘 전파 미술가들이 셰익스피어의 오필리아와 함께 즐겨 그린 주제였다. 워터하우스도 샬롯의 여인을 여러 번 그리기도 하였다.


워터하우스가 그린 <샬롯의 여인>의 다른 버전, 좌측이 1894년, 우측이 1916년


샬롯의 여인은 영국의 전설인 아더왕 전설에 나오는 여인이다. 아더왕 전설은 여러 버전이 있는데 테니슨은 그 중 랜슬롯과 일레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였다. 일레인은 성에 갇힌 채 태피스트리를 짜며 거울을 통해서만 세상을 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레인은 거울을 통해 카멜롯으로 돌아가는 기사 랜슬롯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저주를 잊은 채 거울이 아닌 직접 세상에 나가 랜슬롯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거울은 깨어지고 태피스트리는 떨어졌다. 자신이 죽으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일레인은 성에 매어진 배를 타고 카멜롯으로 향한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랜슬롯을 보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그를 보기 전에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And down the river’s dim expanse

Like some bold seer in a trance,

Seeing all his own mischance ?

With glassy countenance

Did she look to Camelot.

And at the closing of the day

She loosed the chain, and down she lay;

The broad stream bore her far away,

The Lady of Shalott.


희미하게 펼쳐진 넓은 수면 저편을

무아지경에 빠진 어떤 대담한 예언자처럼,

그 자신의 모든 불행을 보면서 -

유리처럼 무표정한 안색으로

그녀는 카멜롯을 보았다네.

그리고 날이 저물어

그녀는 사슬을 풀어, 멀리 던져버렸네;

드넓은 시내는 그녀를 멀리 실어갔네,

바로 그 샬롯의 여인을.


워터하우스의 그림 속 여인은 이렇게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림에 담겨진 이야기는 가장 극적인 부분이다. 그녀는 성이라는 안전한 공간을 벗어나기로 하였다. 그녀는 운명에 순응하기보다는 그것을 깨뜨리며 저항하였다, 그로 인해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세상에 가기 위해 운명을 깨뜨린 용감한 선택을 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샬롯의 여인은 햄릿의 여주인공인 오필리아와는 다르다. 빅토리아 시대에 많이 그려진 대표적인 두 여인 중 하나가 셰익스피어의 오필리아, 다른 하나가 아더왕 이야기의 샬롯의 여인이다. 오필리아는 본인이 어떠한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황에 가까웠다. 한편으로는 죽음으로서 그녀의 운명에 순응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한편으로는 죽음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샬롯의 여인은 다르다. 그녀에게 죽음은 최고의 선택은 아니었다. 그녀는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녀가 성에 갇혀 있었다면, 거울을 통해서만 세상을 보려고 했다면, 그녀는 살 수 있었다. 그녀는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본인의 선택으로 인해 죽게 될 줄 알면서도, 과감하고 용감한 선택을 했다. 그 결과 그녀는 찰나의 행복과 죽음을 맞바꾸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샬롯의 여인을 단순히 비극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녀는 스스로 운명을 선택했고 죽음만큼 위험한 세상을 마주했다. 그녀에게 죽음으로 향하는 길은 행복으로 가는 길의 끝에 있었다.

 

샬롯의 여인이 단지 여인의 이야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가 하는 수많은 선택들 또한 샬롯의 여인이 하게 된 선택과 비슷할 것 같다. 우리는 종종 두 가지 선택지 앞에 놓인다. 대개의 경우 그 선택지는, 평안하게 유지되는 안락한 삶과 죽음을 각오해야하는 삶이라는 두 가지이다. 우리 각자가 어떠한 선택을 하든지 스스로를 제외한 누구도 그 선택과 그 안에 담긴 깊이를, 그리고 그 아픔을 이해할 수는 없다. 우리가 샬롯의 여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그림소개 및 내용 출처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https://en.wikipedia.org/wiki/John_William_Waterhouse



테이트 브리튼 소장 작품 소개

https://www.tate.org.uk/art/artworks/waterhouse-the-lady-of-shalott-n01543


The Lady of Shalott 

https://en.wikipedia.org/wiki/The_Lady_of_Shalott


An introduction to ‘The Lady of Shalott’ 

https://www.bl.uk/romantics-and-victorians/articles/an-introduction-to-the-lady-of-shal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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