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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Jul 24. 2020

멀고도 먼, 시

시는 어렵다. 소설도 잘 읽지 못하지만 그래도 스토리를 파악할 수 있으니 아주 어려운 소설이 아닌 다음에야 완독을 하고 얼추 줄거리도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시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고등학교 국어 시간 이후로 시를 읽을 엄두도 못내고 있었다.


4 년전, 책읽기 모임에서 시집을 한 권 정해 읽었다. 좋아하는 시를 한 편씩 정해가기로 했는데 이해도 안되고 정이 가는 시도 없어 그냥 갔다. 솔직하게 나한테는 너무 어렵다고 했더니 20명 중 3-4명 정도가 나와 같은 마음이라며 웃었다. 시는 자꾸 읽어야 한다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시를 읽고 싶어진다기에 최승자, 마종기, 이성복 시인의 시집을 몇 권 샀다. 시인이 강의하는 2시간 짜리 수업도 들었다. 시에서 행 바꾸기, 쉼표, 마침표는 언어만큼 중요하다는 귀한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그 짧은 정보를 알았다고 시가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다. 시집을 몇 번이고 펼쳐 봤지만 시는 여전히 어려웠고, 지루했다. 그렇게 시 읽기 시도는 끝이 났다.


그러다 작년 가을 다시 시 읽기에 도전했다. 광고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끝내주는 한 문장, 잊을 수 없는 자기소개를 쓰고 싶어 광고 카피 수업을 들었다. 10회차 수업을 빠짐없이 참석했고, 과제도 열심히 했지만 바위만큼 굳은 내 머리만 확인했다. 생각을 말랑하게 하는데 시 읽기가 도움이 된다는 강사 말에 다시 시집을 폈다. 간혹 좋다 싶은 시가 몇 편 있다. 하지만 그 뿐, 대부분의 시들은 어려웠다. 갑자기 행은 왜 바꾼건지(그냥 이어 썼어도 별 차이 없어 보이는구만), 뜬금없는 이 단어는 뭔지(이런 표현 맞는거야?), 그래서 하고픈 말은 무엇인지(그냥 대놓고 말해), 시는 자기 혼자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다시 시집들을 덮었다.


오늘 빗소리, 바람 소리가 좋아 밖을 나섰다. 앞으로 두어달 동안은 느끼지 못할 시원한 바람에 문득 이 바람과 어울리는 시 한편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바로 좋아하는 시가 생기지는 않을 터. 그나마 유명한 마종기 시인의 <바람의 말>이 생각났다. 여전히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좋다는 느낌은 든다. 시집 한 권에서 마음에 드는 시 하나 건지면 성공이라는 어느 작가의 말을 위안 삼으며 <바람의 말>을 적어 본다.


바람의 말


                      - 마 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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