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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Jan 12. 2019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우리는 "그녀"의 아픔을 모른다


“내가 아름답지 않아도 나를 사랑해줄 건가요?” 

이 질문은 한 소설이 시작된 질문을 왜곡한 기억이다. 소설가의 부인은 소설가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제가 아주 못생긴 여자라면 말이죠...그래도 저를 사랑해줄 건가요?”

 소설가가 못 들은 척했던 질문을 부인은 다시 말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시작된다.


원래의 질문이 변색 되고 왜곡되어 “내가 아름답지 않아도 나를 사랑해줄 건가요?”라고 기억되는 동안 책의 제목은 지워졌다. 대신 질문과 함께 책 표지 그림이 오랫동안 남았다. 책 표지로 사용된 그림은 바로크 시기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인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1599-1660)의 〈시녀들/라스 메니나스(Las Meninas, The Maids of Honour)>이었다. 제목인 "라스 메니나스 Las Meninas"는 시녀들을 의미한다. Meninas는 (옛날에 어릴 때부터 궁에 들어가 여왕이나 아기 공주를 모시던) 시녀를 뜻하는 단어 menina의 복수형이다.(네이버 어학사전)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1599-1660), 〈시녀들(Las Meninas, The Maids of Honour)>,

1656년, 캔버스에 유채, 3.18m × 2.76m,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 마드리드, 스페인, 



그런데 책 표지는 내가 알던 <시녀들>과 달랐다. 원작 시녀들에서는 하얀 얼굴에 하얀 드레스를 입은 마르가리타 공주(Margarita Teresa de España, 1651-1973)가 중심에 있다. 이와 달리 책 표지에서 중심이 된 것은 원작에서는 어두워서 시선을 끌지 못한 왜소증에 걸린 시녀였다.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는데 책 표지로 등장한 난쟁이 시녀의 모습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책 표지로 사용하기 위해 원작에 이 시녀를 합성한 것인가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왼편이 책 표지, 오른편이 원작


책 표지의 원작인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마드리드 궁의 큰 방에서 마르가리타 공주를 그리고 있는 순간을 담은 작품이다. 그림은 마치 스냅 사진을 찍은 것처럼 보인다. 


원작에 대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다. 공주는 화면 전면에 있다. 그녀 주위에는 그녀를 담당하는 시녀들, 샤프롱, 호위병, 그리고 두 명의 난장이들이 있다. 이들은 공주의 초상화가 그려지는 동안 공주가 지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뒤로는 화가인 벨라스케스가 큰 캔버스 앞에서 작업 중인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벽에는 거울이 걸려 있다. 거울 속에는 왕과 왕비의 상반신이 보인다.  

그림은 매우 자연스러워보이지만 정교하게 기획되었다는 평을 받는다. 이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시선 때문이다. 인물들의 시선은 화면 안에 있기도 하지만 화면 밖을 향하고 있기도 하다. 둘째, 왕과 왕비가 등장하는 거울 때문이다. 왕과 왕비는 그림을 보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작품 내부가 아닌 바깥 공간에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셋째, 이것은 그림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과 상충되는 부분으로 벨라스케스가 그리는 그림이 공주를 그린 것인지 왕과 왕비를 그린 것인지 모호하다는 의견이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그의 책 『말과 글』에서 <시녀들>을 다루었다. 이   글은 작품 <시녀들> 더 유명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푸코는 벨라스케스가 그리는 그림이 왕과 왕비를 그린 것으로 보았다. 


20세기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인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1973)는 1957년 이 작품에 영감을 받은 그림들(스케치라고 불리기도 한다)을 그렸다. 스케치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정성스럽게 그려졌다. 그 수 역시 58점이나 된다. 


피카소의 <시녀들> 중 하나 (https://www.guggenheim.org/arts-curriculum/topic/inspiration)


다시 원작과 책표지를 보면 이 둘 사이에는 다른 몇 가지 부분이 발견된다. 첫째, 책 표지에서 원작의 그림이 잘리면서 중심은 공주에서 시녀로 이동했다. 둘째, 그림의 색감이 달라졌다. 셋째, 이 과정에서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던 시녀가 빛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배경이자 등장인물에 불과한 난쟁이 시녀가 책표지에서 주인공이 되었다. 작가는 원작의 주인공이 아닌 시녀를 주인공으로 했다. 소설의 주인공이 된 시녀는 책의 제목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와 모호하게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프랑스어: 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는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곡 제목이기도 하다. 라벨은 이 곡에 대해 '옛 스페인의 궁전에서 작은 왕녀가 춤을 췄을 것 같은 파반느에 대한 기억'이라고 말하였다.) 



이제 원작과 달라진 책 표지는 다시 묻는다. 

“저랑 같이 있는 게 부끄럽지 않았나요?”(책 205면) 


이 질문에는 몇 가지가 전제되어 있다. 첫째, 질문자이자 소설의 주인공 "그녀"에게는 외모로 인한 부끄러워함이 일상이 되어 있다. 둘째, "그녀"는 호감을 갖은 사람에게 부끄러운 사람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셋째, "그녀" 스스로도 자신에 대한 부끄러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그녀"의 아픔을 경험하지 않은, 책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읽는 우리는 그녀의 아픔을 알 수 없다. 다만 그녀가 외모로 인해 스스로를 부끄러워할 만큼 마음이 쉽게 무너지고 마는 상태라는 것을 짐작할 수는 있다.


이 질문은 거울 앞에 선 우리에게  다가온다. “스스로가 아름답지 못하다고 여겨질 지라도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은 어려운 과제로 남는다. 우리는, 그리고 나는, 외적인 아름다움에 매몰되어 있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모른채. 그리고 그 아름다움의 본질을 볼 수 없는 지도 모른다. 우리는 역시 "그녀"의 아픔을 모른다. 



이미지 및 기타 참고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042607


https://www.museodelprado.es/en/the-collection/art-work/las-meninas/9fdc7800-9ade-48b0-ab8b-edee94ea877f


https://en.wikipedia.org/wiki/Las_Meninas


https://www.guggenheim.org/arts-curriculum/topic/inspiration

https://ko.wikipedia.org/wiki/%EC%A3%BD%EC%9D%80_%EC%99%95%EB%85%80%EB%A5%BC_%EC%9C%84%ED%95%9C_%ED%8C%8C%EB%B0%98%EB%8A%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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