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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Jan 13. 2019

워터하우스의 <페넬로페와 구혼자들>

우리는 당신의 아픔을 모른다



"페넬로페의 베짜기(web of Penelope)"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쉴새 없이 하는 데도 끝나지 않는 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이 말은 서사시 《오디세이아(Odysseia)》에서 주인공인  오디세우스(Odysseus)의 부인인 페넬로페(Penelope)로 인해 생겨났다.

  

《오디세이아》에 따르면 오디세우스가 이타카(Ithaca)를 떠나 트로이전쟁에 참전하러 갈 때 그에게는 새로 태어난 아들 텔레마코스(Telemachus)와 부인 페넬로페가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이때 페넬로페에게 자신이 떠나고 10년이 지나도 오지 않으면 재혼을 하라고 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군인들이 전쟁 후 빨리 돌아왔으나 오디세우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디세우스의 오랜 부재로 구혼자들은 오디세우스의 집으로 가서 페넬로페에게 구혼을 하였다. 구혼자는 108명에 달했다고 한다. 페넬로페는 구혼자들을 쉽게 거절하기보다는 본인의 선택을 연기시킬 방안을 마련했다. 페넬로페는 그녀가 짜고 있는 오디세우스 아버지의 수의가 완성되면 그들 중 하나와 결혼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남편을 기다리며 낮에는 수의를 짜고 밤에는 풀기를 반복했다. 18세기 화가인 조셉 라이트(Joseph Wright of Derby 1734-1797)의 그림이 바로 <실을 푸는 페넬로페(Penelope Unraveling Her Web)>의 모습을 담고 있다.


조셉 라이트(Joseph Wright of Derby 1734-1797), <실을 푸는 페넬로페(Penelope Unraveling Her Web)>, 1783-1784

캔버스에 유채, 106 x 131.4 cm, 폴게티 미술관(The J. Paul Getty Museum, Los Angeles)



그런데 구혼자들은 페넬로페 하녀의 배신을 통해 페넬로페가 거짓을 말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페넬로페에게 결정을 촉구했다. 그 때 오디세우스가 돌아왔고 아들 텔레마코스와 함께 구혼자들을 죽이면서 20여년에 가까운 페넬로페의 오랜 기다림이 끝나게 된다.          


이 서사시에서 페넬로페는 인내와 정숙을 상징하는 여인으로 그려졌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페넬로페의 이미지는 선호되었다. 당시 페넬로페로 상징되는 정숙하고 배려심 깊은 여성은 빅토리아 시대가 선호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에게 가까웠던 것이다.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라파엘 전파 화가들(Pre-Raphaelite)도 페넬로페를 그림에서 자주 다루었다. 그 중에서도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가 1912년에 그린 <페넬로페와 구혼자들(Penelope and the Suitors)>은 극적인 순간을 담고 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 <페넬로페와 구혼자들(Penelope and the Suitors)>< 1912년,

캔버스에 유채, 129.8 x 188 cm, 애버딘 미술관(Aberdeen Art Gallery & Museums), 스코틀랜드.



조셉 라이트(Joseph Wright of Derby 1734-1797)의 <실을 푸는 페넬로페(Penelope Unraveling Her Web)>, 존 로뎀 스펜서 스탠호프(John Roddam Spencer Stanhope, 1829-1908), <페넬로페(Penelope (at her tapestry loom with a handmaiden picking apples))>는 페넬로페의 실이 강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을 풀거나 실로 짜인 수의를 앞에 둔 페넬로페의 모습에서는 긴장감이나 극적인 분위기를 찾을 수는 없다. 그보다는 실로 상징되는 페넬로페의 오랜 기다림이 반영되어 있다.



좌측은 위의 워터하우스의 그림, 우측은 존 로뎀 스펜서 스탠호프의 <페넬로페>

우측

존 로뎀 스펜서 스탠호프(John Roddam Spencer Stanhope, 1829-1908), <페넬로페(Penelope (at her tapestry loom with a handmaiden picking apples))>, 1864년, 캔버스에 유채, 107 x 81 cm, 소더비경매(Sotheby's November 2017)



이와 달리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가 1912년에 그린 <페넬로페와 구혼자들(Penelope and the Suitors)>에서는 구혼자들에게 등을 돌린 채 실을 물고 있는 페넬로페의 모습이 강조되어 있다. 실은 페넬로페에게 오랜 기다림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그녀가 마쳐야 하는, 그녀에게 부여된 일의 하나이다. 실은 페넬로페가 처한 운명이며 동시에 긴 시간 끝에서 그녀가 그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녀가 실을 입으로 물고 있는 듯한 장면은 이제 곧 오랜 기다림이 끝나게되며 그녀의 일도 곧 마칠 수 있으며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음을 말한다. 페넬로페의 모습은 단지 한 여인의 오랜 기다림, 인내, 정숙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페넬로페는 구혼자로 상징되는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행하는 한 사람의 모습에 가깝다. 


우리의 삶은 페넬로페의 끝없는 실과 같은 일들로 채워져 있다. 우리의 일상은 늘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일들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일들을 제때에 마치기가 쉽지 않고, 그 일 자체를 해내기가 쉽지 않다. 페넬로페를 유혹하는 구혼자들처럼 온각 유혹이 우리 주위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과 같은 급변하는 사회에서 묵묵히 그리고 천천히 일을 해나가는 페넬로페와 같은 모습은 누군가에게는 그 모습이 지루하거나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다. 페넬로페의 20여년 같은 긴 시간을 들여야만 완성되는 일이 있으나 우리는 그 시간을 인내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성숙과 같은 가치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그것을 너무 쉽게 여긴다. 그 시간을 견뎌낸 사람의 아픔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그 사람과 그가 보낸 긴 시간을 함께 아파할 수 없는 우리 역시 아프게 다가온다. 






이미지 출처 및 기타 안내


조셉 라이트(Joseph Wright of Derby 1734-1797), <실을 푸는 페넬로페(Penelope Unraveling Her Web>, 1783-1784

캔버스에 유채, 106 x 131.4 cm, 폴게티 미술관The J. Paul Getty Museum, Los Angeles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penelope-unraveling-her-web/AwFp3GtnFhIT6A          


존 로뎀 스펜서 스탠호프(John Roddam Spencer Stanhope, 1829-1908), <페넬로페(Penelope (at her tapestry loom with a handmaiden picking apples))>, 1864년, 캔버스에 유채, 107 x 81 cm, 소더비경매(Sotheby's November 2017)

https://www.sothebys.com/en/articles/the-patience-of-penelope-pre-raphaelite-muse

https://en.wikipedia.org/wiki/John_Roddam_Spencer_Stanhope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 <페넬로페와 구혼자들(Penelope and the Suitors)>, 1912년

캔버스에 유채, 129.8 x 188 cm, 애버딘 미술관(Aberdeen Art Gallery & Museums), 스코틀랜드.

https://artuk.org/discover/artworks/penelope-and-her-suitors-108091


https://en.wikipedia.org/wiki/Suitors_of_Penel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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